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물어본다

십오 년 만에 이승환의 공연을 보았다. 단풍이 흐드러진 춘천의 가을은 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내 곳곳이 다음 날 열릴 마라톤대회 준비의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90년대, 그러니까 잘 나가던 가수들 앨범이 백만 장이니 이백만 장이니 하며 엄청나게 팔려나가던 때, 나도 열렬히 그 대열에 동참했던 시절이었다. 첫 이승환의 앨범은 김동률이 만든 ‘천일동안’이 담긴 앨범 <휴먼>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친구 녀석이 다니던 대학의 캠퍼스에 축제 기간이라고 해서 놀러를 갔고, 마침 노천극장에서 크라잉넛과 이승환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물이 가득 든 플라스틱 백팩에 장착된 물총을 들고 나온 이승환의 비주얼을 잊을 수가 없다. 관객들을 향해 긴 물줄기를 쏘아대던 그의 익살스런 표정과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가 한 시간 남짓 펼쳤던 공연은, 아, 더욱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의 ‘세월이 가면’의 가사처럼, 어느덧 이렇게 십오 년이란 세월이 간 뒤 다시 만나게 된 이승환의 공연이었다. 춘천.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옛 춘천어린이회관은 의암호를 비스듬하게 등진 채 낮게 웅크리고 있었고, 그곳을 매입해 문화공간 ‘상상마당’으로 탈바꿈시킨 케이티엔지에서는 ‘상상실현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전시와 공연이 함께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춘천 시내에서 숯불닭갈비를 배불리 먹은 우리는 마땅히 짐을 맡길 곳을 찾지 못한 채 일찍 공연장으로 향했다. 의암호가 눈앞에 펼쳐진 벤치에 자릴 잡고 앞에는 돗자리를 깔았다. 사람들은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고 있었고 우리는 각자의 독서에 빠졌다. 오후의 시간은 한참 너그러웠다. 

술탄의 공연을 시작으로 혁오, 국카스텐, 이승환으로 이어지는 괜찮은 라인업. 쌍둥이 건물을 품고 있는 야외극장의 관람석은 거의 정확하게 서쪽을 향하고 있어 오후가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기대했던 혁오의 공연은 사운드의 미숙함으로, 그리고 그 미숙함을 애써 손대지 않은 아쉬움으로 결국 안타까움이 남았다. 오혁의 탄탄한 보컬도, 멤버들 연주의 성실함도 그래서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카스텐 공연 때는 미숙했던 사운드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더욱이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달빛을 머금은 어둠이 내리자 공연장은 점점 더 열기에 휩싸여 갔다. 게다가 마지막 무대는 이승환이었다. 십오 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그의 ‘공연법’은 오십이 된 그의 나이와 함께 더욱 무르익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어떻게 저 작은 체구에서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올까’가 아니라, ‘어떻게 쉰이 지난 나이가 되도록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여전할까’라는 물음을 가져야 한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이승환의 공연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 중 눈시울을 시큼하게 했던 한 곡이 있었으니, 그 곡은 나와 간혹 좋은 노래의 유튜브를 공유하던 친구 H녀석이 오래전에 알려준 곡으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들을 때마다 내 생각이 난다던’ 곡, ‘물어본다’이다. 이승환이 활동한 세월 동안 추억이 깃든 노래가 한두 곡은 아니지만 그날 ‘물어본다’의 연주가 시작되자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리고 그러한 눈시울을 한 채 목이 터져라 노랠 따라 불렀다. 연주가 끝난 뒤 밀려들었던 허탈감도 섬세하게 기억난다. 아마 다른 공연장에서 다시 이 곡의 연주를 듣게 되면 몸이 이날의 섬세했던 감각을 불러들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춘천, 가을, 시간이, 세월이 깊었다. 





2015. 10. 24. 춘천에서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