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4

동네를 찾아서


용인으로의 이사는 십여 년의 서울 생활의 청산과 함께 이십대가 되며 시작된 아파트 생활에서 다시 단독주택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물론 우리 부부의 의지이자 여러 제반 여건이 고려된 결과이기도 했다.
택지지구 내 기반시설이 정비된 곳에 위치한 지금 집은 소위 말하는 땅콩 주택이어서 그리 넉넉한 공간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가 갓 태어난 딸 아이와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원래 야산인 곳에 산책로를 개설한 공원이 가까이에 있고 도서관이나 호수공원도 마음만 먹으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큰 주저 없이 택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형네 집과 무척 가까웠다. (이 동네를 우리에게 알려준 이도 다름 아닌 처형이었다.)
처음엔 미분양이었다는 동네는 단독 필지가 대략 8-10개 정도 모여 있는 클러스터가 이어져 있는 형태인데, 단독주택 붐이라도 불었는지 우리가 이사 오고 나서는 자고 일어나면 한 집 착공하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동네의 빈 땅들이 하나둘 채워져 가는 사이, 어느새 아내와 내 마음 속에도 집을 짓고자 하는 욕망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다. 더없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집을 짓고 살기에 우리 가족에게 적합한 곳은 어디일까?
사는 데 불편하지 않고 딱히 동네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질문에 지금 동네라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동네가 가진 장점, 즉 쾌적함과 고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비용 면에서도 지금 동네는 타협의 지점이 멀고도 멀었다. 게다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더 그럴싸한 변명을 하자면, 내겐 참을 수 없는 시간이 존재했다고 해야겠다.
어느 동네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왜인지 그 필요한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대중교통의 불편함은 치명적인 단점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앞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 시간이란 변명은 동네스러움이라는 나의 까다로운 기준에도 부합해야 했다.
동네를 찾아나서야 했다. 그 일 번지, 내 마음 속 일 번지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