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24

'창의 경쟁'은 곧 '방패의 경쟁'을 수반했다. 어쩌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대방의 핵미사일이 내 땅에 떨어지면 수백만 명이 몰살당할 수 있다. 그래서 그걸 중간에 요격하는 방패를 갖겠다는 건 '자기 보호 본능'의 발동이었다. 하지만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곧 MD의 한계를 간파했다. 'MD 구축은 안보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이 군사력을 아무리 강화시켜도 국가안보는 계속 악화된다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만든다."는 점을 꿰뚫어 본 것이다. 

_정욱식, <사드의 모든 것> 26쪽, 유리창, 2017


모순矛盾이라는 중국 고사가 절로 떠오른다. 말 그대로 '창과 방패'를 의미한다. 유래는 이렇다. 초나라의 한 장사꾼이 저잣거리에 창과 방패를 갖다 놓고는 "여기 이 방패는 어찌나 견고한지 제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죠."라고 말하고, "여기 이 창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꿰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습죠."라고 했다. 그러자 한 구경꾼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라고 묻자, 장사꾼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장사꾼'은 세계 최대의 무기판매국 미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한편으로는 각종 공격용 무기들을 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사일은 막으라고 MD를 팔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는 '구경꾼'보다도 모자라다. 사드의 성능을 묻기는커녕 '장사꾼'보다 사드의 성능을 과장하기에 바쁘다.  

_같은 책 36쪽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지 15년이 흘렀다. 이 사이에 부시의 말은 씨가 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를 장착한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미국까지 다다를 것"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과장된 주장이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MD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에 대한 집착을 다시 호출하고 말았던 것이다. 반대로 북한 정권의 이들 무기에 대한 집착은 MD라는 괴물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MD와 북핵의 적대적 동반성장이다. 이러한 추세는 오늘날 더 빨라지고 있다. 사드가 대표적이다. 이 악역의 고리를 어떻게 끊느냐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관건인 것이다.  

_같은 책 83쪽


대체로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슈'들은, 그것이 특히 안보와 관련이 있을 경우 더더욱, 논쟁의 굴레에서 다뤄지지 못 한다. 막무가내식의 주장과 상대를 자극하는 언어의 혼탁의 장일 뿐. 사드 자체로도 충분한 논쟁거리가 되지만, 그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사드라는 '나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MD라는 '숲'"을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2017/04/14

해찰은 기웃거리고 집적거리는 짓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딴짓을 하거나 여기저기 쏘다니지 말라고 당부할 때 쓴다. "해찰하지 말고 곧장 오너라." 그러니까 해찰은 부질없는 짓거리나 산만스런 분위기, 덜렁거리고 까부는 모양새인 것 같다. 제 갈 길 똑바로 가지 않고 갈짓자로 횡보하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만져 보고, 흥정도 했다가 말도 붙였다가 하느라 원래 어디를 가려 했는지 까먹을 지경이다. 근데, 여튼 집에 가기는 간다. 해찰은 필연적으로 집이 아닌 '언저리'에 먼저 가 닿는다. 계몽주의와 모더니즘이 떨쳐 버렸던 주변부를 지시하는, 이 족보와 어원조차 불분명한 발음은 '주변부' 같은 어휘와 호응하기도 벅차다. 주변부에서도 가장 주변부에 속하는 족속이 제 입에 '주변부' 같은 단어를 올릴 리 없는 것이다. 실은 주변부와 언저비 사이에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가, 그것이 아무도 모르는  알려 하지 않는 ━ 우리의 문제다. 언저리는, 주변부로 호명되지조차 못하는 어느 언저리에 있다. 우리말에서 어느 언저리는 어떤 언저리이기도 하고 언저리의 어딘가이기도 하다. 곧, 언저리가 '주변부'와 다른 지점을 꼽자면, 중심부와 대결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수류산방은 곧잘 말해 왔다. "우주는 언저리가 지탱한다."언저리는 가까운 근처이되, 외곽의 경계 밖을 아슬아슬 포함해야 맛이다. 한창 불고 있는 풍선의 겉껍질 같은, 외딴 산 속의 수행자 같은, 그 낱말은, 생각해 보라, 언제고 중심이 아니라 바깥을 동시에 흘끔거린다. 언저리는 주변부의 밖이다. "빅뱅의 기억을 간직한 시원의 윤곽이 지금 이 우주에서 가장 머나먼 곳에서도 더 멀리,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아나듯, "언저리는 중심으로부터, 목표로부터 수줍어하면서 애써 달아나는 움직임이다. 주제와 집단의 바깥을 밖에서 볼 수 있는 자가 언저리를 이룬다. 해찰하는 짓거리는 필경, 어른들이 싫어하는 언저리를 건드린다. 그런데, 이것은 미학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 우리가 아침저녁 매일 오가는 길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마주친다면, 그것은 아주 약간의 해찰궂은 기웃거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똑같은 작업에서 어느날 어떠한 통찰을 얻는다면, 가장 고전적인 예술적 태도에서 새로운 섬광이 일어났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리라. 해찰의 그러한 찰나들이야말로 "解察" 즉 '풀어 살피'게 할 여지를 부여하거나, 해탈━대자유━를 엿보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이런 모든 의미 붙이기란, 또 얼마나 징글맞은가! 켄트리지 스스로 "주변적 사고"라고 말한 그 작업 방식을 우리말로 다시 "해찰"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해찰일까, 아닐까. 가장 예술적인 듯 보이는 작업이 실은 지긋지긋한 육체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별 것이 아니다. 정작 더 본질적인 데는 대개가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을지 모른다. 토요일 저녁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부부젤라'를 입에 문 행렬이 서울 삼청동 길을 지난다. 꽉꽉꽉꽉━. 꽉꽉꽉꽉━. 그 행렬은 예술로서 발견되지 못할 것이다. 전복이 일어나는 무렵에는 아무것도 전복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이야기하려면 스스로 주변이 아니어야 하므로, 주변을 선언하는 순간 주변이 아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그러할 것이다. 여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독선과 폭압의 역사도, 결코 세계적인 예술거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청산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다행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러나 허무에 빠지지 않고 계속 이 잔혹함을 눈물 없이 견딜, 또 한 번의 작은 명분을 얻는다. 정말 해찰이 무슨 뜻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해찰하는 어떤 상황은 가슴 아픈 것을 수반한다.  

<해찰 : 언저리의 미학> 011-015쪽, 수류산방, 2016

작년 초, 아직은 서울에 살 적에 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 <윌리엄켄트리지 : 주변적 고찰>을 보았다. 한 예술가의 단독 전시임에도 그 양이 매우 방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선이 지루하거나 걸음에 긴장을 놓칠 틈이 전혀 없을 정도로 밀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용이 충격적일 정도로 신선했다. 길게 인용한 이 글은, 감동적인 그 전시를 바탕으로 수류산방에서 펴낸 책의 서문인데, 전시 못지 않게 서문 또한 감동적이어서 다소 길지만 옮겨 본다. 
운하는 뱃길 용도가 아니라 물길이라는 의미로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배가 다니기는 하지만 우선은 물을 통과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베네치아가 건설된 땅은 개펄 가운데 위치했기 때뭉네, 바다의 간만(干滿) 즉 밀물과 썰물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만약 베네치아가 지금처럼 운하에 의해서 무수히 나뉘지 않고 전체를 매립해서 통합했다면 이 도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수시로 물에 잠겨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큰비가 내리면 육지에서 급하게 흘러 들어오는 강물이 바다의 밀물과 만나면서, 그럴 때마다 도시는 물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강의 흐름과 바닷물의 간만 관계를 면밀히 고려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운하를 설치한 결과, 마치 실핏줄이 온몸에 퍼지듯이 도시 곳곳에 운하가 지나가게 되었다.  
손세관, <베네치아> 56쪽, 열화당, 2007

어두움과 밝음의 대조, 좁은 도로에서 개방된 공공장소로의 극적인 변환 등은 베네치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징이며, 이는 이슬람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베네치아 주민들은 주거지 주변의 폐쇄된 골목길과 개방적인 광장 사이에서 이러한 시각적 변화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도시 중심부를 거닐다 보면 전혀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리저리 꺽이면서 연속하는 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공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된 상점들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도시생활을 맞이하게 된다. 마침내 발길이 산 마르코 광장이나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스키아보니 해얀, 또는 리알토 다리에 이르면, 보행자는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열린 공간과 만나게 된다. 
같은 책 77쪽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라구나(lagoona, 석호潟湖)는 매우 특이한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처럼 완만한 개펄로 조성된 지역이 라구나가 형성될 수 있는 적합한 지역인데, 전 세계적으로 라구나를 발견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라구나는 육지로부터는 담수가, 외해로부터는 해수가 흘러 들어오는 완만한 개펄지대로서,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경사가 매우 완만한 개펄지대' 또는 '소택지(沼澤地)'가 적절할 것이다. 라구나는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를 매우 애매하게 만들어, 밀물 때에는 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에는 물 위로 드러나므로 바다인지 육지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보통 땅에 굴곡이 있어서 썰물 때에는 물길이 있는 개펄을 형성하다가 밀물 때에는 수면이 넓게 펼쳐진 곳에 크고 작은 섬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라구나는 시간에 따라 변화가 많고 다채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같은 책 47쪽
저는 오랫 동안 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옛것에서 높은 가치와 깊은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리고 나누어 마땅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이야기했을 때 선입견 없이 알아 보고 사랑해 주는 외국인들이 있었고, 다시 찾아와 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외국인을 상대로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만 내달리던 시대에 오히려 이 땅에서는 그런 이들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때 너희 안의 정말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던 선진국의 문화인들을 만났습니다. 자기네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해 준 이야기였지만, 지금 살펴보면, 우리는 그들이 잘못 갔던 길마저 똑같이 가 보고 있나 싶어 마음이 슬픕니다모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 조용한 마을 한산에 직접 찾아가 모시를 직접 사고, 새벽 모시장을 뛰어난 그래픽과 기사로 꾸며 알린 것은 일본의 잡지사였습니다. 역사적인 문화 잡지 <긴카(銀花)>의 1998년 가을호였습니다. 우리는 그 두 해 전부터 긴 준비 기간을 가지고 차근히 공부하고 여러 장인을 만났습니다. 그 때도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그렇게까지 귀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한산의 모시장은 영영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보다 덩치가 커진 모시 전수관을 가면 지금도 전시와 시연을 관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모시가 삶과 역사에 완전히 하나 되어 있던 그 시대의 울림을 담은 자료는 남아 있지도 않고, 앞으로 도저히 만들 수도 없습니다. 
최지은, <모시한산> 9쪽, '어머니의 마음', 수류산방, 2015

이 책은 모시 한복의 멋이나 새로운 모시 공예품, 디자인을 소개하려는 의도로 만들지 않았으며, 한산 모시의 역사나 기능을 고증하려는 뜻도 없다. 또 어리석은 마음으로 굳이 덧붙이자면, 모시풀을 거두어다 입술을 헤어 가며 희고 가는 실을 토해 내며 늙어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모시의 언저리라, 수류산방에서 책 제목을 "언저리의 미학"이라 한 뜻을 밝혀 둔다. 
같은 책 16쪽 

2017/04/10

(1704 광주 의재미술관) 의재를 찾아서

광주시 동구 운림동 85번지. 증심사와 약사사에 불공드리러 가는 마음들이 새벽부터 또 그 다음 새벽까지 끊이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오르다 보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길이 바로 의재 선생이 30년을 오가신 증심사 계곡 등산로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이 등산로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의재 선생의 작업실이었던 춘설헌과 선생의 묘소, 옛날 차 공장이 그대로 있는 계곡 건너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집인 듯 미술관인 듯, 작은 나무 상자 같은 건물이 생겼거든요. 의재 선생을 기리는 마음과 정성이 지나쳐 혹시나 산과 물이 중심인 이 계곡보다 더 잘 보이게 되면 어쩌나, 설계자도 건축주도 시공자도 조심조심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10년을 계획하여 지어 낸 건물이라고 합니다. 의재 선생의 그림이 살 집인데, 그저 무등산과 그림과 차가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집인데 으리으리하고 첨단 기능을 갖추면 무엇에 쓴답니까. 옛 농업 학교 건물은 약간만 개보수하여 그대로 두었고, 담도 없고 커다랗고 세련된 간판도 없는, 새 건물인지 원래 있었는지 갸우뚱하게 만드는 그런 건물입니다. 
심세중,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 242쪽, 디자인하우스, 2001

몇 해 전 눈이 가득 내린 새해 첫날, 아무 계획 없이 광주에 갔다. 그렇게나 많은 눈이 내린 줄은 미처 몰랐다. 용산에서 광주행 첫 열차에 올라 잠든 후 눈을 떴을 때, 열차는 정읍 부근을 달리고 있었는데 주위가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산보다는 너른 들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남도 땅 가운데, 사방이 고요한 풍경에 사로잡혀 열차는 광주로 다가가고 있었다. 광주역에 내려 간장게장이 나오는 백반을 먹고 광장에 나오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 1980년 5월의 광주를 알고 있다는, 그 무등산. 그곳에 오르기로 하고 관광안내소에 들러 폭설에도 개방된 등산로가 있는지 확인했다. 단 한 곳, 증심사 입구만 개방이 되어 있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바로 무등산으로 향했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증심사 입구에 내리니 등산객들로 꽤나 붐볐다. 그들 행렬을 따라 나도 무등산에 난생 처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어서 문빈정사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하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폭설에 아이젠도 없이 산에 오르려니 긴장이 되었지만 무등산의 등산로는 말 그대로 순했다. 큰 어려움이 없었던 기억이다. 서석대까지 올랐다. 서석대와 하얀 눈이 이루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개방된 등산로가 하나뿐이었기에 올랐던 길로 되돌아 내려왔다. 그런데, 그런데 두 번이나 스친 길가에서 의재미술관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 기억으론 그렇다. 광주에 가야했다. 의재뿐만이 아니더라도, 광주에 가야 할 이유는 많지만, 오로지 의재만으로도 광주에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2017/04/06

기형도와 조병준

오늘은 열쇠를 하나 샀다.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게 열리고 잠기는지. 내 일생 처음으로 열쇠를 산 것이다. 그리고 몸이 흐트러진다. 내 의식과 무의식을 잠가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불안하다. 누구를 만나고 다방에 가서 율무차를 마시고 마지못해 흡연을 하고 술을 건네고 당구를 치든지 결국은 전자오락실이다. 버스 안에 손잡이를 잡고 흔들린다. 걸어온다. 집. 빈 집, 혹은 어머니가 계신 집. 발을 닦기. 엄지 발가락부터 하나하나. 기타를 잡고 튜닝을 한다. 불안하다. 기타를 놓는다. 나의 문학은 영원히 튜닝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기형도, <짧은 여행의 기록> 50쪽, 살림, 1990

이 글은 <짧은 여행의 기록>이란 제목으로 시인 사후에 출판된 산문집에 실린 편지 중 일부다. 편지라고 하지만 독자로서는 한 편의 문학처럼 대하며 읽었을 뿐인데, 며칠 전 알게 되었다. 편지의 대상, 즉 '준'이라고 시인이 칭한 그는 조병준 시인이었다. 소설가 성석제, 시인 원제길 등과 함께 기형도와 우정을 나누었다는, 그 시인. 


고등학교 때 절친한 친구인 조병준을 찾아 멀지 않은 서강대 캠퍼스를 자주 갔다. 조병준도 문학회 모임에 가끔 참석해서 준회원으로 간주되었다. 둘은 어쩌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토라진 계집애들처럼 이별을 한다고 종알거렸는데 그 덕분에 가끔 있곤 하던 이별식 석상에서 냉면은 잘 얻어먹었다. '성자를 찾아서'라는 시로 그때 우리를 감동시킨 조병준은 자신의 방에서 수백 장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예술의 귀족'이었다. 그의 방에서 엉덩이를 맞대고 밥 딜런이나 레너드 코헨을 들으며 시시한 연애담이나 시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한 적이 많았다. 동승동 언덕바지에 있던 그 집에서 나오는 아침이면 가까운 학림 다방에서 R. 스트라우스를 듣고 나서 205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곤 했다. 기형도가 이름을 생략하고 '조'라고 부르던, 또는 성과 이름의 첫 자를 생략하고 '준'이라고 부르던 조병준은 지금 인도에 가 있다. 그는 기형도의 생전에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였고 따라서 글자로 만들 수 있는 기형도의 생각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성석제, <정거장에서의 충고> 163-164쪽, 문학과지성사, 2009

그 사실을 알고 검색을 하다가 성석제의 동생 성우제의 블로그에 실린 글을 보게 되었는데, 시인이 생전에 수다스럽고,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 주고, 노래도 곧잘 하였다고 하는데, 요절한 시인을 문학으로만 대했던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오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오는데 갑자기 살기를 느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소리를 지를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나는 사람들 틈에 끼워져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쉬지 않았다. 손을 들어 심장 가까이 댔다. 미약한 울림이 쓸쓸하게 내 감각을 위로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얼굴 가득히 땀이 흘렀다. 심장마비란 이런 것일까. 나는 중계역(신도림)에 내려 콘크리트 의자 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부끄럼은 잘 타는 편이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슴은 곧 터질 것 같이 팽팽한 풍선처럼 흔들렸다. 내 의식의 등유가 미친 듯이 출렁거렸다. 나는 아득히 내 아는 이들의 얼굴을 생각하고 천천히 허공을 향해 호명했다. 말을 나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나는 흔들리는 연기처럼 수직으로 일어섰다. 
기형도, <짧은 여행의 기록> 57쪽, 살림, 1990

어쨌든, 조병준 시인의 글을 하나둘 찾아 읽어보려 한다. 우선 수류산방에서 펴낸 책부터. 

청명과 한식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을 한식(寒食)이라 하는데, 이날은 종묘와 능원에 제향(祭享)을 지내는 날로 절기와 관계없이 성묘를 하는 하나의 명절로 여겨왔다. 반면 청명은 1년 24절기의 하나로, 동지에서부터 한 절기씩 나누어 가다 보면 한식과 서로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엄연히 다른 날이다.
청명(淸明)은 봄이다. 그래서 봄에 피어나는 싹이나 꽃들이 한창인 것을 알 수 있다. 진달래와 목련은 꽃을 떼어낸 지 벌써 오래고, 개나리도 꽃을 피운다. 앵두나무의 하얀 꽃과 조팝나무의 작은 꽃들은 일시에 피어나서 우리를 기쁘게 한다. 외래종 민들레와 토종 민들레도 순서를 다투며 피어나고, 제비꽃과 꽃다지꽃, 양지꽃, 할미꽃, 그런가 하면 이른 봄에 먹었던 달래는 지천으로 하얀 꽃을 피워내니 작은 메밀밭을 연상케 한다. 바야흐로 봄의 절정에 와 있는 것이다.
원래 찬밥을 먹는 날은 한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명이나 한식 때에는 아직 잡풀이 자라지 않아 마른 바람이 불어오므로 불이 나기 쉬운 계절이다. 따라서 나무를 심거나 묘를 손보는 사람들은 찬밥을 먹어 산불을 예방하는 때이기도 하다. 
한호철, <24절기 이야기> 92-94쪽, 지식과교양, 2016



춘분이 지나면 완연한 봄이지만 아직 아침 저녁에는 약간의 찬 기운이 남아 있다. 영상의 날씨로 확실하게 돌아섰지만 아침에는 영상 3-5도로 쌀쌀하다. 그러나 낮에는 10-15도 정도 되어 일교차가 꽤 크다. 게다가 입춘이 설날 전에 오면 봄 추위가 길어져 춘분이 지나도 꽃샘추위가 올 수 있다. 그래서 발아가 금방 되는 채소 종자를 춘분에 바로 심으면 싹이 나왔을 때 마지막 꽃샘추위에 냉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
청명 즈음해서 음력으로 중요한 날이 있다. 삼짇날이다. 음력 3월 3일은 양의 날이 겹쳐서 아주 길한 날로 여겨왔다. 작년 9월 9일 강남으로 돌아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다. 삼짇날은 원래 음력 3월 들어 첫 번째로 오는 뱀날(상사일上巳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날이 따뜻해 뱀도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라 이날 뱀을 보면 재수 좋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재수 없다고 하는 데도 있다. 어쨌든 삼짇날이 되면 완연한 봄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하여 봄꽃 구경하러 나들이 가는 날이기도 하다. 진달래꽃 따다 화전 부쳐 먹고, 양지 바른 곳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어린 쑥을 뜯어다 쑥버무리를 해먹는다. 청명이 되면 이제 안심하고 무엇이든 파종하는 날이니 화사한 봄꽃에 마음 들뜨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몸을 놀려 농사에 매달려야 한다. 
안철환, <24절기와 농부의 달력> 136쪽, 139쪽, 소나무, 2011 


그런데, 
미세먼지에 신음해야 하는 청명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