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30

별안간 무지개

성북동 국시집에서 국수와 수육을 먹고 나폴레옹에서 작은 케이크 하나와 통팥빵도 사서는 집에 들어와 막 커피를 내리려는 찰나, j가 베란다에서 밖을 보더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릴 던졌다.

“무지개네.”

순간, 귀를 잠시 의심한 나는 무심코 고개를 베란다로 향했고, 시야의 각도상 가까스로 보이는 끄트머리에 무지개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손에 쥐고 있던 드립서버를 내려놓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랬더니, 베란다로 가는 동안 상상했던 무지개의 형상보다 훨씬 더 큰 스케일의 무지개가 하늘에 반원 모습으로 걸려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은, 그것이 주는 무게는 무대에서 마침내 주인공이 등장할 때의 그것과 유사했다. 언제 무지개가 떠올랐을까? 여리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쳤나 싶더니 집에 돌아오는 사이, 그리고 서향인 주방 베란다로 찬란하게 지는 태양 빛이 밀려들어 오고 있는 그 사이, 우리가 미처 보기 전엔 눈치채지 못했던 그 사이에 반원의 아름다운 무지개는 보는 이의 물러질 감성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피어올랐던 것이다.

아름다워라.


언젠가 나는 생각했었다. 미적 취향에 대해. 그리고 그럴 때면 늘 영화 <타인의 취향> 생각이 난다. 어떤 자연 현상이나 풍경, 미술품 따위를 볼 때나 음악을 들을 때, 유사한 감성으로 몸을 떨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한 미적 취향의 일치에 근접한 것이리라.
이토록 아름다운 주말 오후의 무지개를 보고도 관성에 취해 발걸음을 그대로 앞으로 내리꽂는 사람과는 감성의 ‘감’자를 얘기할 때 단어 그대로 ‘감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리. 그러니까 감자는 구황작물이어서 말이지…

아쉬운 주말 오후는 무지개로 한없이 충족되었다가 금새 사라져버린, 역시나 무지개 때문에 한없이 공허해졌다. 그리고 다시 여리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