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15

매년 1월 초에는 프랑크푸르트 근처, 노이-이젠부르그의 동부, 호이젠슈탐에 있는 중학교 체육관에서 기이한 축제가 열린다. 루프탄자 항공사 여객들이 분실하고 찾아가지 않은 여행가방을 경매하는 것이다. 경찰이 미리 수색하여 그 속에 무기나 마약, 혹은 시체 따위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다시 밀봉해놓은 가방들이다. 반면에 이 가방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오직 닫아놓은 가방을 보여준 다음 그 무게만을 공개한다. 그러나 일단 구입이 결정되면 가방은 즉시 개봉되어 낄낄대는 관중들 앞에 그 내용물이 쏟아진다. 그야말로 도깨비상자다. 그것은 또한 사생활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가는 일이요, 많게든 적게든 내면적이고 시사적이며 잡다하게 뒤섞인 몇몇 물건들을 통하여 재구성한 한 운명의 발견이기도 하다.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설 연휴 동안 받아만 놓고 미처 읽지 못한 문예지를 뒤적이다가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 중에서 매우 이색적인 경매 이야기를 보고 혼자서 웃은 일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온갖 것을 다 경매에 부쳐서 잊혀진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고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보는가 하면 이미 죽은 사람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기도 한다. 고인이 된 지 오래인 왕년의 스타의 연애편지나 착용하던 신발, 속옷 등속이 고가로 팔렸다는 해외토픽을 접하면 그걸 그렇게 비싸게 사서 어디다 쓰려는 걸까 공연한 걱정이 되기도 하고, 생전에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면이 드러난 편지가 공개되는 걸 보면 세속의 호기심은 저승길까지 마다 않고 쫓아다니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투르니에가 쓴 경매는 그런 큰 이익이나 세인의 호기심을 겨냥한 게 아니라 지극히 사소하고 유쾌한, 서민적인 축제 같은 경매에 대해서이다.

<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 실천문학사




플래너리 오코너는 <단편 소설 쓰기>라는 소박한 제목이 붙은 에세이에서, 글쓰기란 발견의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단편 소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자기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기가 보기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무언가를 쓰기 시작할 때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을지 의심스럽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착한 시골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었다. 작품이 끝나기 직전까지, 자기도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쓴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것이 나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거기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을 쓸 때 이런 방법을 이용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의 결점이 드러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 문제에 대해 털어놓은 글을 읽고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글쓰기에 대하여> 레이먼드 카버, 안종설 옮김, 집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