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8

왜 집을 짓느냐고 물으신다면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라고 대답하렵니다.
하지만 요즘에 '-싶다'는 왜 그렇게 멀기만 한 욕망처럼 느껴질까요.
각자 생김새는 다르지만 유사한 욕망을 품고, 유사한 이야기를 나누고, 유사한 생활을 하며 유사하게 살아가는 것. 욕망마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과 다를 바 없어진 요즘, 어이쿠, '집을 짓는다!'니요.
남들 다 사는 아파트에서 걱정 없이, 완전하게 밀폐된 삶을 살면 될 것을.
더군다나 집을 지으면 십 년은 늙는다는데 '집을 짓는다!'니요.




만약, 집을 짓는 과정, 즉 집 짓기의 총제에 관한 책을 쓴다면 선생께서 우리에게 제일 먼저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느냐?"이다. 그 질문에 나는 아무래도 효과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건축의 언저리에 머뭇거린 대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는 오히려 즉흥적으로 반응했어야 했다. 즉,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 건축가가 꿈이었던 아내와 달리 나는 직장 생활을 한 이후에야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확실한 연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모든 일을 대할 때의 출발점이 책인 나는 건축을 전공한 동기 형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몇 권의 건축 교양서를 접하게 되었다. 그 뒤로의 확장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책에 나온 장소를 찾아가기도 했고, 몇몇 건축가에게 빠져 여러 정보들을 수집하고 접하기도 했으며, 관심은 도시를 비롯한 공간과 그 내부를 이루는 삶에 관한 영역으로 끝없이 확장되었다. 그렇다, 건축에 대한 관심, 질문은 결국 삶으로 돌아왔다. 지금 그 관심의 종착역에서 내가 대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었다. 짓고 싶었다는 욕망의 내면에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와 우리 가족 앞에 펼쳐진 도시에서의 삶이 놓여 있었다.
아내와 내가 집에 관해 나눈 대화는 다양했다. 특히 아내는 비용 면에서 집을 짓는 게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늘 강조했다. 나 역시 아내의 이런 입장에 동의했지만 그건 호불호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주거의 형태가 아파트로 획일화 되는 것에 대한 경계 즉,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주거 방식을 고민하고 선택했으면 하는 게 주거를 대하는 나의 기본 입장이었다.
언제까지나 막연하게, 우리가 집을 짓는 것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면 용인 땅콩집에서의 삶은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우리에게는 맞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매번 번거롭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녀야 하는 아파트 생활이 사라진 것도 좋았지만, 안과 밖의 경계가 느슨해진 게 무엇보다 좋았다. 아파트에서는 집 안에 들어가면 용무가 있지 않은 이상 밖에 나가는 게 영 번거롭게 생각되지만, 주택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안과 밖의 유연한 관계는 주택을 매력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바깥 공간에서 지인들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가벼운 덤에 불과했다.
용인에 이사 온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혀가기 시작했다. 단독주택이 즐비한 동네를 산책하며 우리 나름의 평을 나누고, 서로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기도 하고, 빈 땅에 새로운 집이 착공하면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중에 짓게 될 집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늘어놓는 게 산책하는 우리의 주요 이야기 소재였다. 그렇게 우리의 집 짓기에 대한 욕망은 단단해지고 있었다.

2017.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