2014/07/25

제주에 간다

윤영배를 들으며 제주에 갈 짐을 대충 꾸렸다. 짐 싸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그런지 매번 듬성듬성, 이것저것 꺼내만 놓은 채 정리는 꼭 느지막이 하게 된다. 벌써 자정이 넘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려면 벌써 잠자리에 들었어도 잠이 부족한 시간. 한두 페이지를 보더라도 책 한두 권은 반드시 챙기게 되는데, 이번엔 천상병 시인의 시집 <주막에서>와 박태원의 소설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그리고 최근 감동적으로 읽은 고희범의 <이것이 제주다>를 준비했다. 
윤영배가 언제부터 제주에 내려가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꽤 자주 눈에 띄어서 그가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를테면 홍대 두리반에서, 팔당 두물머리에서, 녹색평론과 가장자리 사무실에서, 사직동 그 가게에서, 밀양에서, 내성천에서, 본업인 음악인으로서 카페나 공연장에서, 그는 쉬지 않고 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그의 삶은 몹시 느긋해서 제주에서 나무나 베고 막걸리나 마시며 쇼스타코비치나 바흐를 듣는다는 그가 언제 이렇게 멋진 음악을 만들고, 언제 그렇게 사회에 폭넓게 전달되지 않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위해 동분서주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제주에 간다고 해서 그를 만나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삶을 대하고 있는 모습이 내게는 꽤나 인상적이다. 
어쨌거나 날이 밝으면 나는 작은 백팩을 둘러메고 공항으로 간다. 그리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환상의 섬 제주로 간다. 한라산이 곧 제주인 아름다운 화산섬 제주, 그곳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은 오래된 굴곡진 역사와 빛을 띠고 내게 다가오겠지. 가 보고 싶은 곳이 아주 많지만 늘 그랬듯 발길 닿는 대로 여유를 잃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짧든 길든, 여행길에 처음으로 랩톱을 챙겨갈 생각인데, 얼마나 쓰게 될 것인가. 아니, 양보다는 순간의 느낌을 충실히 기록하기 위함이라 해 두자. 그럼, 이제 자도록.


2014. 7. 18. 밤,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