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옥, 카슈미르


오늘 낮에 읽은 프레시안 기사 제목이다.  
카슈미르에 대해서는 거칠게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인도 여행을 하던 십 년 전 얘기고, 실로 간만에 카슈미르에 대한 기사를 읽으니 그 지역의 비극적 역사에 숨이 막혀온다. 
그렇지만 십 년 전 나는 막무가내 여행자. 두 번째 찾은 인도에서의 가장 궁극적 목적지는 레Leh였고, 그곳에 가는 길에 들른 곳이 바로 카슈미르의 주도 스리나가르였다. 분쟁이 심해 경비가 삼엄하다는 그곳에, 지금 생각하면 굳이 갈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달 호수에서 보낸 이박삼일의 기억은 그런 위험 따위는 뒷전으로 밀어둘 만큼 경계가 흐릿한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다. 
분명한 기억은, 당시만 해도 스리나가르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달 호수에 떠 있는 숙소에 묵으며 숙식을 해결하고, 당연하게 이동을 하려면 시카라라고 부르는 배를 타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운치는 넘치지만 그 운치의 내부를 채우는 건 지독한 고독감 따위라는 것. 왜냐하면 당시 호수 위에서 마치 갇힌 듯이 지내는 게 나중에는 몹시도 따분하게 생각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야말로 고독을 밀어내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더, 더, 더, 끄집어내 기억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난 노트를 들춰봐도 당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질 않다. 오래된 사진을 꺼내보며 추억을 보듬을 수밖에.




2016/07/12

길 떠나는 이에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 그 무한한 긴장, 기대와 걱정. 배낭의 무게는 거기에서 결정된다. 나는 無用의 결혼식에 부친 詩에 이렇게 썼다. 


   벗이여, 
   이제 우리 긴 여행을 떠나자
   겨우내 얼었던 땅과 나무
   대지를 풍요롭게 하네
   살아있음을 실감케 하는 
   햇살, 바람의 손짓 따라
   떠나자, 여행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따르는 믿음과 사랑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마음과 손과
   발이 대신하리
   우리는 기꺼이 연대하리
   짐을 꾸리자, 벗이여
   우리 앞에 놓여진 그윽한 길
   발을 내딛는 순간, 삶은
   여행이 되리  


그렇다. 얼마든지 삶은 여행에 비유될 수 있다. 같은 장소를 가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여행이듯 삶도 얼마든지 그렇다.
어제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K였던 J가 오후 느즈막이 집에 들렀다. 집에서 가장 시원한, 식탁에 자릴 잡고 앉아 냉장고에 든 맥주를 모두 비우며, 앞으로의 시간과 누군가의 경험에 대해 논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지?)
주제넘게도, 내가 한두 마디 거들 수 있었던 건 고작 서너 해 더 먹은 세월의 겹일 뿐인데도, 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말은 거만하다.
집과 아이와, 어떤 느슨한 결속에 대해. 그리고 '때時'에 대해.
조금은,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방향으로 삶의 머리를 틀고 싶다는 누워있는 생각.
맥주를 다 비우고 동네 산책을 하고, 오후에 내려둔 커피를 나눠 마시고, J는 떠났다.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렸다고 말하게 될까? 포조가 그의 짐꾼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얘기를 했다고 말하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 (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벗겨지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잠들어버린다. 블라디미르가 그를 바라본다) 저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다시 얻어맞은 얘기나 할 테고 내게서 당근이나 얻어먹겠지... (사이)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 친구는 잠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 자게 내버려두자고. (사이) 이 이상은 버틸 수가 없구나. (사이)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지?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151-152쪽, 오증자 옮김, 민음사

오랫동안 읽고 싶어했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베케트. 이름이 주는 뉘앙스 때문인지, 나는 지금껏 베케트가 프랑스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일랜드 태생. 그러니까 버나드 쇼에 이어서 연이어 희곡을, 그것도 아일랜드 출신 작가의 작품을 읽은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제임스 조이스, 조지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까지. 후에 오스카 와일드를 읽을 기회도 있겠지.
아직은 생소한 희곡이라는 장르의 맛은,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 만끽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쇼의 <피그말리온도>도 그랬지만, <고도를 기다리며> 역시 읽는 맛보다 무대에 올려진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과연 이 생경한 대화들을 배우들이 어떻게 소화해나갈지, 자뭇 궁금하다.

그리고 내게 베케트를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

출처: National Portrait Gallery(npg.org.uk)

2016/07/02

나의 생존 증명서는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
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

꽃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사람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