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국내를 하루 이틀 다니는 건 여행이라기보다 긴 외출처럼 인식된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이젠 일상과 여행이라는 경계가 무너진 결과라고 해야 할까?
우리 나름의 성공적인(?) 영화제를 마치고 올해 마지막 여정은 단양으로 잡았다. 예약해둔 숙소는 단양읍내에 있었고, 일정을 맡은 나는 유홍준의 답사기(남한강편, 창비)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렸다. 한참 지도를 그리고 있었을 때 문득 떠오른 현실감, 아, 일정이 짧다.
몇 해 전이었을까, 나는 부모님과 단양에 있는 구인사에 갔었다. 험준한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은 그곳이 위치한 지대보다 그곳의 표면을 철저하게 뒤덮은 콘크리트가 내겐 더욱 놀랍게 각인 되었다(그 단단한 덩어리들!). 그리고 절을 빠져나와 단양으로 향하는 길은 더더욱 놀랍게 각인 되었으니, 그 길이 바로 유홍준이 말하는 영춘가도(永春街道)이다.
영춘가도는 50리 옛길이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그 길이 신작로로 닦였고, 현대로 들어서면서는 2차선 찻길이 되었지만 영춘가도는 아직도 찾아오는 사람이 뜸하여 길가로 식당, 여관, 가겟방이 들어서는 관광지의 상처를 받지 않았다. 길은 줄곧 남한강을 따라가며 강물이 비집고 내려오는 육중한 산줄기가 둘러 있고, 길가 산비탈엔 이따금 호젓한 마을과 외딴집들이 나타난다. 가로변엔 언제 심었는지 플라타너스와 벚나무가 제법 장하게 자라 늘어서 있고, 넓은 강둑엔 옥수수나 감자 같은 강원도 작물들이 재배되며 마을 입구 길가엔 접시꽃과 해바라기 같은 낯익은 풀꽃들이 철따라 꽃을 피우고 있다. 아, 전국을 포클레인으로 파헤쳐버린 대한민국 천지에 이런 옛길의 잔편이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2015년 초여름, 이 글을 쓰기 전에 영춘가도가 혹 변하기라도 했는가 확인하기 위해 차를 몰고 학생들과 다시 찾아갔는데 지나가는 차마저 드문 영춘가도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영춘은 여전히 영춘 사람들이 산자락에 기대 살며 강변과 산비탈에 부쳐 먹을 곡식과 채소를 가꾸며 사는 우리의 산촌이었다.
_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남한강편>, 창비, 222쪽.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구인사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동시에 떠올렸고, 이번에 이곳을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고서는 지도를 살피는데 자꾸만 눈길이 가는 곳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영월이었다. 청령포, 장릉.. 이런 곳에 자꾸 눈길이 멎었는데, 한 번 그렇게 생각이 그 길로 접어드니 방향을 트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머릿속으로 동선을 짰다.
서울 - 제천(장락동 칠층모전석탑) - 영월(청령포, 장릉) - 영춘(북벽, 온달산성) - 영춘가도 - 단양(숙소)
일박이일 일정에 과하지만 우선 머릿속에 담아두고 서울을 나섰다. 하지만 예정보다 늦은 출발. 게다가 날씨가 너무 청명하였기에 나는 고속도로를 달려 재빨리 제천에 닿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남한강을 따라(찾아) 나서는 길이니 처음부터 한강의 물결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러니 우리의 방향은 남양주를 지나 6번 도로를 따라 양평을 향했다. 저 건너 미사리와 덕소를 지나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통과해 남한강을 따라 달리다가 양평에서 45번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제천에서 점심을 먹고자 했던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괜시리 급한 마음에 칠층모전석탑마저 외면한 채 영월을 향해 38번 도로를 달렸다. 삽십 분이면 넉넉한 거리였다. 그래도 점심을 거를 수는 없어 가는 길에서 잠깐만 외도를 하면 있다는 곤드레밥 식당에 들르기로 했다.
먹어 보았던 곤드레밥 중에 가장 알찬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네시가 다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영월은 포기해야 했다. 어쨌거나 이번 여정의 가장 큰 목적은 영춘가도이기에.
그래도 한 곳은 둘러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속도를 내어 영춘가도(522번)를 달려 온달산성에 갔다. 이미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네시 반이 다 되었고, 온달관광지 주차장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산성 입구에는 동절기 세시 이전 입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무시. 우린 급경사지를 따라 조성된 데크길을 타고 산성을 향해 출발했다. 얼마 오르지 않았어도 그곳이 얼마나 급경사지이고, 골짜기인지는 주변 풍경이 말해주었다. 벌써 저 아래에 위치하게 된 온달관광지 세트장과 굽어 흐르는 남한강을 묵묵히 내려다 보는 영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이내 더 멀어지고 더 아득해져 갔다.
일킬로미터 남짓한 길을 오르니 온달산성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났다. 성은 얇고 작은 돌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 형태로 묵직한 자연석으로 축성한 서울성곽이나 수원화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둘레 길이가 680여 미터로, 성안에 들어서면 한눈에 거의 잡힐 정도로 규모가 아담하다. 산세가 깊어 칠팔부 능선 이상이 아니고서는 볕이 거의 들지 않아 사위는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성안을 한바퀴 돌고 다시 내려오니 이미 주차장엔 어둠이 가득하고 가로등이 빛나고 있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에서처럼, "밤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