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9

체 게바라의 편지 -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일디타, 알레이디타, 카밀로, 셀리아 그리고 에르네스토에게.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즈음엔 나는 더 너희들과 함께 있지 못할 게다.
너희들은 더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어린 꼬마들은 이내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의 아빠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단다.
아빠는 너희들이 훌륭한 혁명가로 자라기를 바란단다.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을 정복하기 위해 많이 공부하여라. 그리고 혁명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외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해주기 바란다.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늘 너희들을 다시 보길 바라고 있으마. 아주 커다랗고 힘찬 키스를 보낸다.

아빠가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체 게바라는 정말 체력이 좋은 것 같아. 혁명을 하면서도 산속에서 밤중엔 책을 보고 있잖아!"
독서, 책읽기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에게는 남들이 체 게바라를 칭송하는 이유에 책이라는 요소가 더해진다. 어릴 적부터 천식이 심했던 그는 호흡곤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면 책읽기에 몰두하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혁명을 하면서도 늘 책과 노트를 지니며 틈 나는 대로 책을 읽고 기록을 남겼으며, 죽음 전 볼리비아에서 생포되었을 때에도 그의 소지품엔 평소 좋아하던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이 발견되기도 했다. 자신 자체로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혁명 중에 낮에는 싸우고 밤에는 혁명가들을 가르치기에 바빴다.
에르네스토가 아르헨티나의 의학도였을 때 알베르토와 함께 떠난 남미 여행에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 나병환자는 깜짝 놀라고 만다. 누구도 그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랬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투쟁을 이어가면서도 가슴 한켠에는 늘 온화한 감성을 유지했다. 나는 이런 그의 모습이, 오랜 독서와 여행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 그로부터의 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생전의 체를 만난 어떤 여성은 이미 그의 명성이 두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외모에 설렜다고 고백했지만, 나에게 그의 외모는 부수적일 뿐이다. 나는 그의 독서광의 면모와 행동하는 실천적 의지에서 그를 오롯이 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여전히.
십여 년 전, 지금은 없어진 대학로의 작은 극장에서 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비록 여행을 계획하고는 있었지만 미처 실행하고 있지 못하던 때였고 이후 여행을 하며 내 의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 삶은 그렇지 못했고 여전히 그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