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8

윌리엄 트래버, <여름의 끝>

마을 사람들은 라스모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도 대부분 이곳에서 계속 살았다. 마을을 뜨는 쪽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더블린이나 코크나 리머릭으로, 잉글랜드로, 어떤 이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수가 되돌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 또한 과장이었다. 
윌리엄 트래버, <여름의 끝>, 민은영 옮김, 한겨례출판, 2016

트래버의 소설은 처음이다. 트래버도 처음이다. 이로써 아일랜드 작가 한 명을 더 알게 되었다.
<여름의 끝>은 짧고 차분한 소설이다. 평온한 주말, 오후의 볕을 따사로이 받으며 읽었으면 단숨에 읽을 법도 했을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기에 '불완전한 환경'에서 독서를 이어가다 보니 오래 걸렸다.
소설의 배경은 아일랜드 라스모이. 소설의 차분함은 배경에서 기인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말하는 건 왠지 피상적이다. 엘리의 사랑은 코널티의 아픔으로 연결되고, 아픔이란 궤도에는 딜러핸도 올라 있다. 엘리의 사랑은 플로리언의 사랑과 어긋나 있되 그 어긋남은 미련일 수 있고, 그렇기에 결국 소설의 제목인 끝은 뭉퉁하다.
소설의 분위기란, 그래서 배경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비쳐 나온다. 읽는 동안 나는 그 분위기를 참지 못할 때가 있었다. 왜? 지금 내가 머무르는 곳의 계절이 소설의 계절과, 소설의 이야기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의 매서운 추위가 이야기를 더욱 오롯하게 하는 게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은근함을 좋아하는 내게 이 소설은 작가만큼이나 반가워야 할 터이나, 계절을 조금만 당겨놓았으면, 하는 생각에 책장을 덮고도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조금 더 은근함을 남겨두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