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이숲생활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이숲생활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6/10/07

Waltz for Debby


2016년 6월 14일 저녁
분만실에서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들었던 음악은 빌 에반스 트리오의 <Waltz for Debby>였다.
그리고 오늘, 씨디를 샀는데, 나중에 아이가 크면, 그래서 혼자서도 음악을 즐기며 들을 나이가 되면, 선물해 주고 싶다.

그날 지속된 이 그룹의 상상력의 열매는 이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게끔 만들었으며, 감상자의 정신적, 정서적 지구력을 계속 환기시켜 주었다. 각각의 작품들은 마술 세계의 결정체를 확보하고 있었다. 1970년대 에반스 트리오에서 잠깐 드럼을 연주했던 빌 굿윈이 말했듯이. "빌, 스콧 그리고 폴 모티안이 함께 하면 그들은 무얼 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는 듯했으며, 즉석에서 만들어진 사운드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즉각적인 신뢰감이었다." 이 유산은 빌 에반스 최고의 시절로 불리고 있으며,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풍성한 녹음 속으로 빠져들 때 우리는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정점과 에반스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성과에 대한 하나의 매개체를 목격하게 된다. 느낌의 깊이, 그룹 내부의 친밀감, 그리고 부드러운 촉감의 미적인 개념에 있어서 이 녹음들은 견줄 수 없는 영원함을 지닐 것이다. 
열흘 뒤 늦은 밤, 스콧 라파로는 뉴욕 주 북부에 위치해 있는 그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 제네바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20번 국도에서 동쪽으로 향한 한 시골길에서 그는 나무와 충돌했고,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반스와 모티안은 모두 그 소식에 넋을 잃었다. 이는 라파로라는 한 개인의 상실일 뿐만 아니라 베이스 주자를 분신으로 여겼던 에반스의 이상적인 삼두체제의 종말이었다. 그 충격으로 에반스 그룹의 창의성이 일으켰던 불꽃은 무참히 꺼졌으며, 이 베이스 주자의 죽음은 에반스 자신 속에서도 그 무언가를 살해했다.
"사람들이 재즈를 지적인 이론으로 분석하려고 할 때 난 당혹스럽다. 그건 아니다. 재즈는 느낌이다."
"원칙과 자유는 섬세하고 창조적으로 섞여야 하며 정말로 훌륭한 결과를 낳아야 한다. 난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감상주의에 빠지면 낭만성은 방해받게 된다. 반면에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낭만성은 가장 아름다운 미적 대상이다. 이러한 조화가 이 특별한 트리오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난 생각한다."

피터 페팅거,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p.201-202, p.204, 황덕호 옮김, 을유문화사   
 
못 말리는 습성대로, 빌 에반스를 '읽는다.'

2016/09/27

ㄷ벤치

꼬박 반 년을 다닌 오밀목공방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건 연귀짜임을 이용한 벤치였다.
만든 과정은 이랬다.
우선 만들고 싶은 형태와 개략적인 크기를 떠올리고, 스케치업으로 정확한 사이즈를 잡아 디자인을 완성한다. 그런 다음 필요한 목재의 사이즈를 확인할 수 있게 집성을 하게 될 개별 목재들을 별도 분리시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페이지에 담아 인쇄를 한다.
이런 식이다.

스케치업으로 완성한 도면

1주차
그걸 들고 공방에 가니, 선생님께서 도면을 보더니 기다란 제재목 세 개와 다소 짧은 제재목 하나를 내준다. 그리곤 말한다. 어떻게 재단할지 생각해 보세요.
그래 한참을 제재목을 보며 머릴 굴린다. 이건 이렇게 잘라 상판으로 하고, 저건 저렇게 잘라 다리로 한 다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다 목재를 해체시키면 연귀짜임 벤치의 멋인 결을 살릴 수가 없다.
그 얘길 선생님께 했더니 '그 말'을 기다렸다며,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하기엔 목재 다루기가 쉽지 않겠지만 결을 살리겠다면 한 번 해 보라고 했다. 하긴 기껏해야 500 정도 길이의 목재만 대패로 다루다가 이번엔 한 번에 2000이 넘는 목재를 기계로 다뤄야 하니, 만만하진 않겠지. 하지만 작업의 방향이 서니 이번엔 전체적인 윤곽이 먼저 머릿속으로 달려들었다.
먼저 결을 살리며 원하는 너비를 얻기 위해 제재목 세 개는 그대로 집성해야 하고, 추가로 주어진 하나의 목재는 상판의 하중을 지지하기 위한 보로 쓴다. 그리고 기왕 결을 살리기로 한 거, 완성 되었을 때 보다 나은 무늬를 얻기 위해 작업대 위에 제재목 세 개를 올려놓고 요리조리 위치를 바꿔가며 고민을 이어간다. 이 과정이, 어떻게 집성을 할지, 각각의 제재목이 놓이는 위치를 얻기 위한 선택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최선의 답은 각자의 취향이기에, 온전히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결정을 하고! 설계한 두께로 만들기 위해 먼저 수압대패로 한쪽 면을 잡는다. 작업은 일단 단순해서, 제재목 세 개의 작업은 동일하다. 하지만 2미터가 넘는 목재를 수압대패로 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목재가 휘어있어, 약간의 요령이 없으면 굉장히 더딘 작업이 될 수도 있다.

2주차 
이번엔 자동대패로 반대쪽 면을 잡을 차례. 역시 목재의 길이가 작업에 장애요소였다. 수치를 잡아가며, 세 개의 제재목을 번갈아 자동대패에 밀어넣으면, 반대편에서 선생님이 목재를 잡아두는 식이다. 이 작업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두께가 잡힌 제재목 세 개를 집성하기 위해 수압대패로 집성될 면도 같이 잡게 되는데, 막상 대패 작업을 하고 작업대에 제재목을 놓고 집성할 면을 맞대 보니, 아뿔싸 틈이 생긴다. 그래 다시 수압대패로 면을 잡는데, 해도 해도 잡히지 않는다.

3주차
어떻게든 오늘은 면을 잡고 집성을 합시다, 라고 선생님은 작업 시작 전에 내게 말했지만, 여전히 면은 잡히지 않고, 틈이 벌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한다. 여러 갈래로 원인을 추측하고 방식을 바꿔 면을 잡아보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 결국 보다 못한 선생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대패 작업을 조금 하더니, 이 정도면 되겠다 한다. 그래 드디어 집성.
비스킷 끼울 위치를 표시하고, 홈을 만든다음 본드를 바르고 집성. 클램프로 잡아둔 다음, 남은 제재목 하나로 보 작업을 하려는 내게 선생님은 보 작업은 급하지 않으니 장부를 딸 지그를 만들라 하신다. 그러니까 보가 다리와 만날 지점에 암장부를 만들기 위한 틀을 짜두잔 얘기다. 작업은 어렵지 않다. 장부 작업을 하게 될 트리머가 다닐 길을 만드는 게 목적인데, 합판을 직각을 유지한 채 트리머 날 두께를 고려한 암장부의 크기로 틀을 만들면 된다. 날 두께는 한쪽이 2밀리이니, 직사각형의 암장부 크기가 지그에서는 가로 세로 4밀리씩 크게 된다.

4주차 
지난 주에 집성해둔 목재는 클램프를 제거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집성된 목재 간 단차가 제법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비스킷을 똑같은 깊이에 심었으니 단차는 없어야 하는데, 대패 작업의 오류의 결과인지, 유독 단차가 심한 부분이 있었다. 이걸 잡아야 했다. 노출되는 면은 마지막에 하면 되니, 결과물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될 안쪽 면의 단차를 대팻날과 샌딩기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잡아나갔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더디기도 하고, 공을 들인 만큼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작업이기도 했다. 여전히 집성된 목재는 2미터가 넘었고, 어라, 너비는 집성하기 전 반복된 수압대패 작업 때문인지 양 끝단의 길이가 달랐다.
단차를 얼추 잡고는, 슬라이딩 테이블쏘의 톱날을 45도로 기울인 다음 목재를 삼등분했다.

5주차 
과정 하나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이제는 좀 더 디테일한 작업으로 들어간다. 우선 이미 만들어둔 지그를 이용해 양쪽 다리가 될 부분에 위치를 잡고 트리머로 암장부를 따냈다. 암장부 위치에 오차가 있으면 상판의 하중을 지지해야 할 보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될 수도 있기에, 위치를 거듭 확인한 뒤 작업 완료. 그러고는 수압, 자동대패로 보의 두께를 잡고, 숫장부 길이를 고려해 테이블쏘로 재단한 뒤 테이블쏘의 톱날 높이를 조정한 다음 숫장부를 땄다. 따는 중간 중간 암장부와 맞춰보며 오차를 줄이는 과정이 수반되었다.

6주차 
지그 크기에 약간의 오차가 있어 장부의 수치를 수정해야 했다. 숫장부의 길이도 잡고, 두께도 조금 더 다듬은 다음 암장부와 잘 맞는지 체크했다. 그러고 나서 전체적으로 잘 맞는지 보기 위해 비스킷으로 연결 부위 작업을 한 후 가집성을 했다. 대체로 잘 맞았다.
트리머 작업이 하나 더 남았다. 다리 하단부. 처음에 설계를 할 땐 생각하지 못했다가 공방에 있는 벤치를 보고 설계에 반영한 건데, 소위 꽉막힌 ㄷ벤치의 답답함을 줄일 수 있는 요소였다. 다리 폭 양쪽 90밀리 안쪽으로, 15밀리 정도의 깊이로 다리 하단부를 따내기 위해 간단한 지그를 만든 다음 라우터로 따냈다. 그런데 라우터는 트리머보다 두꺼운 날 두께가 말해주듯, 밀 때 드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거의 몸으로 밀 듯 해야 했는데, 그래도 나가는 속도가 더뎌 잘린 면이 검게 타버렸다. 잘 보이지 않는 면이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7주차 
이제 작업이 막바지다. 최종 집성을 하기 전, 보를 비롯해 집성을 하면 작업이 어려울 안쪽 면을 샌딩기로 거듭 마감을 했다. 처음엔 120방으로, 그 다음엔 320방으로. 약간 신경 쓰이는 단차는 대팻날로 조금 더 잡으려 했으나 작업이 막바지라는 점, 어차피 안쪽 면이라는 점이 완성도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했다.
드디어 집성이다. 긴장 또 긴장. 장부 작업을 할 때 마무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보의 숫장부 양쪽 길이에 조금 차이가 생겼는데, 그래서 장부의 위치가 바뀌면 곤란했다. 그래 표시를 한다고 보에는 분필로, 암장부 쪽에는 샤프로 번호를 매겨놨는데, 이런, 막상 하얀색 목공 본드를 바르니 보에 있는 분필 표시가 확인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몹시 당황했고, 집성을 도운 선생님은 손으로 본드 자국을 밀어내 보았지만 그래도 표시가 보이지 않자 맞춰 보자며 보를 암장부 양쪽 직접 끼워보며 결국 위치를 찾아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미 본드가 마르고 있었다. 서둘러 집성을 해야 했다. 먼저 다리와 보의 장부를 잡고, 완전히 결합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상판을 맞췄다. 모든 결합부가 맞는 것을 확인한 뒤 미리 준비해둔 클램프로 가로, 세로, 높이를 잡아가며 조이기 시작했다. 연귀는 클램프 작업이 중요하다고, 선생님께서 누누이 강조하던 그 작업이었다. 긴장도 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가 우왕좌왕 하는 사이, 선생님은 신속하게 위치를 잡아가며 내게 보조 작업을 지시했다. 선생님이 클램프의 한쪽을 잡으면 내가 반대편을 맞춰 잡는 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연귀 부분을 다 잡고 보니, 보가 상판과 2~3밀리 정도는 떠 있었다. 클램프 하나가 추가로 동원되었다. 상판 가운데를 가로질러, 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집성 작업이 끝났다. 아니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집성 부위 바깥으로 밀려난 본드를 제거하는 일. 이걸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에 마감 작업을 할 때 그 부위는 오일이 먹히질 않아 표가 난다.

8주차 
두 달에 걸친 작업의 마지막 날. 공방에 도착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사실 지난 주 집성을 했을 때 내심 연귀 짜임 부분의 틈이 생긴 게 제법 신경이 쓰였었는데, 웬걸 클램프가 제거된 나의 벤치는 생각보다(?) 아니 꽤나 잘 집성이 되어 있었다. 연귀 부분도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고, 마지막에 추가로 댄 클램프 덕분에 보도 상판에 잘 붙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마감 작업을 위해 먼저 대팻날을 꺼내들어야 했다. 노출되고 직접적으로 신체와 닿는 상판의 남은 단차를 없어야 했기 때문에. 그래 대팻날로 단차 부위를 긁어내며 거듭 손으로 단차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오랜 작업 시간 동안 목재가 변형된 부분도 감안해야 했다. 600짜리 철자를 상판에 얹어보니, 예상은 했지만 상판은 이미 완전한 평면이 아니었다. 하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는 물론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좀 더 대패 작업을 한 뒤, 샌딩기로 120방, 320방 사포를 연이어 사용하며 마감 작업을 했다.
콤프레셔로 찌꺼기를 제거한 뒤 두 번의 오일 작업. 드디어 끝났다.

오일이 마르기 전 차에 실어 집에 가져오자마자 마른 헝겁으로 표면에 남은 거친 오일 자국을 닦아냈다. 그리고 벤치가 사용될 2층 서재로 옮겨 남은 오일을 말렸다.

서재에 놓인 ㄷ벤치

결이 무너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

안쪽은 새까맣게 타버린 하단부

고르고 고른 결의 배치

상판 밑엔 보가 있다


2016/09/21

열병을 털어내고 찾아온, 
온이의 백일 



오랜만에 생두를 샀다. 그리고 로스팅. 예가체프 110그램 정도.
반 노동에 가까운 직화 로스팅엔 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생두마다 팝핑의 정도나 시기가 어쩜 그렇게 다른지.
그리고 이론상으로 불리는 1차 팝핑이니, 2차 팝핑은 실제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팔을 휘젓다 보면 감각이 무뎌지고 얼른 커피가 볶였으면 하는 마음에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 조금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1차 팝핑이 따가울 정도로 쏘는 소리가 드문드문 간헐적으로 난다면,
2차 팝핑은 이제는 뜨거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정신없이 발사되듯 터지는 소리가 난다.

바야흐로 따뜻한 커피의 계절이 돌아왔다.

2016/07/12

길 떠나는 이에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 그 무한한 긴장, 기대와 걱정. 배낭의 무게는 거기에서 결정된다. 나는 無用의 결혼식에 부친 詩에 이렇게 썼다. 


   벗이여, 
   이제 우리 긴 여행을 떠나자
   겨우내 얼었던 땅과 나무
   대지를 풍요롭게 하네
   살아있음을 실감케 하는 
   햇살, 바람의 손짓 따라
   떠나자, 여행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따르는 믿음과 사랑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마음과 손과
   발이 대신하리
   우리는 기꺼이 연대하리
   짐을 꾸리자, 벗이여
   우리 앞에 놓여진 그윽한 길
   발을 내딛는 순간, 삶은
   여행이 되리  


그렇다. 얼마든지 삶은 여행에 비유될 수 있다. 같은 장소를 가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여행이듯 삶도 얼마든지 그렇다.
어제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K였던 J가 오후 느즈막이 집에 들렀다. 집에서 가장 시원한, 식탁에 자릴 잡고 앉아 냉장고에 든 맥주를 모두 비우며, 앞으로의 시간과 누군가의 경험에 대해 논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지?)
주제넘게도, 내가 한두 마디 거들 수 있었던 건 고작 서너 해 더 먹은 세월의 겹일 뿐인데도, 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말은 거만하다.
집과 아이와, 어떤 느슨한 결속에 대해. 그리고 '때時'에 대해.
조금은,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방향으로 삶의 머리를 틀고 싶다는 누워있는 생각.
맥주를 다 비우고 동네 산책을 하고, 오후에 내려둔 커피를 나눠 마시고, J는 떠났다.

2016/06/29

이숲생활

이하hija는 에스파뇰로 딸이란 뜻이다.

우리가 결혼을 앞두고 여행을 남미로 가면 어떨까 하고, 무작정 합정동에 있는 '가장자리'에서 에스파뇰을 배울 때였다. 한 권의 책을 같이 보며, 게으르게 수업에 참여했었는데, 어느날 수업시간에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이하hija와 이호hijo였다. 딸과 아들. 그때 이하의 태명은 정해졌다. (나중에 이하가 알면 서운해 하겠지만, 사실 성별을 알기 전까지는 이호라 칭했었다.)
출산에 너무 임박하지 않게 이사를 하기 위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고 3월에 이사하기까지, 처음엔 나름 고향 다음으로 오래 살았던 서울을 떠나는 게 어쩐지 서운했었는데 막상 이삿날이 되자 어서 빨리 지긋지긋한 이삿짐 정리를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사를 하게 된 동네는, 거의 의도적이었지만 처형네 집과 아주 가깝고, 기적적으로 자연 공원이 가까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맛이 있었다. 그리고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새로 이사하게 될 집에 이름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숲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와 이하를 낳고 자라는 모습을 보게 될 터이니 '이'를 붙이고 싶었고, 숲이 가까우니 이숲. 간단하고 부르기 쉽고 무엇보다 어감이 맘에 들었다. 비록 빌려 사용하는 집이지만, 우리만의 이름을 짓고 칭하며 사니 금세 친구처럼 친숙해진다.

그리고 이사를 온 지 석 달 후에 이하가 태어났다. 이제 날이 밝으면 조리원에서 퇴실하고, 본격적인 이숲생활이 시작된다. 이하와 함께.

2016/06/25



이하는 잘 먹고 잘 싼다.

대참사의 날.


이숲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개인생활로 시작한 게 목공.
소박하고 작은 재주 정도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다행히 아직은 재미가 있다.
시작하고 처음 만든 스툴.
스툴이라 부르지 못하는,


뭐든, 해 보고 나면 달라보이는 것.
목공을 시작하고 지금껏 손쉽게 지나치고,
그저 취향대로만 가구를 분류하곤 했던 내가
이제는 사소한 디자인 하나 하나가 새롭게 보인다.
김광석이 그랬던가, 딸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거리에 사람들이
쉽게 보이지 않더라고.



이 작은 발로,
어디 가려니 이하야.

2016/06/17

조리원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갑갑하지만,
신생아실이 소독하는 시간 - 18:30~20:30 - 에
우리 방에 와 있는 이하를 돌보는 동안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선잠이 들었다 짜증 섞인 투로 울며 깨며를 반복하다
신생아실로 돌아갔다.

2016년 6월 14일 저녁 8시 48분
이하hija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