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1

사라진 몸을 회복해 가는 기록

지난 밤, 에이트리 5주년 모임에서 두 개의 케이크로 두 번, 4주년 축하를 했다. 내 몸은 술에 절대적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니 당연히 기억도 없다. 헌데 누나 식구들과 우리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한없이 누워있을 수도 없었고, 오후에는 가평엘 가야 했다. 윤아가 자는 동안 효진이 밥을 먹이며 겨우 한두 젓갈 식사를 했다. 기차는 두시십육분. 누나 식구가 돌아간 게 한시 십오분쯤.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몸은 무슨 상태라고 말하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아예 상태가 없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돗자리도 챙기고, 외투도 챙기고, 無가 사온 티셔츠를 입고 부랴부랴 현관을 나서는데 속이 좋지 않았다. 無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었고 나는 튀어 들어가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했다. 몇 점 먹은 고기가 그대로 쏟아져 나오더니 변기에 고인 물을 기름기 범벅으로 만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구토를 했으니 이제 좀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출발. 한시 오십사분. 열차 출발시각까지는 이십이분이 남았다. 무시할 수 있는 신호는 무시하기로 했다. 세 개 정도를 무시했다. 청량리역 뒤편에 주차를 한 시각이 두시 십사분. 이분 남았다. 뛰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슈욱, 세이브. 그런데 뛰어서 그런가, 속이 또 안 좋았다. 화장실에 가서 변기를 붙잡고 이번엔 눈물을 찔끔 흘리며 구토를 했다. 안 좋아하는 느낌의 구토다. 입을 헹구고, 자리로 돌아가 無에게 엎어졌다. 커피는 늦은 와중에 왜 내려왔는지, 전혀 생각이 없었다. 해장은 무슨. 잠들기 전, 이게 중요하다. 無가 어떤 감각에서였는지 생각을 해내고서는 말을 했다. "우리 표는?" 이런. 표란 우리가 가고 있는 가평에서 열리는 째즈페스티벌의 초대권으로 며칠 전 L이 누가 준 건데 못 간다며 내게 다시 준 거였다. 확실히 정신이 없었는지 - 몸이 없으니 정신이 있을 수가 있나! - 나는 괴상한 발상을 했다. 옆집에 사는 누나에게 집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는 초대권을 사진 찍어 보내라고 하고 매표창구에 들이밀어 보는 것. 지금 생각해도 괴상하다. 역시 인간이란 '몸'이 바로 서야 한다. 無는 옆에서 나보다 앞서 갔다.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나의 몸이 없는 상태의 괴상한 발상을 그대로 문의하고 있는 거였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찌 할 생각을 했을꼬. 그러고 보면 無도 몸이 좀 없는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될 리가 있나. 역시 안 된다는 대답. 이제 잠이 들었다.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잠이다. 꿈 없는 잠. 깼더니 정면의 전광판에 선명한 글씨로 다음 도착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남춘천'이라고. 창밖을 보니 익숙한 풍경. 강촌이었다. 無를 흔들어 깨웠다. 아니 깨워서 뭐하나. 춘천까지 가야 하는 걸. 버스도 아니고. 우린 우리가 몸이 없음을 실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춘천에 가서 자전거나 타자고 했다. 몸을 회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처럼 여겨졌다. 즉, 좋은 발상. 無도 잠결이었는지 선뜻(?)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이 주 후에 춘천에 올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평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차피 표도 사야 했기에, 춘천역에 내렸다. 플랫폼에 앉아 기분이 상쾌해지는 날씨에 조금 넋을 놓고 있었다. 역을 빠져 나가며 보니 자전거 대여소가 눈에 띄었다. 가서, 페이퍼 한 장을 쓰고 자전거 두 대를 빌렸다. 네 시간에 만팔천 원. 세시 반이었으니 일곱시 반에 반납. 서울로 돌아갈 열차는 가평에서 아홉시 이십일분에 출발이었으니 춘천역에서는 아홉시쯤 될 터였다. 허나 조금 라이딩을 하다가 쉬면서 열차표를 알아봤더니 여덟시 열차에 마침 자리가 나서 가평發 열차는 취소를 하고 다시 예매를 했다. 날씨도 좋고, 열차표도 쉽게 구하고, 뭔가 잘 풀리는 듯한 기분. 제주에서부터 자전거 노래를 불렀었는데 뜻밖의 춘천에 와서 자전거를 타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물론 그보다 몸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기운이 느껴져 그랬지만. 그렇게 의암호를 따라 삼십분쯤 탔을까.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반대편으로 향하는 몇몇 라이더들은 우비를 갖추고 있었다. 약간 출출하기도 하고, 마침 휴게소가 있어 비도 피하고 사발면이나 먹을 생각으로 들어갔다. 카페였다. 음료와 식사 대용으로는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겨우 몸이 상태를 찾아가고 있는데 햄버거라니. 애써 커피도 내려왔는데, 라고 생각하니 고를 게 없었다. 그래서 시킨 게 녹차. 생각보다 신선했고 양이 많았다. 카푸치노를 시킨 無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읽고 있었다. 여전히 몸이 없다고 느끼는 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창밖으로 비스듬히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비가 그친 것 같았다. 다섯시가 조금 못 되어 다시 라이딩. 기차 시간만 생각했지 해가 지면 어두워질 거란 생각을 왜 못했는지. 그래도 지도를 보며 의암호를 따라 계속 달렸다. 서쪽으로 잔뜩 밀려난 오늘의 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직선으로 의암호와 춘천을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다리를 하나 건너 이제 의암호 너머로 춘천 시내를 바라보며 달렸다. 파일을 박아 만든 데크 구간은 바퀴가 구르는 소리와 함께 기분을 한층 묘하게 했다. 몸이 더욱 반응을 하는 듯했다. 그래 나는 기력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는데 이제야. 바닥에 농기계&자전거 겸용이라고 쓰인 제방길을 따라 달리는데 서쪽에서 가까운 곳은 이제 볕을 못 받고 의암호 너머 춘천 시내만 겨우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무지개다. 흐릿한 하늘을 크게 가로지르며 무지개가 솟아 있었다. 




무지개는 눈에 분명히 보이지만 나는 늘 무지개가 시작되는 지점을 궁금해하곤 했다. 오늘은 아파트 단지 꼭대기에서부터 솟아오른 듯 보였다. 하지만 조금을 더 달리니, 그래서 시선이 달라지니 또 다른 곳, 저 산 중턱쯤, 헷갈렸다. 무지개는 어디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해가 진다. 안장을 잔뜩 올리고 기어를 최대한 낮춰 최소한의 운동으로 달리고 있는 나와 달리 짐을 분산하기 위해 바구니 있는 미니벨로형의 자전거를 고른 無는 바퀴가 작아서인지 나에 비해서는 부지런히 패달을 밟아야 했다. 네 배니 다섯 배니 하며 無가 투덜거렸다. 몸이 지치고 있다는 징조였다. 그러고 보니 無의 몸도 언제 자릴 잡았는지, 이제 지치고 있었다. 날은 더욱 어두워지고. 無에게 있어서의 또 다른 변수는 나보다 엉덩이에 살이 지나치게 부족해 패달을 부지런히 밟는 만큼 안장에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과 부지런히 패달을 밟은 덕분에 물기가 묻은 타이어의 물이 한 줄로 無의 엉덩이 부근을 적셔버렸다는 것. 그렇게 無는 지쳐갔다. 어두워졌다. 게다가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왜 비가 내릴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하지 못했는지. 낭만에는 젖어도 비에 젖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결국 無는 안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요상한 우리의 아이폰은 각각 10%, 26%에서 갑자기 전원이 꺼져버렸기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 전화를 빌려 대여소에 픽업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런 목적으로 들어간 곳이 의암댐에 있는 의암쉼터였다. 그렇다. 어느새 우리는 길게 누워 있는 의암호의 가장자리, 의암댐까지 온 거였다. 지도를 보니 춘천역에서 십팔 킬로미터. 춘천역까지는 이제 십 킬로미터가 남은 셈이였으나 그만 달리기로 했다. 여섯시 반쯤이었으니 쉬며 달리며를 세 시간. 드디어 의암쉼터에서 사발면을 주문하고 - 몸은 이제 먹을 수 있다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있었다 - 전화기를 빌려 대여소에 픽업을 요청했으나 너무 멀다며 픽업이 힘드니 자물쇠로 잠궈두면 나중에 자전거는 가져 가겠다고 했다. 클래식 선율이 조금 거슬리는 정도의 볼륨으로 흐르는 의암쉼터에서 無는 한숨을 돌리며 사발면에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無의 몸도 다시 돌아온 걸 보니 몸은 마음의 안정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의암댐에서 오십오번 버스를 타고 명동에 내려 택시를 타고 춘천역으로 갔다. 금방이었다. 일곱시 반. 재밌게도 우리가 자전거를 반납해야 할 시간이었다. 자전거는 의암댐에 두고 왔지만 반납해야 할 게 있었다. 열쇠. 열차 시간이 남아 대합실은 조금 추웠기에 역사 카페에 들어가 유자 맛이 나는 레몬차를 마시며 몸을 좀 더 배려했다. 몸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 헌데 無의 몸은 지치고 토라져 있었다. 몸살기운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無의 몸은 춘천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꿈 없는 잠으로 청량리까지 無를 지배했다. 하지만 그것도 부족했는지 無는 역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댔다. 無의 몸은 나의 몸과 확실히 다르다. 하하, 회복한 나의 몸 말이다. 되찾은 나의 몸과 말이다. 아, 나에게서 몸을 앗아가는 고약한 술 같으니. 되돌아온 나의 몸은 운전을 했다. 청량리역에 올 때와는 상반된 운전이었다. 뒤따라오는 택시가 경적을 울릴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신호는 완전히 지켰다. 참 기이하고 긴 하루였다. '가장 보통의 존재'를 반복해 듣는다. 지친 내 몸이 가장 사랑하는. 



_제목은 김목인의 블로그 <"음악의 회복"을 찾아가는 기록>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