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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2023 포르투&바르셀로나 준비

  • 일정: 8/26 ~ 9/10(가족들 8/8 ~ 9/10)
    • 포르투 8/26~8/28, 바르셀로나 8/28~9/9
  • 집 - 공항 이동
    1. 공항버스: 한일타운 -> 인천공항 13,500원
    2. 공항택시: 인천공항 -> 수원 통행료 포함 7만원대
    3. 공항주차: 약 71,500원(50% 감면)
  • 언어 맛보기: 듀오링고
  • 읽을 책
  1.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소아(김한민)
  2.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3.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인상과 풍경, 시전집
  4. 처음 만나는 스페인 이야기 37(이강혁), 아워 리스본 포르투(조인숙), 바르셀로나(아뜰리에15구), 포르투갈 시간이 머무는 곳(최경화)
  5. 안토니 가우디 아름다움을 건축한 수도자(손세관)
  6. 마로니에북스: 살바도르 달리, 안토니 가우디  

 

  • 가이드북: 론리플래닛 바르셀로나(12판)

2018/02/13

2017년 2월 23일의 일기


그러니까 어제, 오후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지도를 보니 괜찮아 보여 퇴근하고 아내와 함께 가 보았다. 가 보니, 괜찮다. 괜찮았다. 그러니까 아내와 나는 그 땅을 본 순간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래, 느낌이 좋다.
바로 부동산으로 가서 긍정의 의사를 전하니 곧장 계약을 하자고 한다. 그게 바로 오늘. 도서관 앞 땅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동시에 우리 땅이라는 직감이 머릴 스친다. 그러자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 계약 무산의 과정을 겪었다.)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그 땅에 들렀다. 어두울 때 골목의 분위기를 보고 싶었다. 높이 매달린 가로등 불빛은 꽤나 밝았고, 거주자 우선주차 때문에 도로는 비좁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답답해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좋은 느낌을 유지한 채 집으로 돌아가니 이제는 돈 문제가 전속력으로 달려 들었다. 하! 정신이 없는 게 아니라 녀석을 안고 그대로 뒤로 나자빠져 뒹굴고 있었다.
은행에 가서 대출 요건을 알아보고, 계약금만 빠듯하게 맞춰 부동산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일러 그 땅을 주위를 배회하다가 — 현재 조건만 유지되면 일조량이 아주 넉넉하다 — 부동산으로 갔다.

그렇게 우리가 노랠 부르던 집을 짓기 위한 첫 관문, 땅을 계약했다. 이제부터 시작. 하지만 돈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그리고 늘 고대해 왔지만 너무 갑작스럽다는 얼떨떨함. 그래서 미처 준비가 소홀하거나, 건축가를 택하는 데 조바심으로 그르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대중없이 나를 공격한다.

2018/02/11

벌써 일 년


물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예상대로, 기록은 여러 곳에 감추어져 있다. 미처 머리와 가슴 속에서 끄집어내지 못한 기록들은 이미 사장되었을 것이다.

기적적으로,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원하던 그곳에 땅을 샀다. 그 땅에는 1968년에 준공된 조적집이 있다. 1968년. 무려 50년 전이다. 그리고 우리가 땅을 산 지 벌써 1년이다. 그럼 1년 동안 뭘 했냐고?

돈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

얼마나 무모했던지. 세상을 이렇게도 몰랐다니. 땅 계약을 하고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오셨고 그 땅을 보고 나서 같이 걸으며 자금계획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부끄러웠고 가슴을 벌렁거리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제서야 욕망의 카테고리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

우리는 자금을 마련하고자 전세를 갈아타기 위해 매물을 내놓았지만 꼬박 1년 만에, 계약기간을 거의 다 채우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집은 좁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한다는 것과 이사를 하려고 짐을 헤아려 보니 이 집은 좁은 게 아니라 넓은 곳이 없는 것뿐이며 우리가 가진 다소 많은 가구를 배치하기에 최적이었다는 것을. 희한한 역설이다.

2018/01/21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개개인으로만 바라볼 때 그런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거대한 혁신을 이뤄낸 현대 의학으로도 알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 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금연하지 못하는 건설노동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 시골 지역에서 AIDS로 사망한 여성도, 동유럽의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던 나라에서 결핵에 걸린 어린이도, 개개인만을 바라본다면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 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70~72쪽, 동아시아, 2017. 

2017/10/14

제가 사람의 의지를 잘 믿지 않거든요. 결심은 대체로 끝까지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고 조금씩만 요구해요. 하루에 50쪽을 읽기로 했다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 양을 줄여서 다시 계획해요. 이렇게 해보고 안되면 다른 식으로, 될지 모르지만 해보는 거죠. 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굉장히 관대해요. 설계 안에서 대충하는 걸 좋아해요.  
작가가 경험으로 쓸 수 있는 소설은 한 권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또, 경험을 쓴다는 건 화자에게 확고한 딱 한 번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므로 소설가에겐 맞지 않는다고 봐요. 1인칭 화자 '나'는 인물 중의 한 명이지만 동시에 편집자로서 작가이기도 해요. 사건이 다 끝난 뒤에 그것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취재를 한 화자죠. 그래서 넓은 조망을 갖고 이 말을 지금 할까 좀 있다 할까 계속 고민하면서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데 어릴 때부터 시간과 함께 자라는 과정을 따라가는 후일담 소설의 '나'는 예전 일을 서술하면서 당시의 내가 되어버려요. 자신은 굉장히 크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진행될 확률이 높은 거죠. 전 만약 마흔한 살인 현재의 나에 대해 쓴다고 해도 여든 살이 넘어 죽은 시점에서 마흔한 살을 돌아보며 어떤 의미를 갖는지 회고하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상황에 대해 모르는 현재형의 화자는 지위가 낮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긴 힘들다고 봐요. 

_<진심의 탐닉> 13쪽·25쪽, '세계의 끝, 소설가 김연수', 씨네21, 2010.  


늘 그렇듯(?) 많은 책들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하루에 몇 권씩 들추며 읽고 있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는 소위 믿고 읽거나 듣는 사람 중 하나인데, 다른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가 끌려 빌려온 책이 씨네21에 연재한 인터뷰 모임집 <진심의 탐닉>이었다.
재밌는 것은 영화 잡지에 연재한 인터뷰인데 그 대상이 배우부터 소설가, 엔터테이너, PD, 영화감독, 번역가, 과학자 등 다양하다는 것이고, 앞 부분의 몇 편의 인터뷰를 읽으니 역시나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독자로서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이 짧은 인터뷰 속에 그가 소설을 포함한 글을 대하는 태도가 집약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2017/09/30

푸코는 기존의 역사학이 과거를 역사적 연속성의 선형적 질서로 재단함으로써 과거를 현재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을 행사해왔다고 비판하고 시기마다 분절된 단층을 파내려 가는 고고학을 모델로 삼아 역사적 불연속성에 주목하는 대안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푸코적 의미의 고고학적 탐구는 무엇보다 특정한 공간과 시간의 균일적이지 않은 관계망을 발굴해냄으로써 시공간이 일체가 된 과거의 원형을 '객관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역사학적-역사주의적 통념을 해체한다.  
꿈마루는 클럽하우스의 건축적 구조뿐만 아니라 근대건축의 근간을 이루는 텍토닉 원리를 명징하게 가시화한다. 프로이센 궁정건축가 싱켈이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듯 신고전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근(현)대건축은 분명 권력지향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기능적 합리성과 꽉 짜인 통일성의 강조는 규율과 통제라는 정치적 원리에 부합했다. 서울 컨트리클럽하우스가 구현한 모더니즘은 그 시대적 조건만큼이나 권력지향적이고 폐쇄적이었다. 꿈마루는 클럽하우스를 관통하는 텍토닉 원리를 극적으로 가시화함으로써 건축함에 대한 새로운 기억과 성찰을 고무한다. 꿈마루는 건물 그 자체가 고고학적 탐구이며 근대적 시공간질서를 파헤치는 삽자루 같은 기억이다. 기억을 통한 공간의 생산은 공간을 특정하게 자리매김하고 차별화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권력의 요구에 부합하지만, 꿈마루의 경우처럼 기억이 오히려 그러한 차별화에 물음을 던지며 비판적 성찰을 자극하게 될 때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요구와 어긋날 수밖에 없다. 권력이 생산한 모더니즘의 유토피아가 색다른 방식의 기억을 통해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_전진성,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 636쪽·637-638쪽, 천년의상상, 2015.  

2017/08/17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이성복, <남해 금산>, 문학과지성사, 1986

2017/08/15

독일은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생산할 능력도 없다는 게 확인되었다.
일대 사기극이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원자폭탄 경쟁에서 나찌를 누르기 위해서라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정당화는 단번에 뒷전으로 물러났으며 그와 함께 도덕적인 힘, 그로브즈가 15만 명의 남녀들 - 특히 과학자와 기술자 들 - 을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만들기 위해 불러일으킨 도덕적인 힘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의 휘하에 있던 일급 과학자들은 예상대로 "독일에 그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가"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과학자 중에서도 제일 선두에 선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정당했던 공포로 인해 당초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실현시켰던 바로 그 망명 과학자들이었다. 그로브즈는 입장을 바꿔 나찌를 항복시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작업을 더욱 신속하게 진척시키라고 외쳐댔다. 그가 그렇게 설쳐댄 것은 사실 나찌가 항복하기 전에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원자폭탄을 실험해보기도 전에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날 것이 점차 분명해지자 그로브즈는 인간을 목표로 원자폭탄의 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까봐 몹시 걱정했다. 일본이 아직 적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들이 핵무기 계획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앞지르기 위해 원자폭탄 제조가 필요하다는 식의 구실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원자폭탄의 사용이 전쟁을 단축시키고 수십만 미국인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는 제2의 대사기극이 연출되었다.
'미국인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구호는 후에 베트남 전쟁에서 부녀자, 어린이, 심지어 품속의 아기들까지도 죽인 미라이의 대학살 그리고 그와 유사한 수많은 학살사건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역질나는 공식이 된다. 그로브즈 장군은 '미국인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구호가 수십만의 일본 민간인들에 대한 살육을 정당화해준다는 논리로 그런 공식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로브즈 자신도 그런 구실이 일류급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원자폭탄은 일본의 항복을 확실히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원자폭탄이 실험을 거치면 즉각 일본에 대해 사용될 것이란 말이 그로브즈의 '빈틈없는' 보안망을 뚫고 새어나오자 과학자들 사이에서 곧 반발이 일었다. 독일이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 가장 크게 우려를 나타낸 건 맨해튼 프로젝트를 맨 처음 주장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윌프레드 버체트, <히로시마의 그늘> 141-145쪽, 표완수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5 

계속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227쪽, 창비 2014 

김준의 사이트에서 황정은이란 이름을 몇 차례 보며, 나도 읽어봐야겠다, 국내 작가에 대해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지난 일주일, 황정은의 나의 첫 번째 책,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으며 큰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그런데, 비록 이야기는 나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결코 비상상의 세계는 아닌, 바로 근처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너무나 일상적인. 그래서 은근한 애정이 남는. 그러니까 소설은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들, 우리들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사서 서재에 꽂아두고 싶었는데, 그 자리는 아무래도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옆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통의 존재를 다룬 소설 속 인물들이 3인칭이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꽤나 비중 있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엄마도, 소라와 나나는 애자로, 존재 고유의 이름으로 부른다. 다만, 지극히 내적인 고백, 즉 나기의 고백에 등장하는 소년만이 '너'로 표현될 뿐이다. 그 고백은 동성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동성애는 아직 우리 나라에서 내적인 고백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한 것일까.

2017/08/14

동네를 찾아서


용인으로의 이사는 십여 년의 서울 생활의 청산과 함께 이십대가 되며 시작된 아파트 생활에서 다시 단독주택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물론 우리 부부의 의지이자 여러 제반 여건이 고려된 결과이기도 했다.
택지지구 내 기반시설이 정비된 곳에 위치한 지금 집은 소위 말하는 땅콩 주택이어서 그리 넉넉한 공간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가 갓 태어난 딸 아이와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원래 야산인 곳에 산책로를 개설한 공원이 가까이에 있고 도서관이나 호수공원도 마음만 먹으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큰 주저 없이 택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형네 집과 무척 가까웠다. (이 동네를 우리에게 알려준 이도 다름 아닌 처형이었다.)
처음엔 미분양이었다는 동네는 단독 필지가 대략 8-10개 정도 모여 있는 클러스터가 이어져 있는 형태인데, 단독주택 붐이라도 불었는지 우리가 이사 오고 나서는 자고 일어나면 한 집 착공하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동네의 빈 땅들이 하나둘 채워져 가는 사이, 어느새 아내와 내 마음 속에도 집을 짓고자 하는 욕망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다. 더없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집을 짓고 살기에 우리 가족에게 적합한 곳은 어디일까?
사는 데 불편하지 않고 딱히 동네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질문에 지금 동네라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동네가 가진 장점, 즉 쾌적함과 고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비용 면에서도 지금 동네는 타협의 지점이 멀고도 멀었다. 게다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더 그럴싸한 변명을 하자면, 내겐 참을 수 없는 시간이 존재했다고 해야겠다.
어느 동네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왜인지 그 필요한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대중교통의 불편함은 치명적인 단점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앞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 시간이란 변명은 동네스러움이라는 나의 까다로운 기준에도 부합해야 했다.
동네를 찾아나서야 했다. 그 일 번지, 내 마음 속 일 번지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히로시마에서는 최초의 원자폭탄이 도시를 파괴하고 세상을 뒤흔든 지 30일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불가사의하게 그리고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다 ━ 하늘과 땅을 온통 뒤흔들어놓은 그 대폭발에서도 상처를 입지 않았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기자는 원자병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히로시마는 폭격당한 도시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증기롤러가 깔아 뭉개고 지나가서 그 도시를 완전히 없애버린 것 같다.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사방을 둘러보면 25-30평방마일 내에서는 건물 한 채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저지른 그 같은 파괴를 보면 뱃속이 휑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자는 임시 임시 경찰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도심의 한 판잣집 같은 건물로 갔다. 거기서 남쪽을 바라보니 붉은 돌부스러기들만 3마일 정도 뻗쳐 있다. 수십 개로 구획지어진 도시의 거리며, 건물, 집, 공장, 인간 들을 파괴하고 원자폭판이 남긴 것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폭탄이 떨어졌을 때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으나 나중에 괴상한 후유증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들의 건강은 악화됐다. 식욕이 없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져나가고 몸에는 푸른 반점이 생겼다. 그 다음에는 귀와 코와 입에서 출혈이 시작됐다. 처음에 의사들은 일반적인 쇠약증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게 비타민 A를 주사했는데 결과는 끔찍했다. 주사바늘이 꽂힌 곳부터 살이 썩어가다가 예외없이 죽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이 투하한 최초의 원자폭탄이 가져온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후유증 가운데 하나이다. 거기서는 내가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특이한 냄새가 났는데, 유황 냄새와 비슷하긴 하지만 정확하게 그 냄새도 아니다. 아직도 타고 있는 불더미 옆을 지날 때나 잔해더미에서 시체들을 끌어내고 있는 곳 등 모든 것이 파괴된 지역이면 예외없이 그 특이한 냄새가 났다.  
"아침 일찍 공습경보가 있었지만 정작 나타난 것은 비행기 두 대뿐이었지요. 우리는 정찰기로만 생각하고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해제 경보가 울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러 나갔지요. 그후 8시 20분쯤 내가 사무실로 가려고 막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 비행기 한 대가 돌아왔어요. 그러고는 뭔가가 번개처럼 번쩍하는 동시에 뜨거운 열기와 폭풍처럼 세찬 바람이 얼굴에 확 와닿았어요. 나는 땅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내 옆에서는 집이 무너져내렸지요. 내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에 옆에서 강력한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벼락 같은 폭발 소리가 났어요. 올려다보니 낙하산 모양의 거대한 검은 연기기둥이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더군요. 그 중심부에는 진홍빛 선이 있었는데, 그것이 연기기둥을 헤치고 점점 퍼져나가 마침내 전체가 빨갛게 되었어요. 그리고 히로시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나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윌프레드 버체트, <히로시마의 그늘> 63-67쪽, 표완수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5  

2017/07/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짓고 싶었다. 현실은 당장 허락하지 않더라도, 집을 짓고 싶었다. 욕망의 무모함이야 말해 무엇하겠냐만은, 그 무모함이 없을 때 삶을 지루한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왜 집을 짓느냐고 물으신다면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라고 대답하렵니다.
하지만 요즘에 '-싶다'는 왜 그렇게 멀기만 한 욕망처럼 느껴질까요.
각자 생김새는 다르지만 유사한 욕망을 품고, 유사한 이야기를 나누고, 유사한 생활을 하며 유사하게 살아가는 것. 욕망마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과 다를 바 없어진 요즘, 어이쿠, '집을 짓는다!'니요.
남들 다 사는 아파트에서 걱정 없이, 완전하게 밀폐된 삶을 살면 될 것을.
더군다나 집을 지으면 십 년은 늙는다는데 '집을 짓는다!'니요.


건축 일기를 쓰는 일


집을 짓고 싶다는 열망만큼이나 뜨겁게 나를 자극하는 건 집 짓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방향을 못 잡고 있는 듯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이렇게 버젓이 '건축 일기'라고 명명한 기록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제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 짓기에 관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솔토건축의 조남호 건축가가 설계하고 죽전에 지어진, 살구나무집이라고 이름 지어진 두 동의 집에 관한 책.
건축주는 소위 주거 문화 전문가라고 하는, 친구 사이인 두 명의 교수.
서두만 읽은 책에서, 저자는 책을 쓰고자 한 동기를 우리 나라에서 중산층이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밝히고 있다(이 점, 특히 아파트 가격으로 단독 주택을 지어 살 수 있다는 건 아내가 '증명'하고 싶어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던졌던 질문, 그 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동시에 나는 왜 기록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문 앞에 서 있다.
무엇일까? 내게 기록이란, 우리에게 집 짓기란.

17. 7. 5.

건축 일기를 시작하며


건축 일기를 쓰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록을 해야 한다."

이 때의 기록은 반드시 정제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양식을 갖춰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만족할 만한 것이 유일한 기준이라면 기준일 텐데,
비좁은 딜레마에 스스로를 가둬버려 지금껏 기록을 했으나
그 기록은 산만하게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래 결국 이렇게 새 장(場)을 마련한다.
이제 000의 기록은 이곳으로 흐르고 흘러
작은 개울이, 하천이, 강이 될 것이다.
그 강에, 몸 누일 만한 모래톱 간간이 있어주길 희망한다.

2017/04/24

'창의 경쟁'은 곧 '방패의 경쟁'을 수반했다. 어쩌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대방의 핵미사일이 내 땅에 떨어지면 수백만 명이 몰살당할 수 있다. 그래서 그걸 중간에 요격하는 방패를 갖겠다는 건 '자기 보호 본능'의 발동이었다. 하지만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곧 MD의 한계를 간파했다. 'MD 구축은 안보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이 군사력을 아무리 강화시켜도 국가안보는 계속 악화된다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만든다."는 점을 꿰뚫어 본 것이다. 

_정욱식, <사드의 모든 것> 26쪽, 유리창, 2017


모순矛盾이라는 중국 고사가 절로 떠오른다. 말 그대로 '창과 방패'를 의미한다. 유래는 이렇다. 초나라의 한 장사꾼이 저잣거리에 창과 방패를 갖다 놓고는 "여기 이 방패는 어찌나 견고한지 제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죠."라고 말하고, "여기 이 창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꿰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습죠."라고 했다. 그러자 한 구경꾼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라고 묻자, 장사꾼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장사꾼'은 세계 최대의 무기판매국 미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한편으로는 각종 공격용 무기들을 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사일은 막으라고 MD를 팔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는 '구경꾼'보다도 모자라다. 사드의 성능을 묻기는커녕 '장사꾼'보다 사드의 성능을 과장하기에 바쁘다.  

_같은 책 36쪽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지 15년이 흘렀다. 이 사이에 부시의 말은 씨가 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를 장착한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미국까지 다다를 것"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과장된 주장이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MD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에 대한 집착을 다시 호출하고 말았던 것이다. 반대로 북한 정권의 이들 무기에 대한 집착은 MD라는 괴물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MD와 북핵의 적대적 동반성장이다. 이러한 추세는 오늘날 더 빨라지고 있다. 사드가 대표적이다. 이 악역의 고리를 어떻게 끊느냐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관건인 것이다.  

_같은 책 83쪽


대체로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슈'들은, 그것이 특히 안보와 관련이 있을 경우 더더욱, 논쟁의 굴레에서 다뤄지지 못 한다. 막무가내식의 주장과 상대를 자극하는 언어의 혼탁의 장일 뿐. 사드 자체로도 충분한 논쟁거리가 되지만, 그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사드라는 '나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MD라는 '숲'"을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2017/04/14

해찰은 기웃거리고 집적거리는 짓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딴짓을 하거나 여기저기 쏘다니지 말라고 당부할 때 쓴다. "해찰하지 말고 곧장 오너라." 그러니까 해찰은 부질없는 짓거리나 산만스런 분위기, 덜렁거리고 까부는 모양새인 것 같다. 제 갈 길 똑바로 가지 않고 갈짓자로 횡보하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만져 보고, 흥정도 했다가 말도 붙였다가 하느라 원래 어디를 가려 했는지 까먹을 지경이다. 근데, 여튼 집에 가기는 간다. 해찰은 필연적으로 집이 아닌 '언저리'에 먼저 가 닿는다. 계몽주의와 모더니즘이 떨쳐 버렸던 주변부를 지시하는, 이 족보와 어원조차 불분명한 발음은 '주변부' 같은 어휘와 호응하기도 벅차다. 주변부에서도 가장 주변부에 속하는 족속이 제 입에 '주변부' 같은 단어를 올릴 리 없는 것이다. 실은 주변부와 언저비 사이에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가, 그것이 아무도 모르는  알려 하지 않는 ━ 우리의 문제다. 언저리는, 주변부로 호명되지조차 못하는 어느 언저리에 있다. 우리말에서 어느 언저리는 어떤 언저리이기도 하고 언저리의 어딘가이기도 하다. 곧, 언저리가 '주변부'와 다른 지점을 꼽자면, 중심부와 대결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수류산방은 곧잘 말해 왔다. "우주는 언저리가 지탱한다."언저리는 가까운 근처이되, 외곽의 경계 밖을 아슬아슬 포함해야 맛이다. 한창 불고 있는 풍선의 겉껍질 같은, 외딴 산 속의 수행자 같은, 그 낱말은, 생각해 보라, 언제고 중심이 아니라 바깥을 동시에 흘끔거린다. 언저리는 주변부의 밖이다. "빅뱅의 기억을 간직한 시원의 윤곽이 지금 이 우주에서 가장 머나먼 곳에서도 더 멀리,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아나듯, "언저리는 중심으로부터, 목표로부터 수줍어하면서 애써 달아나는 움직임이다. 주제와 집단의 바깥을 밖에서 볼 수 있는 자가 언저리를 이룬다. 해찰하는 짓거리는 필경, 어른들이 싫어하는 언저리를 건드린다. 그런데, 이것은 미학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 우리가 아침저녁 매일 오가는 길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마주친다면, 그것은 아주 약간의 해찰궂은 기웃거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똑같은 작업에서 어느날 어떠한 통찰을 얻는다면, 가장 고전적인 예술적 태도에서 새로운 섬광이 일어났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리라. 해찰의 그러한 찰나들이야말로 "解察" 즉 '풀어 살피'게 할 여지를 부여하거나, 해탈━대자유━를 엿보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이런 모든 의미 붙이기란, 또 얼마나 징글맞은가! 켄트리지 스스로 "주변적 사고"라고 말한 그 작업 방식을 우리말로 다시 "해찰"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해찰일까, 아닐까. 가장 예술적인 듯 보이는 작업이 실은 지긋지긋한 육체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별 것이 아니다. 정작 더 본질적인 데는 대개가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을지 모른다. 토요일 저녁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부부젤라'를 입에 문 행렬이 서울 삼청동 길을 지난다. 꽉꽉꽉꽉━. 꽉꽉꽉꽉━. 그 행렬은 예술로서 발견되지 못할 것이다. 전복이 일어나는 무렵에는 아무것도 전복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이야기하려면 스스로 주변이 아니어야 하므로, 주변을 선언하는 순간 주변이 아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그러할 것이다. 여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독선과 폭압의 역사도, 결코 세계적인 예술거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청산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다행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러나 허무에 빠지지 않고 계속 이 잔혹함을 눈물 없이 견딜, 또 한 번의 작은 명분을 얻는다. 정말 해찰이 무슨 뜻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해찰하는 어떤 상황은 가슴 아픈 것을 수반한다.  

<해찰 : 언저리의 미학> 011-015쪽, 수류산방, 2016

작년 초, 아직은 서울에 살 적에 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 <윌리엄켄트리지 : 주변적 고찰>을 보았다. 한 예술가의 단독 전시임에도 그 양이 매우 방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선이 지루하거나 걸음에 긴장을 놓칠 틈이 전혀 없을 정도로 밀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용이 충격적일 정도로 신선했다. 길게 인용한 이 글은, 감동적인 그 전시를 바탕으로 수류산방에서 펴낸 책의 서문인데, 전시 못지 않게 서문 또한 감동적이어서 다소 길지만 옮겨 본다. 
운하는 뱃길 용도가 아니라 물길이라는 의미로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배가 다니기는 하지만 우선은 물을 통과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베네치아가 건설된 땅은 개펄 가운데 위치했기 때뭉네, 바다의 간만(干滿) 즉 밀물과 썰물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만약 베네치아가 지금처럼 운하에 의해서 무수히 나뉘지 않고 전체를 매립해서 통합했다면 이 도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수시로 물에 잠겨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큰비가 내리면 육지에서 급하게 흘러 들어오는 강물이 바다의 밀물과 만나면서, 그럴 때마다 도시는 물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강의 흐름과 바닷물의 간만 관계를 면밀히 고려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운하를 설치한 결과, 마치 실핏줄이 온몸에 퍼지듯이 도시 곳곳에 운하가 지나가게 되었다.  
손세관, <베네치아> 56쪽, 열화당, 2007

어두움과 밝음의 대조, 좁은 도로에서 개방된 공공장소로의 극적인 변환 등은 베네치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징이며, 이는 이슬람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베네치아 주민들은 주거지 주변의 폐쇄된 골목길과 개방적인 광장 사이에서 이러한 시각적 변화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도시 중심부를 거닐다 보면 전혀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리저리 꺽이면서 연속하는 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공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된 상점들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도시생활을 맞이하게 된다. 마침내 발길이 산 마르코 광장이나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스키아보니 해얀, 또는 리알토 다리에 이르면, 보행자는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열린 공간과 만나게 된다. 
같은 책 77쪽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라구나(lagoona, 석호潟湖)는 매우 특이한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처럼 완만한 개펄로 조성된 지역이 라구나가 형성될 수 있는 적합한 지역인데, 전 세계적으로 라구나를 발견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라구나는 육지로부터는 담수가, 외해로부터는 해수가 흘러 들어오는 완만한 개펄지대로서,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경사가 매우 완만한 개펄지대' 또는 '소택지(沼澤地)'가 적절할 것이다. 라구나는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를 매우 애매하게 만들어, 밀물 때에는 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에는 물 위로 드러나므로 바다인지 육지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보통 땅에 굴곡이 있어서 썰물 때에는 물길이 있는 개펄을 형성하다가 밀물 때에는 수면이 넓게 펼쳐진 곳에 크고 작은 섬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라구나는 시간에 따라 변화가 많고 다채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같은 책 47쪽
저는 오랫 동안 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옛것에서 높은 가치와 깊은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리고 나누어 마땅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이야기했을 때 선입견 없이 알아 보고 사랑해 주는 외국인들이 있었고, 다시 찾아와 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외국인을 상대로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만 내달리던 시대에 오히려 이 땅에서는 그런 이들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때 너희 안의 정말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던 선진국의 문화인들을 만났습니다. 자기네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해 준 이야기였지만, 지금 살펴보면, 우리는 그들이 잘못 갔던 길마저 똑같이 가 보고 있나 싶어 마음이 슬픕니다모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 조용한 마을 한산에 직접 찾아가 모시를 직접 사고, 새벽 모시장을 뛰어난 그래픽과 기사로 꾸며 알린 것은 일본의 잡지사였습니다. 역사적인 문화 잡지 <긴카(銀花)>의 1998년 가을호였습니다. 우리는 그 두 해 전부터 긴 준비 기간을 가지고 차근히 공부하고 여러 장인을 만났습니다. 그 때도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그렇게까지 귀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한산의 모시장은 영영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보다 덩치가 커진 모시 전수관을 가면 지금도 전시와 시연을 관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모시가 삶과 역사에 완전히 하나 되어 있던 그 시대의 울림을 담은 자료는 남아 있지도 않고, 앞으로 도저히 만들 수도 없습니다. 
최지은, <모시한산> 9쪽, '어머니의 마음', 수류산방, 2015

이 책은 모시 한복의 멋이나 새로운 모시 공예품, 디자인을 소개하려는 의도로 만들지 않았으며, 한산 모시의 역사나 기능을 고증하려는 뜻도 없다. 또 어리석은 마음으로 굳이 덧붙이자면, 모시풀을 거두어다 입술을 헤어 가며 희고 가는 실을 토해 내며 늙어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모시의 언저리라, 수류산방에서 책 제목을 "언저리의 미학"이라 한 뜻을 밝혀 둔다. 
같은 책 16쪽 

2017/04/10

(1704 광주 의재미술관) 의재를 찾아서

광주시 동구 운림동 85번지. 증심사와 약사사에 불공드리러 가는 마음들이 새벽부터 또 그 다음 새벽까지 끊이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오르다 보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길이 바로 의재 선생이 30년을 오가신 증심사 계곡 등산로이기 때문이지요.
요즘 이 등산로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의재 선생의 작업실이었던 춘설헌과 선생의 묘소, 옛날 차 공장이 그대로 있는 계곡 건너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집인 듯 미술관인 듯, 작은 나무 상자 같은 건물이 생겼거든요. 의재 선생을 기리는 마음과 정성이 지나쳐 혹시나 산과 물이 중심인 이 계곡보다 더 잘 보이게 되면 어쩌나, 설계자도 건축주도 시공자도 조심조심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10년을 계획하여 지어 낸 건물이라고 합니다. 의재 선생의 그림이 살 집인데, 그저 무등산과 그림과 차가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집인데 으리으리하고 첨단 기능을 갖추면 무엇에 쓴답니까. 옛 농업 학교 건물은 약간만 개보수하여 그대로 두었고, 담도 없고 커다랗고 세련된 간판도 없는, 새 건물인지 원래 있었는지 갸우뚱하게 만드는 그런 건물입니다. 
심세중,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 242쪽, 디자인하우스, 2001

몇 해 전 눈이 가득 내린 새해 첫날, 아무 계획 없이 광주에 갔다. 그렇게나 많은 눈이 내린 줄은 미처 몰랐다. 용산에서 광주행 첫 열차에 올라 잠든 후 눈을 떴을 때, 열차는 정읍 부근을 달리고 있었는데 주위가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산보다는 너른 들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남도 땅 가운데, 사방이 고요한 풍경에 사로잡혀 열차는 광주로 다가가고 있었다. 광주역에 내려 간장게장이 나오는 백반을 먹고 광장에 나오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 1980년 5월의 광주를 알고 있다는, 그 무등산. 그곳에 오르기로 하고 관광안내소에 들러 폭설에도 개방된 등산로가 있는지 확인했다. 단 한 곳, 증심사 입구만 개방이 되어 있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바로 무등산으로 향했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증심사 입구에 내리니 등산객들로 꽤나 붐볐다. 그들 행렬을 따라 나도 무등산에 난생 처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어서 문빈정사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하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폭설에 아이젠도 없이 산에 오르려니 긴장이 되었지만 무등산의 등산로는 말 그대로 순했다. 큰 어려움이 없었던 기억이다. 서석대까지 올랐다. 서석대와 하얀 눈이 이루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개방된 등산로가 하나뿐이었기에 올랐던 길로 되돌아 내려왔다. 그런데, 그런데 두 번이나 스친 길가에서 의재미술관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 기억으론 그렇다. 광주에 가야했다. 의재뿐만이 아니더라도, 광주에 가야 할 이유는 많지만, 오로지 의재만으로도 광주에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