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3

영화

철학자 들뢰즈는 단언적으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어떤 영화도 자기가 만들어진 대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영화가 던져진 역사로부터 벗어나고, 자기가 만들어진 땅을 떠날 때, 그 영화들의 대부분은 치매에 걸리게 된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과 이야기에만 매달리게 된다. 자기를 영화 마니아라고 소개하는 분이 아는 게 영화밖에 없을 때 그분에게 영화를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어진다. 이건 경험적인 이야기이다.
어떤 영화에 대해서도 결론지으면 안 된다.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나빠도 그렇다고 결론지으면 안 된다. 긴 시간을 두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화를 본 다음 그 영화를 버리는 것은 영화에 대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디브이디가 된 다음 영화를 버리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냥 버리면 된다. 그러나 자신이 버리는 것은 디스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세상이라는 영화임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의 하나는 영화에 별점을 매기는 것이다. 영화에 별점을 매기는 순간 그 영화는 그 점수의 단정적인 무게 아래 생각의 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영화는 자꾸만 생각해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다음 여배우와 하룻밤을 보낸 동수는 "생각을 더 해야 해,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게 오래 살 수 있도록"이라고 말한다(홍상수의 <극장전>). 그렇다 생각을 더 해야 한다. 그것만이 영화를 보고 나서 죽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이 생각을 멈출 때 당신은 영화를 본 시간만큼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를 많이 볼수록 당신은 살아 있으면서 죽은 것이다. 그것이 남의 삶을 훔쳐본 영화의 복수일 것이다.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납량 특집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은 죽으러 영화를 보러 가실 참인가, 아니면 그 유혹 속에서 살아서 버틸 것인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정성일,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