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4

나는 왜 내 삶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보려고 하는 걸까. 

숙고 끝에 하는 결정을 이제는 잘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다. 

"왜 안 해요?"

이 질문에 답을 못해서 한다는 게 글로써 우스워 보이지만, 사실이다.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렇다면 내 안에, 그 무엇인가, 지금쯤의 삶에서, 어떤 갈증이 있었던 것일까. 

언론인 손석희가 진행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는 주말 아침, 손석희의 미국 경험담을 듣다가 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더 정확히는 "새로운 걸 추구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고 하는 손석희의 말 때문에.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닥친 게 아닐까 싶은 공감에. 

2024/08/01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2014)

모든 사랑은 환영이고, 모든 소통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뤄지는 불가능의 제스처란 것을. 모든 경험은 주관적이고, 현실은 기껏해야 모호하며, 슬픔은 모두의 삶에 상시적이다. (234)

'모든 비평은 일종의 자서전이다'라는 책의 첫 문장을, 독자는 책을 다 읽은 뒤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불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독서도 일종의 자서전이다.' 우리는 각자 자의식의 짐을 지고 혼자 걷는 사람들이지만 그 처지만큼은 다들 같다는 것, 그것을 우리는 타인의 글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대한의 위안이다. (237)

이것은 데이비드 실즈의 글이 아니라, 옮긴이 김명남의 문장이다. 물론(?) 아직 본문을 읽기 전이다. 가끔 옮긴이가 누구냐에 따라 옮긴이의 글을 먼저 읽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런 근사한 옮긴이의 글이라면, 당장 본문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