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5

제주, 여행의 끝

7시가 조금 넘어 일어난 나는 동네를 산책하고 싶어 리코만 챙겨 숙소를 나섰다. 벌써 숙소 스텝들은 아침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한 시간 가량, 천천히 동네에 난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분위기에 생각을 맡겼다. 언젠가부터 나는 중산간 마을을 떠올리기만 하면 비극이란 단어를 습관처럼 옆에 붙여두곤 했는데 이번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자연사랑미술관, 옛 가시리초등학교

숙소 근처에는 폐교된 학교에 어떤 미술관이 들어서 있었는데 정문 앞에 보니 학교에 대한 이력이 작은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거기엔 가시리초등학교가 4.3 때 폐교되었다가 다시 문을 열었지만 학생 수가 줄어 십여 년 전에 인근 한마음초등학교와 통합되었다고 쓰여져 있었다. 그렇다. 중산간 마을에서 내가 비극의 기운을 떨칠 수 없는 건 바로 4.3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제주의 풍광에 매료되고, 그것을 즐기기에 앞서 제주가 오랜 시간 지니고 있는 고통스러운 역사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주를 올바로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도리고 순서다. 
숙소에 돌아와 숙소에서 준비해준 아침으로 팬케이크와 요거트와 커피, 차를 먹고는 씻고 숙소를 나섰다. 나올 때 숙소 여주인이 잠만 자고 떠난다며 아쉬워했으나 이미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움직여야 했다. 너븐숭이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날씨는 그럭저럭, 한적한 도로를 달려 닿은 너븐숭이는 작년 가을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고 있었다. 그곳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동측 일주도로에서 좌회전하는 신호를 만들고 안내판을 설치하면 훨씬 나아질 텐데, 쾌적한 도로 운영을 위해 아마도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애초에 너븐숭이를 만든 목적이 반쯤은 상실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기념관을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가. 더군다나 제주에서 4.3에 대한 떠올림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현 상태의 접근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아무도 없는 기념관에 들어갔더니 사무실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더니 전시관 관람을 먼저 할 것인지, 13분짜리 영상을 먼저 볼 것인지 묻길래, 영상을 먼저 보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디브이디를 틀어주셨다. 개괄적이면서도 심플하게 만들어진 영상을 보고 자리를 뜨려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붙잡으신다. 그러면서 4.3사건의 전개과정, 그리고 북촌리 마을의 비극에 대해 알기 쉽게,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셨다. 사실 위주로 객관적으로 당시 상황을 전달하려고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동안 제주인들 내부에 공공연히 쌓여 왔던 울분이 깊이 내재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랜 시간 동안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던 말 못 할 비극에 대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그것이 마지노선이었다. 사실 제 가족을 모두 잃은 슬픔에는 무작정 하소연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런 삭힘이 몸에 배어 있는 그 모습에 어떤 위로나 추모의 마음도 보잘것없이 여겨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전면적으로 나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국가의 역할, 지난 횡포, 책임과 무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정책적으로 뒷바침을 해 줘야 한다. 그게 인간된, 그러한 인간 집단이 모인 나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정부가 할 일이다. 


순이삼촌 문학비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와 애기무덤과 순이삼촌 문학비 일대를 천천히 걸으며 다시 한 번 제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부 삼신인이 벽랑국 세 공주와 연을 맺어 후손을 낳고 농사를 일구며 탐라라는 나라를 세우고, 몽골의 침입에 끝까지 대항하다 결국 속국이 아닌 직접 지배로 귀결된 오랜 역사, 조선 시절 횡포에 가까운 과도한 공물 착취, 수많은 지식인들의 유배지, 제국주의 일제의 야욕에 곳곳이 구멍 난 시리도록 아름다운 섬나라, 이제는 동북아 힘 겨루기의 지리적 요충지로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안타까운 제주, 그러한 제주에 대해서 말이다. 
너븐숭이를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 곰막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까웠고 바다와 바로 인접해 있었다. 식당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한적했고 서빙하는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활어회와 회국수, 활우럭탕과 맥주 한 병을 시켜 배부르게 먹고는 우리가 가고 싶어 했던 카페 달빛봉봉베란다로 향했다. 그런데 미리 알고 있던 주소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주소가 달라 긴가민가하며 미리 알고 있던 곳으로 차를 몰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카페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차피 복불복이라 생각하고 간 길이었으니 미련 없이 엑셀을 밟아 삼성혈로 갔다.

삼성혈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들르려고 했던 곳인데, 첫날 아침식사 때문에 동선을 반대로 잡았더니 결국 마지막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야속한 비행기 시간으로 인해 20분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시실에서 상영하는 영상이 13분. 영상을 다 보고나니 울창한 숲길을 산책할 시간은커녕, 둥글게 쳐진 울타리 너머로 멀리 보이는 삼성혈을 보고 떠나기 바빴다. 삼성혈.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삼신인의 신화를 간직한 곳. 그게 어느 정도의 허구를 지닌 역사적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비의 섬 제주는 그런 식으로 곳곳에 신비로움을 가득 안고 있다. 앞으로도 제주를 꾸준히 찾겠지만, 올 적마다 그러한 제주의 오랜 이야기들을 들으러 발품을 아끼지 않고 다니고 싶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 티켓팅을 했는데 어처구니없게 나란한 좌석이 남아 있지 않아 앞뒤로 앉아야 했다. 비행기는 연결 문제인지 뭔지, 한 시간 가량 지연되어 김포에 도착하니 이미 6시가 다 되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으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 無가 공항버스에 오르는 걸 보고 나도 돌아서 공항전철을 타러 지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다. 문득 제주로 가는 쉼 없이 흔들리던 비행기와 궂은 날씨에 결국 번쩍하며 번개까지 맞았던 순간이 떠오르며 슬몃 웃음이 났다. 우리는 언제 또 제주를 찾게 될까.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제주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2014. 7. 21.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