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4

저는 오랫 동안 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옛것에서 높은 가치와 깊은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리고 나누어 마땅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이야기했을 때 선입견 없이 알아 보고 사랑해 주는 외국인들이 있었고, 다시 찾아와 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외국인을 상대로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만 내달리던 시대에 오히려 이 땅에서는 그런 이들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때 너희 안의 정말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던 선진국의 문화인들을 만났습니다. 자기네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해 준 이야기였지만, 지금 살펴보면, 우리는 그들이 잘못 갔던 길마저 똑같이 가 보고 있나 싶어 마음이 슬픕니다모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 조용한 마을 한산에 직접 찾아가 모시를 직접 사고, 새벽 모시장을 뛰어난 그래픽과 기사로 꾸며 알린 것은 일본의 잡지사였습니다. 역사적인 문화 잡지 <긴카(銀花)>의 1998년 가을호였습니다. 우리는 그 두 해 전부터 긴 준비 기간을 가지고 차근히 공부하고 여러 장인을 만났습니다. 그 때도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그렇게까지 귀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한산의 모시장은 영영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보다 덩치가 커진 모시 전수관을 가면 지금도 전시와 시연을 관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모시가 삶과 역사에 완전히 하나 되어 있던 그 시대의 울림을 담은 자료는 남아 있지도 않고, 앞으로 도저히 만들 수도 없습니다. 
최지은, <모시한산> 9쪽, '어머니의 마음', 수류산방, 2015

이 책은 모시 한복의 멋이나 새로운 모시 공예품, 디자인을 소개하려는 의도로 만들지 않았으며, 한산 모시의 역사나 기능을 고증하려는 뜻도 없다. 또 어리석은 마음으로 굳이 덧붙이자면, 모시풀을 거두어다 입술을 헤어 가며 희고 가는 실을 토해 내며 늙어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모시의 언저리라, 수류산방에서 책 제목을 "언저리의 미학"이라 한 뜻을 밝혀 둔다. 
같은 책 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