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9

BUENA VISTA SOCIAL CLUB




8년 전 여름 무렵, 나는 늦가을 여행을 계획했고 목적지는 쿠바였다. 처음엔 2주 정도로 계획한 기간이 쿠바를 목적지로 확정하면서 한 달로 두 배가 늘었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여행 정보를 찾기 위해 도서관 여행 코너를 들락거렸고, 마땅한 책이 없자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였는데 그러다 알게 된 영화가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하고 라이쿠더가 음악을 맡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었다. chan chan이 흘러나오며 화면은 아바나의 해안도로, 말레콘을 더듬는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 노장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말레콘의 부드럽고 거센 파도를 따라 넘실거린다. 2007년 11월 한 달 동안 나는 쿠바에 있었다.

나는 쿠바에 있었다. 

8년이 지난 오늘, 2015년 11월. 나는 이수에 있는 작은 극장 맨 뒷좌석에 앉아 8년 전 컴퓨터 화면을 통해 쿠바여행을 고대하며 보았던 그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았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 사운드트랙과 라이브 음반은 꽤 자주 듣는 편이지만 영화를 다시 보는 건 음악을 듣는 것과는 조금 다른 과정이다. 디브이디 타이틀도 있고 프로젝터도 있지만 영화를 집에서 보는 것과 영화관에서 보는 건 또 다른 경험이다. 단지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의 포스터만 보아도 여전히 나는 가슴이 뛴다. 
올드카에 올라탄 꼼빠이 세군도가 아바나에 있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물어 물어 찾는다. 장면은 암스테르담 공연장으로 이어지고 환호 속에 등장한 노장들은 chan chan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레콘을 넘실거리는 파도, 아바나. 영화가 시작되고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여행의 추억, 아니 추억이라기보다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딜 가나 길가에 무수히 나와 모두 아는 사람인 듯 반갑게 간섭하며 말을 거는 쿠바인들, 세월이 가득한 얼굴을 한 노인의 편안한 표정, 어디 굴러나 갈까 싶은 올드카들, 눈앞에 마주하고 나서야 실감나는 말레콘의 파도, 날아가는 새. 이곳 쿠바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런 스치는 감정을 나는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다. 극장 맨 뒷좌석.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란히 포개지던 8년 전의 감정은 영화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옅어지며 결국 사라져 갔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피할 수 없이 2015년 11월에, 이틀만 더 지나면 12월인 현실의 시간 속에 문득 서 있었다. 현실이었다. 내가 믿지 못하는 건 오히려 8년 전의 시간과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2015/11/16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1915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Robert E. Park)는 <도시: 도시환경에서 인간행태를 조사하기 위한 제안들(The City: Suggestions for the Investigation of Behavior in the City Environment)>이라는 짧은 글을 발표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이다. 사회학, 지리학, 인류학 등 도시와 관련된 사회과학 연구의 작은 출발점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되어 도시사회학이라고 불리게 된 시카고학파의 일련의 연구는 이후 1938년 루이스 워스(Louis Wirth)의 논문 <도시성이란 생활양식(Urbanism as a Way of Life: The City and Contemporary Civilization)>에서 도시생태학으로 발전한다. 'city'에서 'the urban'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인데, 우리말로는 둘 다 도시란 뜻이다. 하지만 'city'는 성(城)과 같은 물리적 중심에 가깝고 형용사에 관사를 붙인 'the urban'은 '도시적인 것'이라는 뜻으로 모든 도시적 행동의 집합이다. 우리가 도시사회를 보기 위해서는 공간뿐 아니라 새로운 인간 행동의 양태들을 보아야 한다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오늘날 메트로폴리스 연구는 한 세기 전의 도시 연구가 출발했던, 출발해야만 했던 상황과 비슷한 이유에서 출발한다. 전 세계에서 등장하는 거대도시들, 우리는 이 도시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작동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사람, 자본, 물건의 이동은 말 그대로 전지구적이며 잘사는 곳이나 못사는 곳이나 개발의 광풍을 맞았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신자유주의, 세계화(Mondialisation)라는 말로 설명하고 지리학자들은 특히 대도시화(Metropolisation)라는 공간적 현상에 주목한다. 하지만 도시를 인구 몇 만 이상으로 쉽게 정의할 수 없었듯이 메트로폴리스를 단순히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로만 생각할 수 없다. 도시적인 것의 탄생을 목도하던 때처럼 우리는 메트로폴리스적인 것을 정의하고 상상해야 한다. 도시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어느 순간 메트로폴리스가 되는데, 그 순간을 결정하는 힘들을 보는 것, 이 부분이 메트로폴리스 연구의 출발점이다.
서울은 메트로폴리스인가? 우선 서울은 독특한 도시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 풍경을 간직했던 서울은 순식간에 시카고학파의 연구가 주목했던 '도시 공간'을 만들어냈고, 또 50여 년 만에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하였다. 상경한 시골 사람들이 도시인으로 변하고 그 자식들이 세계도시 서울에 거주하는 이 역사에서 우리는 도시적인 것과 메트로폴리스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메트로폴리스는 그리스어로 '어머니의 도시', 즉 母도시란 뜻이다. 그렇기에 자식의 도시인 식민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이는 아주 오래전의 용법일 테고 오늘날 메트로폴리스에서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개척을 떠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어원에 대한 참고는 학문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서울은 메트로폴리스인가라는 질문은 서울의 식민지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설정은 서울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도시적 삶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 그들의 성향은 도시 안에서 여전히 비도시적인 것을 꿈꾸었고, 근대화라는 깃발 아래 도시를 만들고 싶었던 욕망들, 만들 수 있다는 신념들은 도시 공간을 바꾸어갔다. 또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과 물자들이 이동하며 국제도시 서울을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쳤고, 이런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작은 마을까지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한 서울은 도시, 나아가 세계도시로 빠르게 변해왔고 그 변화의 역동을 다른 어떤 도시들보다 '솔직하게' 드러낸다. 서울의 특수성이 메트로폴리스라는 거대 기계의 탄생과 작동 방식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다.

_임동근.김종배,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6~8쪽, 반비, 2015.

2015/11/08

물어본다

십오 년 만에 이승환의 공연을 보았다. 단풍이 흐드러진 춘천의 가을은 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내 곳곳이 다음 날 열릴 마라톤대회 준비의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90년대, 그러니까 잘 나가던 가수들 앨범이 백만 장이니 이백만 장이니 하며 엄청나게 팔려나가던 때, 나도 열렬히 그 대열에 동참했던 시절이었다. 첫 이승환의 앨범은 김동률이 만든 ‘천일동안’이 담긴 앨범 <휴먼>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친구 녀석이 다니던 대학의 캠퍼스에 축제 기간이라고 해서 놀러를 갔고, 마침 노천극장에서 크라잉넛과 이승환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물이 가득 든 플라스틱 백팩에 장착된 물총을 들고 나온 이승환의 비주얼을 잊을 수가 없다. 관객들을 향해 긴 물줄기를 쏘아대던 그의 익살스런 표정과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가 한 시간 남짓 펼쳤던 공연은, 아, 더욱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의 ‘세월이 가면’의 가사처럼, 어느덧 이렇게 십오 년이란 세월이 간 뒤 다시 만나게 된 이승환의 공연이었다. 춘천.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옛 춘천어린이회관은 의암호를 비스듬하게 등진 채 낮게 웅크리고 있었고, 그곳을 매입해 문화공간 ‘상상마당’으로 탈바꿈시킨 케이티엔지에서는 ‘상상실현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전시와 공연이 함께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춘천 시내에서 숯불닭갈비를 배불리 먹은 우리는 마땅히 짐을 맡길 곳을 찾지 못한 채 일찍 공연장으로 향했다. 의암호가 눈앞에 펼쳐진 벤치에 자릴 잡고 앞에는 돗자리를 깔았다. 사람들은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고 있었고 우리는 각자의 독서에 빠졌다. 오후의 시간은 한참 너그러웠다. 

술탄의 공연을 시작으로 혁오, 국카스텐, 이승환으로 이어지는 괜찮은 라인업. 쌍둥이 건물을 품고 있는 야외극장의 관람석은 거의 정확하게 서쪽을 향하고 있어 오후가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기대했던 혁오의 공연은 사운드의 미숙함으로, 그리고 그 미숙함을 애써 손대지 않은 아쉬움으로 결국 안타까움이 남았다. 오혁의 탄탄한 보컬도, 멤버들 연주의 성실함도 그래서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카스텐 공연 때는 미숙했던 사운드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더욱이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달빛을 머금은 어둠이 내리자 공연장은 점점 더 열기에 휩싸여 갔다. 게다가 마지막 무대는 이승환이었다. 십오 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그의 ‘공연법’은 오십이 된 그의 나이와 함께 더욱 무르익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어떻게 저 작은 체구에서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올까’가 아니라, ‘어떻게 쉰이 지난 나이가 되도록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여전할까’라는 물음을 가져야 한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이승환의 공연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 중 눈시울을 시큼하게 했던 한 곡이 있었으니, 그 곡은 나와 간혹 좋은 노래의 유튜브를 공유하던 친구 H녀석이 오래전에 알려준 곡으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들을 때마다 내 생각이 난다던’ 곡, ‘물어본다’이다. 이승환이 활동한 세월 동안 추억이 깃든 노래가 한두 곡은 아니지만 그날 ‘물어본다’의 연주가 시작되자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리고 그러한 눈시울을 한 채 목이 터져라 노랠 따라 불렀다. 연주가 끝난 뒤 밀려들었던 허탈감도 섬세하게 기억난다. 아마 다른 공연장에서 다시 이 곡의 연주를 듣게 되면 몸이 이날의 섬세했던 감각을 불러들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춘천, 가을, 시간이, 세월이 깊었다. 





2015. 10. 24. 춘천에서의 일기

2015/11/07

어린 왕자

'어린 왕자'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사막과 우물로 표상되어 있다. 삶은 권위와 계산과 술주정과 반복의 연속이다. 그것은 사막과 같이 메마른 어떤 것이다. 그러나 그 사막은 그것이 메마르기 때문에 더욱 귀중하다. 그것은 우물의 존재를 더욱 신비화시켜줄 수 있다. 우물은 구원이다. 메마른 삶속에 우물로서 표현되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메마른 삶은 더욱 가치 있다. '어린 왕자'의 표현을 빌리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의 우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가 "길들인" 어떤 것이다. 살아가면서 자기의 삶의 한 부분을 이루도록 길들인 어떤 것은 한 삶의 우물을 이룬다. 그렇다면 길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삶과 생존에 아무런 관련도 없던 것을 자기 삶의 반경 속에 끌어넣어서 자기의 삶의 일부분으로 만든다는 것, 그것이 길들인다는 행위이다. 가령 사랑이라는 것과 비슷한 행위이다. 자기 밖에 존재하는 숱한 대상 가운데서 자기와 관련을 맺을 수 있는 어떤 것을 선택하여 그것을 길들인다는 것은 한 삶의 총체이다. 한 인간의 삶은 그가 길들인 것의 총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가 길들였다는 의미에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사막과 우물이라는 명제를 보다 산문적인 것으로 바꾼다면 현실과 환상이라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 풍속과 신화 등으로 번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삶의 건조성, 객관적 현실로서의 삶의 메마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자기 삶의 반경 속에 끌어넣어 길들이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 행위를 통하여 무의미한 사건, 대상들은 빛나는 의미체로 변모한다.  
 
_김현, <어린 왕자> 139~141쪽, '옮긴이 해설', 문학과지성사.  

말들의 풍경

서가에 꽂혀 있는 김현 전집 가운데서 아무 거나 뽑아 들어 띄엄띄엄 읽노라면 문득 가슴이 울렁거린다. 거기에 내 글의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나 그 눈길을 담아내는 문체에서나 내 글은 김현의 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고 격조와 깊이에서 도저히 김현의 글과 견줄 수 없지만, 그 근원은, 행복해라, 김현의 글이었다. 

_고종석, <말들의 풍경> 323쪽,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개마고원.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들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것 자체가 마치 기름물감의 계속적인 덧칠처럼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로 덧칠되며, 그 풍경을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빛의 움직임에 따라 물의 색깔이 변하듯 변한다. 풍경은 수직적인 의미의 중첩이며, 수평적인 의미의 이동이다. 그 중첩과 이동을 낳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다. 욕망은 언제나 왜곡되게 자신을 포현하며, 그 왜곡을 낳는 것은 억압된 충동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본능적인 충동이 모든 변화를 낳는다. 본질은 없고, 있는 것은 변화하는 본질이다. 아니 변화가 본질이다. 팽창하고 수축하는 우주가 바로 우주의 본질이듯이. 내 밖의 풍경은 안의 풍경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안과 밖은 하나이다.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의 참뜻은 바로 그것이다. 그 하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 하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낳는 자리에 있다. 그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자리는 아무 곳에도 없다. 있는 것은 없음뿐이다. 그 없음은 있는 없음이다. 그 있는 없음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욕망, 아니 충동뿐이다. 욕망은 교활하게 자신을 숨긴다. 욕망은 개인의 탈을 쓰고 나타나, 자기의 흉포성을 개인적 외상으로 바꿔치기한다. 말들의 풍경은 그런 욕망의 노회한 전략의 소산이다. 그것을 제대로 읽으려면, 우리는 거꾸로 들어가야 한다. 개인적 외상을 따지고, 거기에서 개인성의 특징을 찾아, 그 개인성을 만든 노회한 욕망을 밝혀내야 한다. 그 욕망은 물론 말들의 풍경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들의 물질성 안에 있다. 아니 말들의 물질성 자체가 바로 욕망이다. 그 물질성을 갈가리 찢어 없앤다 하더라도, 말들의 물질성의 흔적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 흔적마저 없앤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말들의 검은 구멍은 없다. 아니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없다. 있는 것은 흔적들이다. 그 흔적들이 욕망이며, 충동이다. 그 흔적들 때문에 나는 있으며, 나는 없다. 나는 없는 있음이며, 있는 없음이다. 김지하의 움직이는 무야말로 바로 그것의 다른 말이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너와 달라야 하고, 나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너와 같아야 한다. 나는 너와 같이 싸우고 사랑하지만 네가 아니고, 너는 나와 같이 싸우고 사랑하지만 내가 아니다. 너와 나는, 무서운 일이지만, 흔적들이다. 욕망만이 웃는다. 불쌍한 개인성이여, 너는 네가 너를 강력하게 주장할 때, 네가 아니다.

_김현, <젊은 시인들의 상상세계/말들의 풍경> 211~212쪽, '김현 문학 전집 6', 문학과지성사.   
 

꿀벌의 무지

꿀벌은 몸통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서 원래는 제대로 날 수 없는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꿀벌은 자기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당연히 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날갯짓을 함으로써 정말로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빙성 있는 말인지 모르지만,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꿀벌의 무지와 같은 것이다.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대학 다닐 때부터 글쓰기는 곧 영어로 쓰는 것을 의미했고, 한 번도 우리말로 글 쓰는 것에 관심을 가지거나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거의 의도적으로 책도 우리말로 된 것보다는 영어로 된 것을 더 많이 읽었고,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지금도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영어이다. 그러나 나는 꿀벌과 같이 그냥 무심히 날갯짓을 한다. 그러므로 나의 글은 재능이 아니라 본능이다. 그래서 머리 속에 있는 말보다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고르지도, 다듬지도 않고 생긴 그대로 투박한 글로 옮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의 악몽은 항상 내 몸과 다리를 지탱해 주는 목발, 그리고 보조기와 연관된 것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길바닥에 앉아 있고, 사람들은 길을 가다 말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지만, 목발과 보조기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다. 이 글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꼭 그와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나는 땅바닥에 앉아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나를 에워싼 채 보고 있는 듯한 느낌. 얼른 일어나 도망가고 싶지만 일어설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당혹감. 너무 부끄러워 당장이라도 땅속으로 꺼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책을 엮게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재능도, 재주도 없으면서 '꿀벌의 무지'만으로 쓴 끌들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날지 못하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 나의 무지와 만용에 스스로 갈채를 보낸다. 못한다고 아예 시작도 안 하고, 잘 못한다고 중간에서 포기했다면 지금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_장영희, <내 생애 단한번> 6~7쪽,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