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게으름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글을 쓰고자 하는 나의 욕망, 혹 열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니, 아주 오래되었지만 그것을 몸소 깨닫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하는 게 좀 더 맞는 말일 거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로 기억이 되는데, 그때부터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문구점에 가서 산 일기장이 하나둘 모여가며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군대에 가서는 수양록이라고 하는 걸 썼다. 모두 쓰게끔 되어 있는 것이었지만 늘 일기를 써오던 내게는 좀 더 특별하면서도 일상적으로 생각되었다. 제대를 하고, 인터넷 문화가 더욱 발달한 한참이 지나서까지도 나는 손일기를 썼다. 지금도 물론 손일기를 쓴다. 짧게는 다이어리에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있고, 따로 마련한 일기장에 가끔 조금 긴 일기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랩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의 편리함을 뿌리치지 못해 이제는 쓰는 게 아닌 입력하는 일기의 양이 훨씬 많아졌다. 뭐라도 좋다. 내겐 쓴다는 행위가 중요하므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을 했다. 여행을 기록하고, 일상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블로그 따위에 잡다함을 남기는 등의 다양한 기록들에 대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 그러니까 내가 쓰는 것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쓴다고 쓰는 것 같은데 뭔가 체계가 없고 어딘가에 마구 흩어져 있으며 머릿속과 마음속에 들어있는 온갖 쓰고자 하는 것들은 나 자신의 밖으로 나올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간단하게는 블로그를 만들어 제목을 만들고 폴더를 설정해 쓰고 싶은 주제들을 구분해 가며 쓸 수도 있을 텐데, 벌써 몇 개의 블로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충동적으로 쓰는 것 외 제대로 써본 경험이 없다. 그건 체계의 문제이기도 질서의 문제이기도 했다. 뭔가 그럴 듯한 형태의 것으로 내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들은 결국 내겐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올해 들어 주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구글드라이브의 편리함은 내게 의지만 있으면 모든 쓰는 것들을 손쉽게 어디서든 관리할 수 있게 해 주고 있지만 드라이브 안에 가지런히 늘어선 다양한 폴더와 파일 들은 지금껏 문제가 됐던 건 다름 아닌 ‘당신의 게으름 때문이오!’ 라고 꾸짖는 듯했다. 모든 것들을 아카이브화 하자는 생각이 들면서 구글드라이브를 더욱 애용하고 있는데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고도 안 되는 게 있으니 그것 역시 게으름이며 이런 내 게으름을 극복해내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필립 로스의 말마따나 영감에 의지해서, 비록 아마추어 중에서도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아마추어처럼 단번에, 스치는 영감을 포착해 쓴다는 건 쓰는 행위가 아니라 편의에 따르는 기회주의적인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쓴다는 건 그 어떤 야심도 아니고 그 어떤 번뜩이는 영감도 아닌 올곧은 밀고 나감이다. 사실 그런 의지의 표명으로 올해의 일기장 제목을 <밀고 나감>으로 정하지 않았던가?
계절을 타기 때문은 아니지만 이번 봄, 계획했던 쓰기가 대부분 중단되었다. 쓰고 있던 쓰기를 포함해 진작에 쓰고자 했던 <서울>은 장소에 대한 떠올림만 있었지 쓰기는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을 쓰고 싶었던 건 이제 서울에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그건 예감의 문제이자 현실의 문제였다. 바득바득 떼를 쓰는 아이처럼 고집스럽게, 사실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느슨주의자의 집요함으로 여전히 서울에 머무르고 살고 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그건 머리로부터라기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껏 서울에 살며, 약 12년 정도, 좋아했던 장소에 대해 기록을 해보자고. 동네인 돈암과 성북동을 비롯해 가까운 낙산공원과 계동을 비롯한 북촌 일대, 광화문과 서촌 일대, 부암동과 멀리는 상수동까지. 이건 단순히 장소를 말하려는 목적의 글은 아닐 것이다. 나의 추억이 담길 것이고 그래서 나는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서울'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습관처럼 가던 곳들이라 옛 사진이라 해봐야 별것 없겠지만 그래도 앨범을 뒤적여 사진들을 하나둘 찾고, 이참에 그곳들을 다시 찾아 새로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아주 익숙하면서도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이제 봄이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우리 앞에 들어서겠지만 왠지 마음이 봄처럼 생기 있게 반짝거림을 느낀다. 이토록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게 글이라는 형식을 빌러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고맙고 기쁘다.
2014. 5. 25. 청량리로 가는 열차에서
글을 쓰고자 하는 나의 욕망, 혹 열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니, 아주 오래되었지만 그것을 몸소 깨닫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하는 게 좀 더 맞는 말일 거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로 기억이 되는데, 그때부터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문구점에 가서 산 일기장이 하나둘 모여가며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군대에 가서는 수양록이라고 하는 걸 썼다. 모두 쓰게끔 되어 있는 것이었지만 늘 일기를 써오던 내게는 좀 더 특별하면서도 일상적으로 생각되었다. 제대를 하고, 인터넷 문화가 더욱 발달한 한참이 지나서까지도 나는 손일기를 썼다. 지금도 물론 손일기를 쓴다. 짧게는 다이어리에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있고, 따로 마련한 일기장에 가끔 조금 긴 일기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랩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의 편리함을 뿌리치지 못해 이제는 쓰는 게 아닌 입력하는 일기의 양이 훨씬 많아졌다. 뭐라도 좋다. 내겐 쓴다는 행위가 중요하므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을 했다. 여행을 기록하고, 일상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블로그 따위에 잡다함을 남기는 등의 다양한 기록들에 대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 그러니까 내가 쓰는 것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쓴다고 쓰는 것 같은데 뭔가 체계가 없고 어딘가에 마구 흩어져 있으며 머릿속과 마음속에 들어있는 온갖 쓰고자 하는 것들은 나 자신의 밖으로 나올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간단하게는 블로그를 만들어 제목을 만들고 폴더를 설정해 쓰고 싶은 주제들을 구분해 가며 쓸 수도 있을 텐데, 벌써 몇 개의 블로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충동적으로 쓰는 것 외 제대로 써본 경험이 없다. 그건 체계의 문제이기도 질서의 문제이기도 했다. 뭔가 그럴 듯한 형태의 것으로 내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들은 결국 내겐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올해 들어 주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구글드라이브의 편리함은 내게 의지만 있으면 모든 쓰는 것들을 손쉽게 어디서든 관리할 수 있게 해 주고 있지만 드라이브 안에 가지런히 늘어선 다양한 폴더와 파일 들은 지금껏 문제가 됐던 건 다름 아닌 ‘당신의 게으름 때문이오!’ 라고 꾸짖는 듯했다. 모든 것들을 아카이브화 하자는 생각이 들면서 구글드라이브를 더욱 애용하고 있는데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고도 안 되는 게 있으니 그것 역시 게으름이며 이런 내 게으름을 극복해내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필립 로스의 말마따나 영감에 의지해서, 비록 아마추어 중에서도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아마추어처럼 단번에, 스치는 영감을 포착해 쓴다는 건 쓰는 행위가 아니라 편의에 따르는 기회주의적인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쓴다는 건 그 어떤 야심도 아니고 그 어떤 번뜩이는 영감도 아닌 올곧은 밀고 나감이다. 사실 그런 의지의 표명으로 올해의 일기장 제목을 <밀고 나감>으로 정하지 않았던가?
계절을 타기 때문은 아니지만 이번 봄, 계획했던 쓰기가 대부분 중단되었다. 쓰고 있던 쓰기를 포함해 진작에 쓰고자 했던 <서울>은 장소에 대한 떠올림만 있었지 쓰기는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을 쓰고 싶었던 건 이제 서울에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그건 예감의 문제이자 현실의 문제였다. 바득바득 떼를 쓰는 아이처럼 고집스럽게, 사실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느슨주의자의 집요함으로 여전히 서울에 머무르고 살고 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그건 머리로부터라기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껏 서울에 살며, 약 12년 정도, 좋아했던 장소에 대해 기록을 해보자고. 동네인 돈암과 성북동을 비롯해 가까운 낙산공원과 계동을 비롯한 북촌 일대, 광화문과 서촌 일대, 부암동과 멀리는 상수동까지. 이건 단순히 장소를 말하려는 목적의 글은 아닐 것이다. 나의 추억이 담길 것이고 그래서 나는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서울'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습관처럼 가던 곳들이라 옛 사진이라 해봐야 별것 없겠지만 그래도 앨범을 뒤적여 사진들을 하나둘 찾고, 이참에 그곳들을 다시 찾아 새로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아주 익숙하면서도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이제 봄이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우리 앞에 들어서겠지만 왠지 마음이 봄처럼 생기 있게 반짝거림을 느낀다. 이토록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게 글이라는 형식을 빌러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고맙고 기쁘다.
2014. 5. 25. 청량리로 가는 열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