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8

캐노피에는 사연이 있다

생각한 지는 꽤 됐다. 이 글 말이다.

첫째가 태어나고 세 번째 거처인 지금의 집에서까지 줄곧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따로 잠을 잤다(아닌 적도 물론 있지만 가급적 그러려고 했다). 아마 앞으로 꽤 오래 살게 될 지금의 집에서도, 처음엔 그랬다.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 아이들 방과 부부 침실이 층이 다른 곳에 있는 구조적 요인이 컸다. 각자 한 명씩 맡아 아이들을 재우고 1층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자면 거의, 언제나, 아이들은 자다가 깼다. 그럴 때마다 주로 아내가 올라가긴 했지만. 참다 못한 아내가 먼저 2층에서 자자고 했다. 나는 나대로 2층에서 자고 싶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침실이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게 공기 질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기를 한 달. 아이들은 푹 자는 횟수가 늘었고 불편을 호소하는 아내와 달리 나는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아이들 방에 있는 2층 침대의 2층은 대중없이 사용되는데, 요즘은 주로 내가 자는 편이다. 그리고 그 2층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창 밖을 보며. 

집을 지으며 기록에 대한 생각을 어찌나 많이 했던지, 지금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잔재들을 헤아릴 수가 없지만 생각했던 것에 비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늘 그렇듯 초라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든 뭔가 대단한 것을 쓰겠다는 포부는 없다. 다만 나의 방식으로 집에 대한 기록이 쌓여 갔으면 하는 바람뿐. 

2층 침대에 북쪽으로 머리를 대고 누우면 창 밖으로 거실 너른 창과 베란다가 보이고, 같은 박공이지만 아이들 방보다 층고가 낮은 거실 지붕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붕의 높이를 결정하던 순간과 징크 재료를 고르던 때, 베란다 하부의 단열재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베란다 우수 처리 능력까지,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가지만 유독 한 가지가 선명한 실루엣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캐노피. 

캐노피에는 사연이 있다.
2층 골조 철근과 거푸집 작업이 있던 날, 조선생님과 현장에서 만났다. 캐노피 때문은 아니었다. 전날인지 언제인지, 저녁에 김실장님이 전화를 해 앞동 주방 쪽 지붕을 낮췄으면 한다는 의견을 전하며 도면을 보내왔다. 이유인즉 골목에서 봤을 때 담장이 있고 뒤로 물러서 있는 다른 집과는 달리 담장 없이 전면으로 배치된 집이 너무 도드라져 보인다는 것.
당일 점심 때 잠깐 현장으로 가 선생님을 뵀고 점심을 먹으며 대화가 이어졌다. 밥이 나오기 전까지, 선생님은 식탁에서 스케치를 하며 고민을 계속했다. 하지만 막상 지붕은 당초대로 가고 현장에서 급히 결정해야 할 문제로 캐노피가 대두되었다. 도면에는 - 나도 나중에야 제대로 확인했지만 - 거실 너른창에 바싹 붙어 캐노피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캐노피 재료를 콘크리트로 갈지 아니면 철판으로 갈지가 관건이었다. 철판으로 가면 열교 여지를 최소한으로 줄여 단열이 득이 되는 대신 비용이 올라가고 콘크리트로 갈 경우 지금 당장 철근과 거푸집 작업이 이뤄져야 했다.
약간의 대화가 오간 뒤 즉석에서 콘크리트로 결정되었고 바로 현장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거푸집을 뜯어내고 나니 매우 육중한 자태로 캐노피가 도드라져 있었는데, 콘크리트 자체가 육중하기도 하지만 작업 여건상 창 바로 위에 골조 작업이 되지 않고 일정 간격을 두고 된 탓에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모습으로 그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캐노피는 창이 열리는 부분만 남기고 절단하기로 결정되었고, 그 모습이 현재의 캐노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