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5

독일은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생산할 능력도 없다는 게 확인되었다.
일대 사기극이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원자폭탄 경쟁에서 나찌를 누르기 위해서라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정당화는 단번에 뒷전으로 물러났으며 그와 함께 도덕적인 힘, 그로브즈가 15만 명의 남녀들 - 특히 과학자와 기술자 들 - 을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만들기 위해 불러일으킨 도덕적인 힘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의 휘하에 있던 일급 과학자들은 예상대로 "독일에 그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가"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과학자 중에서도 제일 선두에 선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정당했던 공포로 인해 당초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실현시켰던 바로 그 망명 과학자들이었다. 그로브즈는 입장을 바꿔 나찌를 항복시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작업을 더욱 신속하게 진척시키라고 외쳐댔다. 그가 그렇게 설쳐댄 것은 사실 나찌가 항복하기 전에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원자폭탄을 실험해보기도 전에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날 것이 점차 분명해지자 그로브즈는 인간을 목표로 원자폭탄의 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까봐 몹시 걱정했다. 일본이 아직 적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들이 핵무기 계획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앞지르기 위해 원자폭탄 제조가 필요하다는 식의 구실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원자폭탄의 사용이 전쟁을 단축시키고 수십만 미국인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는 제2의 대사기극이 연출되었다.
'미국인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구호는 후에 베트남 전쟁에서 부녀자, 어린이, 심지어 품속의 아기들까지도 죽인 미라이의 대학살 그리고 그와 유사한 수많은 학살사건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역질나는 공식이 된다. 그로브즈 장군은 '미국인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구호가 수십만의 일본 민간인들에 대한 살육을 정당화해준다는 논리로 그런 공식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로브즈 자신도 그런 구실이 일류급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원자폭탄은 일본의 항복을 확실히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원자폭탄이 실험을 거치면 즉각 일본에 대해 사용될 것이란 말이 그로브즈의 '빈틈없는' 보안망을 뚫고 새어나오자 과학자들 사이에서 곧 반발이 일었다. 독일이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 가장 크게 우려를 나타낸 건 맨해튼 프로젝트를 맨 처음 주장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윌프레드 버체트, <히로시마의 그늘> 141-145쪽, 표완수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