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이들과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녕 아름답구나.
여행 준비의 마지막을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환전도 하고, 여행자보험도 알아보고, 잔뜩 설렘도 품고 있지만.
정유정의 여행기를 읽으며,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에 푹 빠졌다. 아주 매력적이다. 소요기간은 17일 정도. 이번 여정에 주어진 시간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이미 나는 고개를 돌려 에베레스트를 쳐다보며 포카라행 국내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그리고 포카라에서 나야풀을 통해 푼힐을 거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할 예정이다. 흔히 말하는 abc트레킹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비롯된 말이다.
히말라야, 그곳을 나는 거의 십 년이 다 돼 가는 2005년 2월에 가보려고 했었다. 첫 해외여행이었고 인도 바라나시에서 급하게 네팔행을 결정했고, 소나울리에 있는 육로 국경에서 비자를 받고 포카라에 가겠노라고 야심차게 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나를, 그리고 두 명의 일행을 들뜨게 했던 포카라행 버스는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하루 또 하루. 완전한 길에서의 노숙을 비롯해(정확히 어느 건물 처마에서였다) 통제된 꽉 막힌 길에서 사나흘을 보내자니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걸음을 돌린 우리는 부처 탄생지인 룸비니에서 며칠 머무르다 델리를 거쳐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떠난 인도여행에서 나는, 비틀즈가 요가를 수행했던 곳으로 유명한 리시께시를 거쳐 4300미터의 위용을 자랑하는 타포반 근처까지 2박 3일의 트레킹을 했다. 갠지스강이 발원하는 곳이라는 거대한 빙하지대를 거쳐 손발을 모두 써야 오를 수 있는 거친 코스를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곳엔 흡사 ‘구루’로 보이는 분이 허름한 천막에서 지내며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정해진 비용은 없었다. 함께 간 캐나다 여성과 내가 지불한 금액이 얼마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삭막하고 시리던, 그렇지만 찬란했던 풍경을 기억한다. 멀리 시야가 닿는 곳에는 대한민국에서도 원정대가 와 있다는 베이스캠프가 있었다. 깃발이 나부끼는 것 같기도 했고, 텐트가 여럿 보였던 어스름한 기억들.
그런 추억 아닌 추억이 있는 곳이, 나에겐 히말라야다. 그리고 다시 네팔, 포카라, 안나푸르나로 나는 간다.
8년 전의 히말라야, 타포반, 인도, 2006 |
2월에 항공권을 예약할 때만 해도 언제 9월이 오나 싶었다. 히말라야에 간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니면서도 간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 중에, 내가 예약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는 두 차례나 세계사에 남을 사고로 산산히 부서지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흔하지 않은 항공기 사고에 비하면 아차 싶은 주기이기도 하지만, 내가 취한 조치는 미리 예약해둔 비행기 스케줄의 변동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항공사에 컨펌 메일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십 년 전만 해도 현재의 이티켓이 아닌 종이항공권이었고, 출발 1, 2주 전에 항공사에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내가 예약한 항공 스케줄을 재확인(리컨펌)해야 했다. 2014년 지금의 나는 십 년 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가 메일을 보내고 받았으며, 엊그제 다시 한 번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확인했다.
지상의 밤은 미국의 독립영화 감독 짐 자무시의 영화 제목이다. 내가 영화를 봤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트레킹을 위한 출국을 하루 앞두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 말을 떠올렸고, 곧 내가 밟을 고도(高道)의 땅을 은근하고 꽉찬 설렘으로 기다린다. 그곳은 어떤 풍경으로 나를 압도할까. 나는 궁금하다. 해뜨기가 무섭게 걷기 시작해 매서운 추위가 닥치는 해질 무렵 전에 걷기를 마무리하는 하루 하루가 나에게 선사하게 될 감흥을, 자연의 존재를, 생명의 신비를. 뻔하다. 무턱대고 나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염없이 멀어지는 밟아온 길에 흘리며 같은 생각을 하고 또 할 것이다. 그러다가 대자연 앞에 겸허함으로 몸을 움츠릴 것이고, 그런 과정을 트레킹을 할 열흘 내내 반복할 것이다.
안녕, 나마스테, 타시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