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아침이 밝았다.
혁명박물관, 카피톨리오 등 아바나의 주요 볼거리들이 몰려 있는 센트로 아바나 지역은 다시 아바나에 돌아왔을 때 숙소를 그쪽으로 잡고 둘러보기로 했기에, 혁명광장에나 우선 들를 생각으로 숙소를 나섰다. 말레콘에 가까웠던 숙소였기에, 밖으로 나오자 잔뜩 흐린 날씨에 걸맞는 바람이 말레콘에서 잽싸게 불어오곤 했다. 아무 감각이나 알아봄 없이 눈에 띄는 식당에 가서 커피와 샌드위치, 생수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잔이 생각날 만큼 작고 앙증맞은 잔에 담긴 커피는 진한 맛을 냈고, 샌드위치는 전자렌즈에 반쯤 익힌 듯했다. 그런데 7페소(컨버터블을 말한다). 아바나의 물가를 여지없이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쿠바의 화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쿠바인(Cuban)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페소(peso)와 여행객들을 위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붕괴 이후 관광시장을 개방하며 만들어진 컨버터블 페소(Cuban convertible peso). 쿠바를 여행하다 보면 육안으로도 일반 페소와 컨버터블 페소를 쓰는 곳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두 페소 간 체감하게 되는 물가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컨버터블 페소는 거의 달러와 맞먹는 가치를 지니고 있고, 일반 페소는 그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싼 편이다. 처음엔 잘 모르는 상태에서 컨버터블로만 환전을 했었는데 여행을 하며 요령이 생겨 일반 페소도 넉넉히 환전을 해 경비를 아낄 수 있었다.
아직 아바나의 아침은 생기가 돌기 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말레콘을 서성이다 마눌루라는 낚시 청년을 만났으니, 별 통하지도 않는 대화를 억지로 해가며 함께 산책을 하다 괜찮은 곳이 있다는 녀석의 꾐(처음엔 몰랐다)에 들어간 곳에서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서나 나올 법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이미 그로 인해 분위기 하나는 끝내주는 인상을 풍기며 모히또를 팔고 있었다. 아, 모히또. 연거푸 두 잔을 들이키고는 한 잔 더 마셔도 되냐는 마눌루를 겨우 제지하며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혼자가 되고 보니, '당했군.'이란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그렇게 쿠바에서 처음 모히또를 마셨다. 기억도 나지 않는, 떨떠름한 맛의 모히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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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처음 모히또를 맛보게 한 청년, 마눌루 |
Plaza de La Revolución
혁명광장의 한쪽엔 체(Che Guevara)의 철골 모습이 인상적인 내무부 건물이, 건너편엔 거대한 호세 마르띠(José Martí)의 동상이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차분히 앉아 있고 그 뒤로 메모리얼이 우뚝 솟아 있다. 메모리얼에는 전망대도, 체를 추모하는 공간도 함께 있다.
호세 마르띠는 누구인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는 체 게바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쿠바에서는 시인 - 언론인 - 정치인으로서 에스파냐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쓴 진정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음을 쿠바 어디를 가나 쉬 알 수 있다. 이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게 1페소짜리 지폐에 그려진 그의 모습이다. 1페소는 쿠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폐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쿠바인들과 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재밌게 생각됐던 건, 체 게바라의 경우 3페소 지폐와 동전에 그려져 있는데 1페소나 10페소 짜리에 비해 잘 쓰이지 않다보니 체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기와 더불어 하나의 상품이 되어 버렸다. 나는 운이 좋게도(?) 산티아고에서 바나나를 사며 순진한(?) 상점 주인이 거슬러준 잔돈에 3페소 동전이 섞여 있었다. 물론 내가 순진한 것일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3페소 동전만 유통이 사라졌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아바나에서는 체 게바라 동전을 살 생각이 없냐며 묻곤 하던 쿠바인들이 몇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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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가 그려진 3페소 동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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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르띠 메모리얼, 아바나, 쿠바,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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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기억되는 체 게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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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르띠 메모리얼 로비에 위치한 체를 위한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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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르띠 메모리얼에서 바라본 베다도(Vedado) |
Parque Lennon
레논 공원에 가기 위해 혁명 광장을 벗어나 걸음을 내딛었다. 아바나에서는 지도상으로 꽤나 멀어보이는 곳도 워낙 구역들이 잘게 나뉘어져 있어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레논 공원에 도착하니 우거진 나무가 한층 밝아진 날씨와 어우러져 소규모 숲처럼 아늑함을 주었고 곳곳에 비치된 철제 벤치는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띄엄띄엄 걷는 사람들도 보이고, 나 역시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며 공원을 거닐었다.
그곳엔 공원 이름에 꼭 맞는 레논의 동상이 철제 벤치에 앉은 채로 있는데 어째 모습이 어색하다 했더니 어라, 레논의 트레이드마크인 안경이 없었다. 어리둥절해 하며 사진을 찍으려 로모를 꺼내 들었는데 어느새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오시더니 어라, 셔츠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는 게 아닌가. 허허. 할아버지는 말없이 표정이 없는 레논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살며시 안경을 씌우고는 나더러 레논 옆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내 카메라를 넌지시 가리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친절에 가득 밀려 나오는 웃음을 조금씩 나눠 뱉으며 슬쩍, 레논의 옆에 앉았다. 얼핏 보기에도 할아버지가 잡은 로모의 각은 치켜올라가 있었지만 말없이 그의 모습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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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논 공원, 아바나, 쿠바,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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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레논 안경 담당 할아버지 |
로모를 주인에게 되돌려준 할아버지는 다시 레논에게서 안경을 벗기고는 원래(?)의 위치인 그의 셔츠 주머니에 집어넣고 반대편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할아버지의 시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왠지 나는 비흡연자임에도 불구하고 시가 향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으나 차마 한 대 달라는 말은 못하고 그가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이 손짓으로 그를 벤치에 앉히고는 사진을 찍어드렸다(미처 전해드리진 못했지만). 아침에 얼떨결에 마눌루에게 살짝 당한 분을 할아버지의 친절이 말끔히 해소해 줬다. 기분이 마구 좋아진 나는 황급히 달려 가까운 곳에 있는 가게에서 주스 두 개를 사 할아버지와 사이좋게 나눠 마시며 그 기분을 이어갔다.
미리 생각했던 일정을 마쳤으나 아직 해도 지지 않았고 오후가 한 뼘 이상 남아 있었기에 공원에서 일기도 쓰고 책도 읽을 생각으로 한적한 공원 구석에 앉았다. 시간의 흐름이 눈앞에 보일 듯, 잡힐 듯했고 낯선 곳에서 느끼는 그런 기분을 나는 언제나 사랑하였다. 한참을 고개를 숙인 채 책도 읽고 졸기도 하며 있었는데 어느새 앞에 보니 백발의 노인 한 분이 앉아 계셨다. 할머니 역시 책을 읽고 계셨는데 곁에는 할머니와 아주 잘 어울리는 검은 개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이방인으로서 이방인을 도촬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금세 눈치챈 할머니는 나를 보며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표정의 미소를 지어보였고 나 또한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들어 한 컷을 (더)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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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한참을 레논 공원에서 머무르다 왔던 길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 말레콘을 따라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어느새 저물어 있었다. 말레콘에, 아바나에 어스름이 닥치고 저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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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ecón, La Habana, Cuba, 2007 |
숙소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주인은 들어오지 않았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문이 열린 다른 방에서 엎어져 쉬고 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주인이 들어와서 전혀 다른 열쇠로 문을 열어 주었다(내게 주었던 열쇠는 정체가 뭘까). 날이 밝으면 아침 산책을 하고 아바나를 떠난다. 어차피 쿠바를 떠나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하므로 아바나에 처음부터 오래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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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언론(심지어 구글맵까지)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La Habana)'를 영어 발음 그대로 '하바나'로 쓰는 경우가 많다. '빠리(Paris)'를 '패리스'라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에스파뇰에서 'H'는 묵음이니 '아바나'로 부르고 쓰는 게 맞다. 대신 에스파뇰에서 'ㅎ' 발음은 'J'가 담당한다. 호세(José) 마르띠처럼. 참고로 쿠바를 대표하는 럼(Rum)인 아바나 클럽(Havana Club)은 수도 아바나와는 철자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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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비우지 않은, 아바나 클럽 |
<노트에 남은, 말레콘에서의 생각>
요즘 같이 기류에 편승하는 시대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간직한다는 건 드문일일 것이다. 말 그대로 비슷한 옷을 입고, 남들 눈에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않고. 자라면서 언제부턴가 아빠의 질문에, 또는 요구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뭔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지라도, 그 길을 직접 가보고 나서 내가 스스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우린 시간 맞춰 찍어내는, 틀에 박힌 거푸집에 의해 생산되는 덩어리 따위는 아니다. 어느 누구도 우릴 만들어낼 순 없다.
사실 여행, 독서, 산책, 사색. 이런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나는 몰라보게 자신에게 변화가 왔음을 느꼈다. 얕지만 짧은 기간 채식도 시도해 보았고, 어느 곳이건 혼자 걸어보면서 스스로와 마주 할 수 있었으며, 자그마한 책에서지만 몇몇의 위대한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가장 크게 받아들여야만 했던 사실은, 나는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주변 사람들이 싫게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좀 더 내가 원하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런 사람이고 싶다. 내 자신에게 무슨 큰 변화 따위를 주려고 이 짓을 하는 게 아니다. 여전히 이곳에서도 난 그저 평범하고 소심한 인간일 뿐이다. 난 그저, 여행이란 행위가 즐겁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 온통 내겐 설익은 과일 마냥 떫은 맛뿐이다. 이런 곳을 걷는 게 좋을 뿐이고 이런 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무엇보다 짜릿하다. 예전에 인도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도 얘기했듯 난 그저, 그곳에 있는 게 좋을 뿐이다. 어떤 몽상가적인, 낯선 꿈을 꾸며, 여러 날을 헤매이자. 돌아갈 그날까지.
여기에서나 한국에서나 새벽은 내게 친숙하다.
2014.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