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0

마탄사스, 산책의 풍경

내가 쿠바에 가고자 했던 건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우선 체 게바라가 주는 매력이 먼저 다가왔고, 카스트로가 이끈 쿠바 혁명이 도화선이 되었으며, 소련 붕괴 후 쿠바가 직면한 현실로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과연 다른 사회에서 다른 삶을 구축하고 살고 있을까? 

아직 사회생활을 하기 전이었던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순진한 편이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일종의 이상을 상상하곤 했었다. 체 게바라가 말한, 도덕적으로 충만한 새로운 사람들(New Men)로 버글거리는 그런 사회의 모습을 혹 쿠바에서 볼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물론 대체로 알고 있었지만 그랬으면 하는 옅은 희망을 품기도 하였었다. 그것을 유재현은 느린 희망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실제로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의 쿠바가 카스트로의 국가비상시기 선포 이래 지금까지 현실사회주의를 이어오며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흥미로울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의 반대편에 있는, 서로 닿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 어깰 부딪치며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금세 깨져버릴 듯한 유리거울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그래서 여행을 하며 마주치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일상적인 모습에서도 실망(?)을 거듭하곤 하였다. 정말 우습게도. 그리고 그 모습을 실질적으로 처음 느끼고 받아들여야 했던 곳이 바로 마탄사스였다.  

걸으며 우연히 들른 마탄사스의 작은 학교, 카밀로의 그림이 걸려있다. 
Matanzas, Cuba, 2007 
내가 건넨 빵을 거부한 아해들 

걷고 있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웃옷을 벋은 아저씨가 나를 끌고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빵 공장이었다. 배급소에서 나눠주는 빵을 만드는 것으로 보이는 그곳엔 커다란 기계가 있었는데 아저씨는 나를 보며 이것이 중국제라며 무척 반가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곤 나의 대답을 기다리셨다. 나는 말했다. 나는 '꼬레아노' 라고. 순간 아저씨의 표정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며 약간 당황해 하면서도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어색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대뜸 빵 좀 달라는 손짓을 해 보였더니 나를 한 번 빤히 보시고는 별 주저없이 큼지막한 그것을 네 개나 집어 건네주셨다. "그라시아스!" 고맙다는 말과 표정을 던지며 유쾌하게 돌아서 그곳을 빠져나와 빵 하나를 질끈 물었다. 약간 질겼지만 산책을 하며 요기를 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빵을 계속 먹으며 걷다가 아해들을 만났는데 녀석들은 내가 건네는 빵을 아주 간단히 거부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부탁엔 순순히 응해주었다.

마탄사스에서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치노(Chino)란 말을 듣기 시작했다. 중국과는 교류를 하는 쿠바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동양인을 중국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거리에서 마주친 장난기 가득한 그들 중 일부는 나를 보며 "치노!"라고 크게 부르고는 내가 돌아보면 "아뵤~"하며 쿵후 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때 내가 태권도 자세를 취했던가? 한 달 내내 그 말을 수없이 들었던 나는 결국 차라리 중국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품었던 것 같다. 만일 그랬더라면 그들의 반가운 인사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고장나 쓰지 못하는 로모가
그래도 가끔은 생각납니다 
어디선가 포토 포토 하는 소리가 들려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그들을 찾아냈다. 
낚시하는 부자(父子)
해질 무렵의 햇살은 무척 따스합니다 
그리운, 마탄사스의 석양

마탄사스에서 머무르던 첫날 저녁, 숙소 주인의 친지가 찾아왔다. 그는 숙소 주인의 동생이었는데 전반적인 태도가 꽤나 건방졌었다. 아니 그보다 원래 성격이 약간은 거칠고 무례해 보였다. 그와 단어로 이루어진 대화를 제법 많이 하였는데, 그는 주로 자신이 관심 있다고 하는 팝 음악 얘기를 많이 했다. 당시 내가 대체로 알고 있던 유명한 팝 가수를 그는 거의 알고 있었는데 그 말투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팝 음악을 자유로이 들을 수 없는 국가의 통제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획일이라는 말과 가장 멀리 있(어야 하)는 말이 문화 혹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런 그의 취향도 존중해야 마땅하나 당시 내겐 그의 그런 모습이 자신이 속한 나라의 문화는 으레 외면하고 어떻게든 접하게 되는 타국의 문화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걸 조금 확대 해석하면 체제에 대한 반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의 자유다. 현실사회주의 노선을 택한 쿠바가 외부로부터 가장 비판 받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임을 감안해 볼 때도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가 수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한 사회가 하나의 방식으로 유지된다는 건, 놀라우면서도 경악스러운 일이다.


2014.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