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소설은 히말라야를 걷는 동안 읽은 김화영의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에서 알게 돼 돌아오면 읽어야지 했던 것인데, 마침(?) 모디아노가 노벨상을 수상하며 어느새 국내 서점가에도 전면에 등장해 있었다. 이것도 인연이라 해야 할지.
김화영의 산문집을 읽으며 여행기는 물론 글쓰기 자체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산문집 세 권을 연달아 읽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는 언제까지나 나에게 카뮈 연구가로서 그의 전집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불문학자 정도로만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번역한 다른 책들, 이를테면 장 그르니에의 <섬>이나,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등을 읽으면서 유독 눈에 띄는 문체 스타일에 주목하게 되었다. 비록 번역서이긴 하지만 번역의 매끄러움이 남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역자 후기 따위에 실리는, 후다닥 읽어내려갈 수 없는 문장의 성질은 그의 글에 주목할 만한 계기를 주기에 늘 충분했다.
그리고 나름 결론을 내렸다. 이는 올 봄 무렵 있었던 <이방인> 번역 논쟁에 관한 것인데, 그의 번역이 소설 원문의 충실한 번역이냐 아니냐, 라는 팩트의 문제를 떠나 그는 단연코 직역을 할 수 없는 번역가라는 확신이었다. 차라리 그처럼 문장을 유려하게 끌고 나갈 수 있다면, 일정 부분의 의역은 감수하고서라도 그가 번역한 책을 읽고 싶을 정도였다. 그럴 만큼 그의 글은 좋다. 흉내내고 싶을 만큼 좋은 문장도 참으로 많이 있다. 특히나 놀랐던 건, 일찍이 생을 마감한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이었다. 그는 서른 초반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혜린이 남긴 무분별한 원고들을 추스려 책의 형태를 갖출 수 있게 했고, 책이 좀 더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서문을 그럴 듯하게 쓴 다음에 은사인 이어령 선생을 찾아가 서명을 받을 수 있게끔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 전혜린의 유고는 그의 예상대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지금은 원주에 있는 오크밸리다. 아침 일찍 광화문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교보에 들러 無에게 줄 서태지 앨범과 늘 사기를 갈망하던 키스 자렛의 음반 두 개를 샀다. 키스 자렛. 일생에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만일 오더라도, 그 기회를 좀 더 극적으로 붙잡기 위해 그의 음악을 더 많이 접하여 그에게 친숙해지고 그렇게 진정한 팬이 되도록 하자. 그러니 이것은 가정이고 그래서 미래다. 불확실하다. 확실하고 분명한 건 그에게 왠지 끌린다는 것과 그래서 앨범을 두 장이나 샀다는 것. 들어보자. 그런데 바로 오리로 가려고 했는데 리코를 깜빡해서 다시 집으로 갔다 와야 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분당에 가니 12시가 다 되었고, 자동차 검사를 받고 출발을 해서 이곳에는 네시 무렵에 도착을 했다.
문막IC를 빠져나와 산속으로 점점 들어가니 가을이 더욱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계절을 실감하며 천천히 달리다 보니 광활한 오크밸리 부지가 한눈에 시야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다가왔다.
겨울철이 되면 북적일 스키장 주변은 음산할 정도로 삭막했다. 문을 굳게 닫은 렌탈숍들, 그와 닮은 겨울용 식당들, 눈이 없어 더욱 흉측한 스키장의 코스들, 대자연 속에 방부제를 가득 넣은 음식마냥 꼿꼿하게 제 색을 유지하고 있는 골프장, 한적한 분위기와 사람들. 이러한 풍경들을 스치며 오르막을 오르려는데 막 서쪽 하늘로 곤두박질치는 태양의 빛이 수평으로 쏟아졌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골프장의 나무들 사이로 빛이 거대하게 밀려오고, 나무에 막힌 빛들은 기다란 그림자가 되어 빛의 빛을 은은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이런 자연의 낭만을 나는 언제나 사랑한다. 또 사랑한다. 그래서 기어코 차를 세워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곳은 조각공원과 인접해 있어 창밖으로 삼삼오오 짝을 이뤄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안과 밖. 안에서 나는 언제나 밖을 꿈꾼다. 밖에서는 결코 안을 꿈꾸지 않지만.
방에 한 시간 정도 머무르다가 밖으로 나가 이미 저문 해의 언저리를 반복해 바라보며 산책을 했다. 밖이 어두워지는 속도는 우리의 걸음의 속도를 금세 앞질러 어느새 저 먼 산의 이어지는 능선들이 더욱 뚜렷하게 윤곽을 지어냈고, 화창했더라면 더욱 빛났을 단풍나무들을 그토록 애잔하고 쓸쓸한 겨울나무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저녁이 왔다.
저녁은 사 먹어야 했기에 식당을 찾았다. 아침용으로 문을 닫고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 두 개를 사고, 사실상 하나뿐인 식당 ‘가림’으로 가 대구 지리를 시켜 미나리를 추가하는 열정까지 보이며 배불리 먹었다. 그만큼 맛도 깨끗하고 좋았다. 지리여, 사랑한다.
밥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이곳은 강원도였다. 계절로써 분명하게 자각하는 강원도였다. 게다가 깊숙한 산골 아닌가. 비록 이토록 거대한 인공이긴 하지만, 자연이 가까운 산골, 강원도다.
無가 센스 있게 준비해온 와인을 마시기 전, 각자 시선을 달리한 채 나는 이렇게 일기를 쓰고 無는 내가 읽어보라고 준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아, 우리가 같이 하는 게 있다. 공간과 이 공간에 울려퍼지는 키스 자렛의 연주를 무의식 중에 듣는 일.
2014. 10. 24. 오크밸리, 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