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여름 무렵, 나는 늦가을 여행을 계획했고 목적지는 쿠바였다. 처음엔 2주 정도로 계획한 기간이 쿠바를 목적지로 확정하면서 한 달로 두 배가 늘었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여행 정보를 찾기 위해 도서관 여행 코너를 들락거렸고, 마땅한 책이 없자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였는데 그러다 알게 된 영화가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하고 라이쿠더가 음악을 맡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었다. chan chan이 흘러나오며 화면은 아바나의 해안도로, 말레콘을 더듬는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 노장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말레콘의 부드럽고 거센 파도를 따라 넘실거린다. 2007년 11월 한 달 동안 나는 쿠바에 있었다.
나는 쿠바에 있었다.
8년이 지난 오늘, 2015년 11월. 나는 이수에 있는 작은 극장 맨 뒷좌석에 앉아 8년 전 컴퓨터 화면을 통해 쿠바여행을 고대하며 보았던 그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았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 사운드트랙과 라이브 음반은 꽤 자주 듣는 편이지만 영화를 다시 보는 건 음악을 듣는 것과는 조금 다른 과정이다. 디브이디 타이틀도 있고 프로젝터도 있지만 영화를 집에서 보는 것과 영화관에서 보는 건 또 다른 경험이다. 단지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의 포스터만 보아도 여전히 나는 가슴이 뛴다.
올드카에 올라탄 꼼빠이 세군도가 아바나에 있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물어 물어 찾는다. 장면은 암스테르담 공연장으로 이어지고 환호 속에 등장한 노장들은 chan chan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레콘을 넘실거리는 파도, 아바나. 영화가 시작되고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여행의 추억, 아니 추억이라기보다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딜 가나 길가에 무수히 나와 모두 아는 사람인 듯 반갑게 간섭하며 말을 거는 쿠바인들, 세월이 가득한 얼굴을 한 노인의 편안한 표정, 어디 굴러나 갈까 싶은 올드카들, 눈앞에 마주하고 나서야 실감나는 말레콘의 파도, 날아가는 새. 이곳 쿠바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런 스치는 감정을 나는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다. 극장 맨 뒷좌석.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란히 포개지던 8년 전의 감정은 영화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옅어지며 결국 사라져 갔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피할 수 없이 2015년 11월에, 이틀만 더 지나면 12월인 현실의 시간 속에 문득 서 있었다. 현실이었다. 내가 믿지 못하는 건 오히려 8년 전의 시간과 공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