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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2

팔달문 성곽잇기

 <기사 모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대충 짐작은 가지만 개인적으로는 팔달문 성곽잇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종로사거리를 삼거리로 만들고 그 안에 살던 사람들, 기관들을 다 내보내고 텅 빈 광장을 만드는 것보다 명분이야 있겠지만, 그간 팔달문 주변에 허물어진 성곽 자리에서 쌓아온 사람들의 시간도, 도시의 기억도 소중하기 때문에. 복원 앞에 붙은 '완전한'이란 수사보다도. 
차에게는 충분히 양보하는 원형이 뭐가 그리 중요해서. 

화성을 복원하고 옛 모습을 찾아 그때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읍치가 통째 옮겨온 자리에 오래 살고 장사해온 사람들을 무조건 몰아내도 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에는 현대의 삶이 있고, 어떤 식으로 조화롭게 관계를 맺을 거냐는 진지한 고민을 해보았을까? 
수원화성이 매우 아름다운 축조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수원에는 부러 찾아가고 싶은 현대 건축물이 없다. 더군다나 성 안이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염태영 전 시장이 한옥전시관 뒷편 문화시설 부지에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됐던, 패터 춤토르의 프로젝트가 더더욱 아쉽다. 


<고은문학관 기사 모음>

 

<신풍초 철거 기사모음>

2017/03/01

수원화성의 탄생

정조는 1789년 사도세자의 묘소를 지금의 수원시 융릉으로 옮기고 명칭도 현륭원으로 바꿀 것을 명했다. 사도세자 명예회복 사업의 마지막 단계였다. 원래 이 자리는 화성읍치소가 있었던 궁벽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조선 최고의 명당'이라는 명분으로 세자릉원의 이장지로 선택됐고, 근처에는 용주사를 새로 지어 능원의 원찰로 삼았다. 아울러 수원읍의 치소와 주민들을 새 장소로 이전시켜야 했다. 신도시 건설의 명분을 찾은 것이다. 신도시의 입지로 결정된 곳이 바로 지금의 수원화성역, 팔달산 아래였다.
구 수원읍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갓진 곳이라면, 신 수원읍을 동북남 3면이 툭 터진 곳으로 서울과 삼남을 잇는 길목에 위치했다. 교통이 편하면 사람이 꾀고, 사람이 많으면 상업이 발달한다. 애초부터 새 수원을 상업이 발달한 자족적 도시로 성장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한 입지 선택이었다. 18세기는 사회 각 분야의 생산력이 확대되고, 그 잉여 생산물들이 유통될 수 있는 상업이 발달하던 시기였다. 사회변화를 수용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도시를 버리고 개방적인 새로운 도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김봉렬,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1> 340-342쪽, 돌베개,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