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람의 의지를 잘 믿지 않거든요. 결심은 대체로 끝까지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고 조금씩만 요구해요. 하루에 50쪽을 읽기로 했다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 양을 줄여서 다시 계획해요. 이렇게 해보고 안되면 다른 식으로, 될지 모르지만 해보는 거죠. 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굉장히 관대해요. 설계 안에서 대충하는 걸 좋아해요.
작가가 경험으로 쓸 수 있는 소설은 한 권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또, 경험을 쓴다는 건 화자에게 확고한 딱 한 번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므로 소설가에겐 맞지 않는다고 봐요. 1인칭 화자 '나'는 인물 중의 한 명이지만 동시에 편집자로서 작가이기도 해요. 사건이 다 끝난 뒤에 그것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취재를 한 화자죠. 그래서 넓은 조망을 갖고 이 말을 지금 할까 좀 있다 할까 계속 고민하면서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데 어릴 때부터 시간과 함께 자라는 과정을 따라가는 후일담 소설의 '나'는 예전 일을 서술하면서 당시의 내가 되어버려요. 자신은 굉장히 크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진행될 확률이 높은 거죠. 전 만약 마흔한 살인 현재의 나에 대해 쓴다고 해도 여든 살이 넘어 죽은 시점에서 마흔한 살을 돌아보며 어떤 의미를 갖는지 회고하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상황에 대해 모르는 현재형의 화자는 지위가 낮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긴 힘들다고 봐요.
_<진심의 탐닉> 13쪽·25쪽, '세계의 끝, 소설가 김연수', 씨네21, 2010.
늘 그렇듯(?) 많은 책들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하루에 몇 권씩 들추며 읽고 있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는 소위 믿고 읽거나 듣는 사람 중 하나인데, 다른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가 끌려 빌려온 책이 씨네21에 연재한 인터뷰 모임집 <진심의 탐닉>이었다.
재밌는 것은 영화 잡지에 연재한 인터뷰인데 그 대상이 배우부터 소설가, 엔터테이너, PD, 영화감독, 번역가, 과학자 등 다양하다는 것이고, 앞 부분의 몇 편의 인터뷰를 읽으니 역시나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독자로서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이 짧은 인터뷰 속에 그가 소설을 포함한 글을 대하는 태도가 집약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