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그곶을 빠져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저지예술마을이 아닌 방주교회였다. 이미 많은 것을 한 기분이었고 이타미준의 흔적만 찾고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이타미준의 작품이 밀집해 있는 핀크스골프장 근처 방주교회로 향했다. 대체로 차량 통행이 많은 일주도로나 해안도로에 비해 우리가 택한 장소로 향하는 길은 한적해서 좋았다.
방주교회 가는 길 |
방주교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곳은 이름 그대로 종교시설이다. 하지만 누가 찾아올까 싶은 한적한 중산간 마을에 물 위에 떠 있는 듯 반듯하게 서 있는 그 건축물을 건축물로써 대하지 않고 종교 본연의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문득 이 글을 쓰다가 생각해 보니 그렇다. 모든 건물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쓰이기 위해 있는 게 아닌가.
여튼 물에 비친 다소 차갑고 오롯한 건물을 한 바퀴 빙 돌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안에도 슬쩍 살펴 보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외부보다 내부가 더 마음에 들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의자의 끝 가운데 단상이 놓여 있고 그 뒤 벽 높은 곳에 십자가가 걸려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가로로 트인 유리창이 건물 바닥에, 그러니까 신도들이 앉아 정면을 응시하면 밖으로부터 끌어들여지는 밝음을 그대로 인지할 수 있게 땅에 들러붙어 있다. 대신 천장을 보니 볕이 없을 동안 밝음 역할을 해야 할 조명은 이를 의식한 듯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 않고 작게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하지만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부 개방시간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는 여성 분과 어딜 가나 쉬이 볼 수 있는 매몰찬 사진촬영금지 안내 때문에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그렇지만 밖이 좋았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천천히 건물을 돌며 이런저런 각도로 사진을 찍어 보아도 계속 쳐다보게 하는 매력을 건물은 조용히 발산하고 있었다.
방주교회, 이타미준 |
다음은 드디어 비오토피아. 그곳에서 진짜 이타미준을 우리는 만나야 했지만 예상대로, 그리고 우려대로 (아마도) CCTV로 우릴 감시하고는 부리나케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온 ADT 직원의 제지로 아쉽지만 그곳에서 돌아나와야 했다. 아무리 사유지이라고 하지만 감정이 앞선 불편함은 이성마저 온전치 못하게 하는 바람에 결국 기분이 몹시 상하고 말았다. 無 역시 마찬가지로 이성적으로는 알겠지만 기분은 나쁘다며, 가볍게 내 기분에 승차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쉽게 자동차 시동을 건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無가 좋아하는 안도가 설계한 본태박물관으로 갔다. 바로 옆에는 이타미준이 핀크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같이 설계한 포도호텔의 별관이 공사중이었다(그런데 누가 설계했을까, 이타미준은 세상을 떠났는데). 주차를 하고 만 원이나 하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전시를 관람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리고 전시 자체도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에, 사진을 찍으며 건물 이곳저곳을 살폈다. 전시장엔 들어가지 않고 내리막으로 이어진 골목을 따라 내려가려는데 매표소 직원이 우릴 제지하기 위해 쫓아나왔다. 바깥 공간도 매표를 해야 하는 영역이라나. 차라리 그럴 바에야 아예 주차장에서부터 전시를 보지 않을 사람은 주차도 못하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몹시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無는 이성을 유지했고 그래서 나도 더 이상 내 기분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금세 가라앉았다. 어쩌겠는가. 실은 無의, 우리 같은 태도는 추잡스럽다는 말이 더 맞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은 채 공짜에 익숙해진 우리는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체로 인색하니까. 이제는 숙소가 있는 섭지코지로 향했다.
본태박물관, 안도 타다오 |
하지만 비오토피아에서 성산일출봉에 가까운 섭지코지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운전은 無가 했는데 자주 걸리는 신호 때문에, 그리고 조금씩 밀려드는 피로 때문에 조금 기분이 낮아 보였다.
레드동 4층에 짐을 풀고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일출봉 근처로 갔다. 역시 검색을 해서 갈치조림을 잘한다는 집에 찾아갔는데, 가격이 무척 비쌌다. 한라산 소주와 먹어본 결과 그 정도 값을 치를 만한 맛은 느끼지 못했고 되려 갈치 가시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고생을 했다. 소주를 사이 좋게 반 병씩 나눠 마셨는데도 無는 계속 병원이 있는 제주나 서귀포 시내로 가자고 했고 나는 일단 숙소에 가서 씻고 비교적 가까운 곳에 걸린 것 같으니 자세히 살펴보자고 했다. 그래도 불편하면 병원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샤워를 하고, 내가 쩍 벌린 입을 아이폰 플래시를 켜고 들여다 본 無는 놀라운 표정으로 가시가 바로 보인다며 편의점에서 사온 핀셋 비슷한 집게로 아주 손쉽게 가시를 제거했다. 무거운 짐을 던 듯함에 후련했지만 약간 어이가 없었다.
순식간에 화사해진 분위기에 음악을 선곡하고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얘기도 나누고 내가 이것저것 읽어주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2014. 7. 19. 카페 이스탄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