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8

Jeonju, 2011, Lomo

전주, 2014, Ricoh

어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제는 현 부서의 지난 멤버들 모두가 모이는 자리, 회식이었다. 나는 어떤 들뜬 기분도 아니었음에도 자리를 이동하며 술을 마셨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한 명씩 돌아가며 건배사 아닌 한 마디씩의 말을 할 때에는 머릿속에 든 게 하나도 없음에도 거침없이 쏟아지는 말에, 그리고 그 말의 타자와의 유사성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언제부터 졸았는지 깨어나니 나는 밖으로 나와 있었다. 또 다른 자리로 이동하려는 무리의 사람들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곳을 벗어나 길고긴 퇴근길에 접어들었다. 
집에 오니, 오는 길에 많이 졸아서인지, 아님 샤워를 한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사당에서 잡아탄 택시가 동작대교를 건너 남산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남산 1호, 2호, 3호 터널의 지리적 접근성과 연결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용산기지를 통과할 때에는 이곳이 광활한, 한강과 남산을 이어주는 공원으로 재탄생하는 상상을 해 보았으나 이는 언제 현실로 구체화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마스터플랜 계획가로 지정된 승효상 건축가도 허탈할 거야, 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였다. 

이 나라는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어렴풋 일어난 사이 전화벨이 울린다. 옆동에 사는 누나의 목소리. 
“내가 며칠 전 갑자기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며 깁스를 해서 애들 보기가 불편해. 밥도 못 해먹고 시켜먹어. 애들 아빠도 어디 가서 그런데 우리집에 오면 안 돼?”
도서관에 가서 이것저것 하려는 계획을 접고, “조금 있다가 갈게”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샤워. 
여전히 머리가 무거웠다. 그래도 씻으니 조금 나은 듯해,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렸다. 냉장고에 있는 몇 조각의 식빵을 꺼내 굽고, 계란후라이 하나, 사과 한 알. 주말의 아침식사.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세월호 특별법 통과, 본회의장의 울분, 파트릭 모디아노의 노벨상 수상 여파, 샌프란시스코의 메이저리그 우승에 대한 뒷이야기… 
준비된 아침을 다 먹고, 일어나 읽다만 녹색평론을 다시 편다. 

배달되는 문학잡지들 곳곳에 슬픔이 배어있다. 제일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인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울컥, 목이 메곤 한다. 슬픔뿐 아니라 분노와 무력감, 열패감 같은 감정들도 묻어난다. 광화문에서 낭송하던 시인들의 목소리가 지면 속에도 핏물처럼 점점이 새겨져 있어 읽기가 힘들다. 산문이나 시평들도 참사를 다룬 글들이 많다. 너무도 끔찍한 일이 이토록 어이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이번에는 달라질 거라는, 사회적 전환의 계기가 될 거라는 예상은 순진한 믿음이 아니었다. 대통령부터 여야의 정치인까지 한목소리로 무려 ‘국가의 개조’까지 들먹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은 다시 잊으라고 한다.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른다. 두 번의 선거를 치러낸 저들의 의기양양은 유족들을 비아냥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려워라, 목숨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저 벽을 무엇으로 넘을 것인가. 
언제부턴가 기묘한 풍문 하나가 떠돌았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어 내수경기 침체가 심각하다는, 얼핏 피상적인 것 같지만 상당히 조직적으로 유포되는 풍문이었다. 그런 식의 불안이 불러오는 효과에 미소를 짓는 자들이 누구일지는 빤한 일이다. 손님이 없는 식당도, 매출이 줄어든 점포도, 유례없는 가격 폭락 사태를 맞은 농산물도 참사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이란다. 하여 참사 따위 잊고, 그러니까 제 입으로 말한 국가의 개조 따위도 잊고, 빨리 경제를 살리는 일에 매진하라는 요구가 국민의 뜻이라고 풍문은 재빨리 진화한다. 이런 얄팍한 사기극은 그러나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주위에서 보고 듣는 바로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장삼이사들이 많다. 마치 참사 이전에는 서민경제가 흥청거리기나 했던 것처럼. 공기 중에 섞여 있어 숨을 멈추지 않는 한 계속 들이마셔야 하는, 이 사회의 운명이 되어버린 온갖 거짓들에 숨이 막힌다. 

녹색평론 138, 이 또한 지나갈 것인가, 최용탁

우울하다. 창밖으로 비치는 거대한 흐린 날씨처럼. 
아침에 고른 씨디는 넥스트의 앨범 두 장. Lazenca-A Space Rock Opera와 The Return of N.EX.T PART1. 
신해철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저녁, 그리고 그 전에 그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이석원이 쓴 일기에서 본 그와 이석원의 이야기들. 그가 결국 죽음을 맞고 나서야 나는 기사를 한둘 찾아보며 그동안의 경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간신문에 실린 음악평론가 임진모의 그에 관한 칼럼. 
일기를 쓰고 있는 중에도, 거의 무의식중으로 들리는 음악의 풍부한 사운드와 날카로운 가사는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머리를 두드린다. 임진모가 썼듯, 마왕으로 대표되는 그의 여러 이미지는 결국 그의 본연의 업이었던 음악가로서의 결과물로 귀결된다. 그러니 신해철, 그를 음악가로서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서 나는 이 흐린 아침, 그가 만든 음악을 차분히 듣는다. 명반이다,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 가야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