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곳에 도착을 했을 때 시간은 아직 낮이 되기 전이었다. 아주 엷은 비가 시나브로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대장님이 컨펌해준 예약은 확인하지 못하고 별도로 방을 구해야 했다. 그래서 106호. 완전한 서향에 발코니로 나가 서너 번 넘어지면 곧장 미지근한 바다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미친 듯 잠을 잤고 부러 깨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가장 온전한 목적이기에. 물론 조금의 아쉬움은 있다. 이름하야 장소성을 띈 그것은 바로 다이빙에 관한 것인데, 이곳 차량들 번호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Diver's Heaven
다이버들의 천국이 된 축 라군(Chuuk Lagoon) 일대는 그 자체로 슬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기록된 역사 이래,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도 모자라 전쟁에 동원되고, 땅과 바다를 고스란히 내주어야 했기에. 말이 없는 투명하고 푸른 바다는 더없이 찬란하기에 찬란한 슬픔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지배의 역사 막바지에 그야말로 전장이 된 축 라군에는 여전히, 당연하게도 태평양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상흔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마이크로네시아에 명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여행지로 마이크로네시아를 택하고 가장 곤혹스러웠던 건, 지인들마다 - 물론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것일 테지만 -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나, 하고 물으면 마이크로네시아란 답에 그곳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또 설명이 이어져야 한다. 왜 그곳을 택했는지, 그곳엔 뭐가 있는지 등등.
그 중에 마이크로네시아를 인지하고 있거나, 혹 가길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다이버였으니, 마이크로네시아야말로 Diver's Heaven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해야 할지, 나로선 난감하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축 라군의 곳곳에는 태평양 전쟁 당시 침몰하거나 곤두박질친 군함과 군항기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바다 생물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녹슬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곳을 헤엄쳐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다이버들이 있기에 그곳이 Diver's Heaven이라고 스스로 부르기도 하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