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 :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수묵담채화, 1920) |
며칠 전 전화를 걸어온 아버지가 보내달라는 책, 이안 부루마가 쓴 <0년 : 현대의 탄생, 1945년>(신보영 옮김, 글항아리)이 재밌을 것 같아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아침을 먹고 데크에서 커피를 마시며 조금 읽으려고 폈는데 서두에 쓰인 벤야민의 글에 그만 관심을 빼앗기고 말았다. 역사철학테제의 글 가운데 하나로, 전에도 읽은 바 있는 글이지만 이 글은 파울 클레의 그림을 묘사하는 글이기도 해서, 베를린에서 사온 도록까지 꺼내 클레의 그림도 다시 보고, 벤야민의 글도 두 번 세 번 다시 읽었다. 흐린 주말의 오전이다.
파울 클레(Paul Klee)가 그린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이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 339쪽, 최성만 옮김, '발터 벤야민 선집 5', 도서출판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