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4

타멜, 카트만두

이른 아침부터 특유의 이곳 시끌벅적함에 잠에서 깼다. 행여 시간이 너무 돼 버린 건 아니겠지, 하며 시계를 보니 7시. 숙소를 나섰다. 로비에서 10달러만 환전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지도를 하나 구했으나 방향 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도가 무슨 소용인가.
늘어선 택시들, 간헐적으로 보이는 사이클릭샤. 이미 깨어난 타멜의 아침은 분주하다. 어둠이 깊숙한 어느 거리 상점에서 짜이를 마신다. 지금 이 순간, 시간과 공간은 내게 축복이다.
좀 더 걷기로 한다. 카트만두에서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타멜은 어렴풋한 기억에, 인도 델리의 빠하르간지를 떠오르게 하지만 이것은 추상일 뿐 정확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다만 특유의 분주함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여행자들이 거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곳과 이미지를 연결짓는 건 무리가 아니다.

돌아선 여인, 타멜, 카트만두, 2014

식당
아침 볕이 쪼이는 작은 식당 밖에 앉아 생각을 이어간다. 
더 사인 기간이라 그런지 거리에 늘어선 노점들이 더욱 생기 있게 다가오고, 서로를 부르거나 엇갈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의 볼륨은 괜히 길게 늘어선 택시의 행렬처럼 지루하고 그칠 줄 모른다.
이곳에 앉아 감자와 짜파티를 주문하고서는 문득 나에게 물음표를 하나 던져본다. 아무 사전 정보나 지식 없이, 경험도 없이 이곳의 소음만을 들려준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할까?

경적 소리, 흥정하는 소리, 구걸하는 소리, 잡담하는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짜이 끓이는 소리, 릭샤나 택시를 외치는 소리, 소리의 소리들. 니하오, 꼬레아, 곤니찌와.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을 궁리도 없이 멍하니 있는 사이, 식사가 전혀 예상 밖의 비주얼로 등장한다. 주인 아저씨의 인상은 차가우면서 따스하다. 그 때문에 주저없이 이곳에 왔지. 그래서 짜이를 한 잔 주문한다. 벌써 두 잔째. 다행히 처음 것보다 맛이 좋다. 내게 달디단 짜이 맛의 기준은 언제나 더 달지 않은 것. 평범한 식어빠진 짜파티가 아닌 갓 튀겨 따뜻하면서도 겉이 바삭한, 그러면서도 느끼했던 맛을 짜이가 고스란히 덮어준다. 다행이다. 
어느새 옆에 앉아 있던 세 명의 무리에 거리를 거닐던 친구 하나가 끼더니 대화의 톤이 높아지고,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벗어난다. 이제 준비하고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


숙소 
전기가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난 것만 보고 짐작하지 못했는데 막상 방에 와서 불을 켜니 들어오지 않았다. 청소하시는 분께 물었더니, 

Power Cut!
11시경 비행기를 예약한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렇게 타멜의 아침을 느끼고 가니. 하지만 여전히 방향 감각은 제로다.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가벼운 흥정을 거쳐 자그마한 흰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 번잡한 타멜을 벗어나면 그만인 줄 알았건만 길이 막힌다. 게다가 택시 안에 모셔진 신은 어찌나 차주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진동하는 향내에 머리가 어질해질 정도. 창문 손잡이를 부지런히 돌려 열린 창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보지만 매연은 더 참을 수 없다. 눈에 띄는 차선은 기어코 없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수시로 길을 건너는 보행자가 뒤섞인 거리는 과연 이 길이 내가 새벽에 거꾸로 지나왔던 길이 맞는지, 과연 이 길을 따라가면 공항에 닿을 수 있는지 의심이 가게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방향을 바꾼 좌회전 길에서 무뚝뚝한 경찰의 수신호로 잠시 멈춰선 택시 너머로 보니 어느새 공항이 앙증맞은 그 사이즈에 맞게 한눈에 시야에 잡힌다.

국내선 터미널
지방 중규모 도시의 터미널을 연상시키는 이곳, 국내선 출발 터미널은 북적북적하다. 더 사인 때문일까. 택시 기사의 말대로 포카라는 quiet한 도시였으면.
정시 출발은 어림도 없다는 듯 무심한 전광판에는 내가 탈 687편 예띠항공에 앞서 30분 미리 출발 예정인 677편이 11시 40분에 출발 예정이라고 건조하게 적혀있다. 수기로 입력되는 모니터는 아직 내가 탈 항공편에 대한 소식이 없다.
11시 35분. 67편의 보딩 안내 방송이 나오고, 대다수가 외국인인 무리들이 줄지어 게이트로 몰려 간다. 이들도 각자 마음속에 갈 때는 오른편, 올 땐 왼편 사수, 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얼른 조용하다는 포카라에 가고 싶다. 시끄러운 건 문제가 아닌데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걸 보니 맘이 들떠있나 보다.
11시 40분. 드디어 떠오른 메시지. 20분 지연.
12시 30분. 결국 이제야 자그마한 항공기에 탑승. 그래도 은근한 조바심(?)에 서둘렀더니 우측에 앉았다. 그렇다. 따로 좌석이 정해지지 않은 예띠항공에서 포카라로 가는 하늘에서 히말라야를 잘 볼 수 있다는 우측에 앉으려면 약간은 서둘러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서운하게도 하늘을 지배하는 건 푸른하늘과 거짓말처럼 우뚝 솟은 히말라야가 아닌, 쑥쓰럽기라도 한 건지, 결코 대지와 하늘과 산이 제 모습을 드러내도록 허락하지 않은 두터운 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