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4

드릴로 콘크리트를 뚫는 건 누차 해도 신비롭고 약간은 두렵기까지 한 경험이다. 매번 뚫을 때마다 의도치 않은 결과물을 낳게 된다. 저, 수백 미터를 넘나드는 건물을 유지케 하는 콘크리트의 강성을, 물론 철근의 도움을 받지만, 그에 비하면 한낱 여린 인간의 손으로 드릴이라는 작은 장비의 힘을 빌려 뚫을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래서 나는 늘 뚫기 작업을 하기 전에는, 옆집에 드릴을 빌리러 갈 때부터, 아니 벽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부터, 내가 과연 구멍을 원하는 위치에 잘 뚫을 수 있을지 걱정을 하곤 한다. 그렇지만 콘크리트는 일단 구멍을 뚫으면 나사로 고정된 물체들이 든든하게 버틸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석고보드에 매달려 있는 樹話의 판화 ‘여름, 태양’과 無印良品에서 산 선반은 언제든 떨어질 준비가 된 듯 나를 불안하게 한다. 물론 지금은 내성이 생겨 그곳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게 오히려 당연해 보이기는 하지만. ‘여름, 태양’을 거실에 들인 게 따사로운 봄, 오월이었는데 어느덧 봄, 여름이 가고 시월, 가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