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6

경리단길은 처음 가 보는 곳이다. 홍대 일대만큼이나 유행에 민감하다는 얘긴 진작에 들었지만 따로 와 볼 기회가 있었던 건 아니었기에. 다른 무엇보다 내겐 - 혹 우리에겐 - 결혼식을 치른 남산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조금은 친숙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오가는 길목에서 ‘거대’할 정도로 가까이 눈에 잡히던 남산타워.
지난 일주일 동안 그놈의 편도염 때문에 無가 너무 고생을 했기에 쉬게 해 주고 싶기도 하고, 나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된 제천을 다른 식으로라도 보답하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김목인의 공연이 있었다. 그래 저녁도 외식을 하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143번을 타고 한 번에 간 경리단길은 가까웠다. 종로를 통과하는 게 어렵지 남산을 관통하니 곧장 용산. 바로 버스에서 하차해 육교를 건너니 외국인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좁은 골목마다 펍들이 들어찼고, 계절에 맞게 느슨하게 앉아 다들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아, 맥주를 마실 수 있었으면.
오르막을 따라, 차가 다니지 않았으면 싶은 2차로 곁의 좁은 인도를 걸었다. 저녁은 팬스테이크에 볶음밥. 처음으로 약간 매운 밥을 먹었는데 이제는 거의 다 나은 듯 목이 자극적이지 않았다.
공연이 열리는 뮤직펍으로 가는 길에 앙증맞은 팬이 돌아가고 있던 2층 숍에 들러 천일홍 작은 다발을 사고도 공연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김치사운즈에 도착했다. 두 테이블이 차 있었는데 그 중 한 테이블에는 벌써 도착한 김목인이 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자릴 잡고 앉아 無는 칵테일을 나는 주스를 주문. 금세 사람들이 들어찬 김치사운즈는 북적북적.
아홉 시가 되자 펍에서 하는 작은 공연인 만큼 다른 세션 없이 홀몸으로 기타만 챙겨온 김목인이 눈높이의 차이가 없는 무대에 올랐다. 따로 리허설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사운드를 맞추고. 베이스가 두텁고 에코가 심한 소리가 점점 잡혀가는가 싶더니 공연이 시작됐다.
입구에 자리 잡은 무리의 사람들도 공연이 지속되자 목소리를 줄이고, ‘꿈의 가로수길’로 시작한 공연은 결혼식 때 사전 음악으로도 튼 ‘스반홀름’, 리듬을 좋아하는 ‘말투의 가시’ 등을 거쳐 ‘그게 다 외로워서래’로 마무리 됐다. 추가되는 한 곡의 앵콜. 제목은 모르겠는 오리가 주인공인 보사노바.
공연 중간 멘트에서 김목인은 쑥스럽게도 ‘이 자리에 축가를 부른 부부도 와 있다’며 말로써 우릴 지칭했다. 나는 새봄 덕분이지만, 결혼식 불과 사흘 전에 섭외한 축가에 대한 고마움을 핑계로 김목인에게 거듭 연락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챙겨준 박노해 시인의 <다른 길>을 잘 읽고 있는지, 은효의 옷은 몸에 잘 맞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식이 끝나고도 따로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저 결혼식 카메라에 잡힌 그의 연주 사진 몇 컷을 보내주는 것으로 그쳤을 뿐. 하지만 궁금은 했기에, 공연이 끝나고 인사를 할 때 ‘잘 지내시냐?’, ‘옷도 너무 예쁜 걸 주셨더라.’는 말을 건넸을 때 기분이 좋으면서도 여전히 쑥스러웠다. 김목인은 솔로 데뷔 때부터 좋아했고 개인적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을 만큼 그의 인간적 모습을 좋아하는 나지만, 괜히 공개적으로 언급되거나, 공연장 같은 데서 말을 섞는 게 인사치레라고는 하지만 영 어색하기만 하다. 빨리 자릴 뜨고 싶을 만큼. 그럼 돌아서 계단을 내려오며 생각을 하지, 아, 다행이다, 옷이 잘 맞는다네.
이제 어엿이 김목인은 내가 언니네이발관 다음으로 공연을 많이 찾아본 음악가가 되었다. 無도 흐뭇해 하고, 연휴의 밤이 이렇게 채워지니 기분은 가벼워지고 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