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9

체 게바라의 편지 - 피델



이 순간 나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마리아 안토니아의 집에서의 첫 대면, 당신과 함께 가자는 제의, 그리고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그 모든 긴장들. 언제인가 누군가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죽어야 할 순간이 오지 않겠느냐고, 죽어야 할 순간이 현실적으로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우리를 사로잡았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었고 (어차피 그래야 한다면) 혁명 속에서는 이기는 자도 있으며 죽는 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승리로 오는 길목에서 많은 동지들이 그렇게 쓰러져갔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그때만큼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더 원숙해졌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반복되는 법입니다. 나는 쿠바혁명에서 내가 할 바의 몫을 수행했다고 여기며, 어느덧 내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당신과 동지들, 그리고 쿠바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나는 당에서의 내 직책과 장관으로서의 직위, 대장이라는 계급, 그리고 쿠바 시민권을 공식적으로 내놓습니다. 쿠바와 나를 묶어놓을 어떠한 법적 구속력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유일한 끈이 있다면 또 다른 속성의 것, 즉 공식적인 문서로는 파기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지나간 내 삶을 돌이켜보건대, 나는 혁명의 승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다고 믿습니다. 내가 저지른 유일한 큰 실수는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투쟁하던 그 초기 시절보다 당신을 더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과, 지도자와 혁명가로서 당신의 역량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찬란한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당신의 곁에 머물면서 카리브 해의 위기가 야기한 슬프고도 저 빛나는 시간들을 우리의 민중과 더불어 함께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낍니다. 그날들보다도 더욱 빛나는 시간을 가진 정치가는 없을 겁니다. 아울러 망설임 없이 당신을 따랐고, 당신의 사고방식에 내 자신이 기꺼이 따랐다는 점 역시 자랑스럽니다.
이 세계의 다른 땅에서 미약하나마 나의 헌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쿠바의 수반으로서 지고 있는 책임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작별하여야 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당신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희열과 고통이 어지럽게 내 마음을 휘젓는군요. 여기에 나는 건설자로서 나의 가장 순수한 희망을 두고 갑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이지요. 그리고 나를 친자식처럼 따뜻이 맞아주었던 쿠바의 민중을 두고 떠납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희망의 일부로서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국주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막론하고 새로운 전장에서 나는 당신이 나에게 심어주었던 신념, 민중의 혁명 정신, 가장 성스런 의무를 수행한다는 감정을 늘 지니고 있을 겁니다. 이것들이 있다면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위로받고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듭 얘기하건대, 나는 쿠바혁명이 주었던 모범만은 제외하고 모든 책임으로부터 쿠바를 자유롭게 해주렵니다. 혹시 또 다른 하늘 아래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마지막으로 바로 쿠바 국민, 특히 당신에게 향할 것입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모범에 대해 감사하며 내 행동의 결과에 늘 확신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혁명의 외부정책과 늘 일치해왔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어디 있건 간에 나는 쿠바 혁명가로서의 책임감을 숙지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할 것입니다. 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지만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는 것이 오히려 기쁠 따름입니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국가가 그들의 생활과 교육을 충분히 책임져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당신과 우리 국민에게 할 얘기가 산더미같이 있습니다만 한편으론 말이 필요치 않을 거라 느낍니다. 말로써 내 바람을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일이며, 그런 말장난이 굳이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까닭입니다.
승리를 쟁취하는 날까지, 영원한 전진! 조국, 아니면 죽음을!
나의 모든 혁명적 열정을 다하여 당신을 포옹합니다.

체 게바라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