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5

비와 관찰

가을 장마라니.
비를 싫어하진 않지만, 비든 뭐든 다 때가 있는 거니까. 기분상 비를 좋아하는 건 감성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작물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비의 소중함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마냥 감성적으로만 비를 대하진 않는다.
태양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절기는 우리네 풍습과도 깊은 관련이 있지만 농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비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에 살 때는 비가 내려도 무심했다. 그게 사실이다. 때로 삽자루를 챙겨 논으로 나서거나 우사의 지붕을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직접 비와 맞서야 하는 것과 간접적으로 그것을 떠올리는 건 아무래도 차이가 크다.

비가 많이 내린다. 오전에는 하늘이 어찌나 쾌청한지, 비가 올 거라는 예보는 공기의 습도로 충분히 감지가 됐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무심히 집안으로 들어오기 미안할 정도의 날씨였다. 한 시간 남짓. 점심 시간이 지난 지금, 둘째 아이가 두 시간째 곤히 잠들어 있는 지금, 응접실의 라디오를 켜고 커피를 내려 오자마자 규칙적인 소음을 만난다.

똑, 똑, 똑.

아뿔사, 현관이 잔뜩 젖어 있고 도어클로저 쪽에서 물방울이 생기는 족족 현관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밖은 벼락 같은 비, 그리고 집안엔 누수.
누수가 처음은 아니지만 집에 비가 샌다는 게 기분 좋을 리 없다. 1층 사무실 분들과 한참을 관찰하다 집안에 들어왔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아 2층 발코니의 배수를 살피고 밖으로 나가 집 주위를 체크한다. 2층 발코니를 비롯해 가장 많은 물이 빠질 배수구가 한치의 틈도 없이 꽉 찬 채 물을 토해내고 있다.
노출된 외부 천장의 물은 늘 아슬아슬하다. 보수한 현관 하부의 물은 어느 정도 잡혔는지 낌새가 없지만 도로에 면한 쪽의 지하 외부 천장은 바닥에서 튄 물이라고는 의심스러울 정도의 물방울이 잔뜩 맺혀 있다.

물. 내려오고, 어딘가에 부딪치고 튀고 고이고 그 다음에는 어느 틈이든 더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 물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급한 대로 현관 도어클로저에는 마른 걸레를 대 물의 낙하를 지연시켰다. 임시방편.
담이가 잠든 동안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김금희의 소설이나 읽고자 했던 마음이 엉켜버렸다.
이런 오후의 마음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