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2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렸다고 말하게 될까? 포조가 그의 짐꾼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얘기를 했다고 말하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 (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벗겨지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잠들어버린다. 블라디미르가 그를 바라본다) 저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다시 얻어맞은 얘기나 할 테고 내게서 당근이나 얻어먹겠지... (사이)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 친구는 잠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 자게 내버려두자고. (사이) 이 이상은 버틸 수가 없구나. (사이)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지?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151-152쪽, 오증자 옮김, 민음사

오랫동안 읽고 싶어했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베케트. 이름이 주는 뉘앙스 때문인지, 나는 지금껏 베케트가 프랑스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일랜드 태생. 그러니까 버나드 쇼에 이어서 연이어 희곡을, 그것도 아일랜드 출신 작가의 작품을 읽은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제임스 조이스, 조지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까지. 후에 오스카 와일드를 읽을 기회도 있겠지.
아직은 생소한 희곡이라는 장르의 맛은,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 만끽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쇼의 <피그말리온도>도 그랬지만, <고도를 기다리며> 역시 읽는 맛보다 무대에 올려진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과연 이 생경한 대화들을 배우들이 어떻게 소화해나갈지, 자뭇 궁금하다.

그리고 내게 베케트를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

출처: National Portrait Gallery(npg.or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