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우화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어부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유리병을 낚아 올렸어요. 그 병에는 종이 쪽지가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답니다:

"사람들이여, 나 좀 구해주세요! 나 여기 있어요. 대양이 나를 파도에 싣고서 무인도에 갖다 버렸답니다. 모래사장에 나와 도움을 기다리고 있어요. 서둘러주세요. 나 여기 있을게요."

"이 쪽지에는 날짜가 누락되어 있군. 틀림없이 이미 늦었을 거야. 유리병이 얼마나 오랫동안 바다를 떠다녔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첫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게다가 장소도 적혀 있질 않군. 대양이 한둘도 아니고, 어디를 말하는지 통 알 수 없잖아." 

두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늦은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야. '여기'라는 섬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세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불현듯 어색한 분위기와 함께 침묵이 흘렀습니다. 보편적인 진실이란 원래 그런 법,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2024/03/21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2023)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장화 뒤꿈치로 잔디를 뜯고, 차를 몰고 가기 전에 지붕을 철썩 때리고, 침을 뱉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기를 좋아한다. 신경 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12-13)

아빠는 진짜 그러면 좋겠다 싶은 거짓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17)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27)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28)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69-70)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오늘 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 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72-73) 

대단히 바쁘지도 그렇다고 아무 일 하지 않고 보내지도 않지만, 올해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있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은 슬프지만, 짬을 내서 책을 -- 이를 테면 고다르의 인터뷰라든가, 서리북에 실린 서평 따위 -- 조각내 읽을 때면 옅은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다가 다음 주 책 모임 때문에 키건의 책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는데 비슷한 분량의 책이 한 권 더 있어 이 책 '맡겨진 소녀(foster)부터 붙잡고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우리가 꼭 필요하지 않은 말을 잘 참아내 침묵을 지킨 후에 찾아오는 다행스런 여운 같은 소설. 

2024/03/18

고다르 X 고다르 (데이비드 스테릿, 2010)

다큐멘터리 리얼리즘과 연극이 있고 이 둘은 가장 높은 차원에서는 결국 동일한 것이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 리얼리즘을 통해 연극의 구조에 도달할 수도 있고, 연극적 상상력과 허구를 통해 삶의 실재에 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위대한 감독들이 어떻게 리얼리즘에서 연극으로, 그리고 다시 그 반대로 옮겨갔는지에 관해 그들의 작품을 눈여겨보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19) 

사람들은 스크린에서 조금 이상한 것을 보는 즉시 그것을 이해하려고 지나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사실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차를 마시거나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은 즉시 '좋다, 그런데 왜 그가 차를 마시는 거야?' 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여자는 여자다>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그 영화의 의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화는 의도가 없었다. 테이블 위에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무슨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 어떤 것도 입증하고 있지 않다. 그 영화가 즐거움을 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영화가 모순적이 되기를, 꼭 함께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 나란히 놓여지기를, 즐거운 동시에 슬픈 영화가 되기를 의도했다. 물론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고 이것 혹은 저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법이지만 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하고 싶었다. (21) 

대사는 보통 촬영 전 마지막 순간에 쓰기 때문에, 배우들이 준비할 시간은 없다. 이 방식이 좋다. 나는 배우가 좋은 연기를 할 때까지 계속 리허설을 시키는 르누아르나 조지 큐커 같은 배우들의 감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배후로부터 배우가 모르게 다가가는 것이 좋다. 배우가 혼자 해낼 수 있도록 맡겨 놓고 역할을 파악하려는 배우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저절로 나타나는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멋진 순간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차츰차츰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아나간다. (23) 

'우연'을 동반한 채 일한다는 것은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영화감독들이 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연과 함께 일할 때 아마 한 번은 좋을 수 있지만 백 번이 나쁠 것이다. 그리고 언제 좋고 나쁠지를 모르기 때문에 단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을 가질 뿐이다. 우연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통제에 의해 일하는 것 모두를 해보고 싶다. 그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할리우드 감독이라고, 언더그라운드 감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 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62) 

우리가 비평을 시작했을 때에는 -- 비평은 영화를 만드는 일에로의 첫 걸음이었다 -- 프랑스 신문의 수많은 비평가들은 미장센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대답해야 했다. 우리는 감독은 단지 연출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특별히 중요한 사람, 즉 "씬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는 그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고 이제 모든 사람 -- 실력이 있는 감독이든 아니든 -- 들은 미장센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결국 미장센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아마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미학을 가질 수는 없다. (65-66) 

내 의견으로 현재 영화는 더 이상 예술 작품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볼 필요가 있다. (66) 

어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일어난 후에야 그것을 보고 분석할 수 있으며 이전과는 다르게 되도록 노력할 수 있다.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비행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코드의 언어를 말한다. 유성 영화 때문에 감독들은 차츰 이미지의 중요성과 사운드가 가진 모든 가능성을 잊어버렸다. (68)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론 조사는 그것이 의존하고 있는 가치들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포드 자동차에 대한 여론을 조사하려고 하는데, 포드가 그 조사에 돈을 댄다면, 다른 사람이 돈을 댈 때와는 아주 상이한 방식으로 일이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사회적 성격의 여론 조사를 할 때는 매우 주의해서 질문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질문이 질문자가 살고 있는 상황과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70)

영화는 촬영된 현실이고 현실에는 어떤 상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상징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삶일 뿐이다. 상징주의는 추상적인 것으로 삶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만약 제작자가 나에게 상징적 영화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면 만들 줄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71) 

모든 사람들이 삶에서 차이를 추구하려 하는 반면 사실 우리는 유사성을 추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좀 전에 나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 두 가지는 똑같다고 대답했다. 나에게 과학자와 에세이스트는 동일한 존재다. (74) 

개 (김훈, 2021)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는 살아가지를 못한다. 나는 좀 더 자라서 알았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불쌍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 (48)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2021)

좋은 음악은 '나에게 몰래 다가와' 나를 변화시키는 음악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나를 변화시킬 만남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둘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힘들의 집합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할 수 있다. 여기서 뜻밖에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을 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나를 통해 내가 모르는 무언가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안정적이고 뚜렷한 자아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이를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원자적 자아 개념을 버린 뒤 이러한 내려놓음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