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3

의외의사실

얼마 전, 언니네이발관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었었다. 단순히 도메인이 만료되었을 거라 쉽게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다시 열린 홈페이지에서 이석원의 일기를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작년 늦은 여름 무렵, 이석원의 블로그에서 그가 보석 같은 공간이라 표현한 일러스트레이터 김준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기억. 
이석원이 인사동 쌈지길에서 <쌀롱 드 언니네이발관>이라는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알고 가려고 했을 때는 이미 가게 문을 닫은 후였다. 이발관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석원이 어떤 계기로 인해 가게를 접고 앨범 작업에 몰입해 그들 앨범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발표하였다고 하는데, 내 머리를 스치는 기억은 그 계기라고 하는 것이 바로 김준의 블로그에서 어떤 자극을 받은 거였던 걸로 남아 있다. 이 기억이 반대로 이석원의 블로그에서 김준의 블로그를 알게 되면서 불현듯 떠올랐는데, 그래서 나의 어렴풋한 기억을 다시 확인하고자 아무리 구글링을 해 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발견한 것이 지금은 닫힌, 이발관 홈페이지에 있는 <의외의사실> 페이지였는데, 그곳에는 김준이 한동안 이발관 홈페이지 대문에 실린 그림 작업을 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많진 않았지만 가벼운 빛을 내며 자리잡고 있었다. 그때의 반가움이란. 
왜냐하면 이석원의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김준의 블로그에서 나는, 언뜻 크게 보이진 않지만 실로 대단한 파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그림들의 가늘고 감각 있는 선과 무엇보다 짧게 남기는 문구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또한 블로그와는 별도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남기는 독서일기는 나의 독서취향과도 너무나 흡사해서 정말 많이 놀랐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독서일기도 거의 매일 살펴보게 된다.  
그때 이석원이 김준의 블로그를 소개한 건 그가 매년 한 해 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하는, 이름하여 <의외의사실> 전시 소식이었는데, 계동에 있는 자그마한 한옥 ‘고방’에서였고 2012년 동안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래서 <2012년의 의외의사실>. 그날 나는 성북동에 갔다가 성곽을 타고 와룡공원을 거쳐 삼청동으로 내려가 계동으로 갔다. 그리고 드디어 중앙고등학교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오른편에 있는 ‘고방’에 들렀는데, 그의 그림들이 대체로 내게 전해주는 감동, 그러니까 ‘확’이 아닌 은근한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방금은, 이발관 홈페이지에 있는 <의외의사실>을 다시 보려고 구글링을 하다가 재밌는 걸 찾았는데 이석원이 2008년에 쓴 일기였다. 거기엔 이석원이 5집 <가장 보통의 존재>에 실릴 곡 중 한 곡의 가사를 완성했는데 그 곡에 <의외의사실>이란 제목을 붙이고 싶어서 김준 씨에게 괜찮겠느냔 의사를 물으며 가사를 남겨놓았고, 실제 발표된 앨범에 <의외의 사실>이란 곡이 실려 있다.


하지만 재밌는 건, 김준의 블로그를 쭉 뒤지다 알게 된 사실인데, 올해로 사용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블로그의 제목 <의외의사실>을 김준 씨 역시 영국의 소설가이자 버지니아 울프와도 어울렸던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소설에서 발견하였다는 것.
이석원이 <쌀롱 드 언니네이발관>을 운영할 때 그곳에도 김준 씨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없어진, 사실 어디를 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불특정한 많은 것들이 그냥 그리워지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