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집에 잔손 갈 일이 없어지자 비로소 이제부터라도 엄두를 내야 할 것 같은 엄청난 욕구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느꼈다. 그 걷잡을 수 없는 욕구는 증언의 욕구였다. 6.25 때 오빠하고, 끝내 자기 자식을 두지 못해 나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없었던 삼촌이 비참하게 죽었다. 남들이 다 남쪽으로 피난가 있는 동안 남아 있던 우리 식구들은 강제로 찢기고 일부는 북으로 끌려가야 하는 고난을 겪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인들 안 당했겠는가.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악인으로 등장시켜 마음껏 징벌하는 소설을 쓰리라는 복수심이었다. 왜 하필 소설이었을까. 소설로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_ 박완서,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그리움을 위하여> 357쪽, 문학동네, 2013.
지금 내 나이를 반으로 툭 갈아 그 시절로 돌아가면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군대에 있던 나는 한 선임이 추천해준 책 몇 권을 읽었는데 그 중 한 권이 박완서의 것이었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소설을 읽었다는 감각만이 남아 있는 정도이지만 그 당시에도 '아주 오래된'과 '농담'이 나란히 적힌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후 책 읽기를 권장하는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소설이 소개되었던 것 같고, 작가의 자전적 소설들이 꽤 인기를 끌었었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2013년 무렵에 아주 우연한 계기로 작가의 데뷔작인 <나목>을 읽게 되면서 작가를 다시금 대면하게 되었다.
작년 어버이날, 그러니까 지금 무렵일 텐데 본가에 아버지 읽으라고 세계사에서 펴낸 박완서 소설전집을 보내드렸는데 아버지가 살아온 시절을 관통하는 소설들이어서 그런지 아버지도 그런 시대적 증언에 대한 부분을 몇 번이고 언급하셨다.
두 달 전쯤에는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의 제목을 단 작가의 인터뷰집을 읽었는데 그게 또 너무 좋아서 이번에는 문학동네에서 펴낸 작가의 단편소설 전집을 주문해 그 중 맨 끝 권인 <그리움을 위하여>를 이제 막 다 읽은 참이다.
요즘 활발히 출간되는 소설들에 견주어 보면 어디서 이렇게나 찰진 우리 말들의 향연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특유의 냉소와 농담은 또 어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