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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7

밤, 그리고 인터뷰

현재 작가님의 생각은 우리가 노력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쪽인가요, 아니면 노력하더라도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노력하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쪽인가요? 

후자에 가깝죠. 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요.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된다"고 썼더니 사랑하면 희생하고 인내하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말하는 노력은 'try'에 가깝거든요. 가망이 없는데 한 번 더 물어나보는 행위죠.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결과로 얻게 되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김혜리 인터뷰집 '진심의 탐닉' 김연수 편에서)


영화 이야기를 주로 하는 김혜리 기자를 좋아한다. 예전 라디오에서 영화 인물 얘기하는 걸 특히 좋아했는데 일종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게 무척 따뜻했다. 그건 시선일 수도, 마음일 수도, 진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거듭 느끼지만 김혜리 기자의 진가는 인터뷰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의 모든 글이 좋지만 특히) 인터뷰를 읽거나 들을 때면 그가 얼마나 인터뷰 준비를 성실히하는지, 인터뷰이의 답보다 먼저 그의 질문의 섬세함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좋은 질문은 인터뷰의 질을 갑절 이상으로 높인다. 

십 년도 넘은 언젠가, 홍대 근처의 (기억이 맞다면) 스페인 음식점에서 J, Y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해'와 '인정'에 대해 길게 대화가 오갔던 기억이 났다. 막 트위터에 물어(?)보기도 하고. 

이해, 라고 한다면 '그때'와 생각이 비슷하지만 김혜리의 질문처럼 '불가능'하지만 노력을 해보기도 하고, '인정'할 부분은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런데 방금 지하 카펫에 엎드려 김연수의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자에 없다고 생각했던 대학원에 입학해 한 달간 밀도 높은 스트레스를 꾸준히 이어오다가 며칠 전에 아무리 공부가 급해도 한 달에 책 한 권은 무조건 읽자, 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이 드니 이제는 지하에 있으면 자꾸 서가를 기웃거리며 책을 뒤적인다. 어제는 책등 아래로 가름끈이 삐져나온 책(자기 앞의 생)을 집어들고 뒤편에 실린 조경란 소설가의 글을 읽었다(작가들의 추억을 더듬는 글엔 어김없이 헌책방이 등장한다). 

일 월을 보내며 한 번쯤 울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는데 어제 '자기 앞의 생'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고, 오늘 베트남에서 별세한 이해찬 전 총리의 뉴스 영상을 보면서도 약간 울컥했고, 저 인터뷰를 읽기 전까지 2층에서 읽고 있던 칼 세이건의 딸 샤사 세이건의 책을 보면서도 눈물이 맺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2024/08/24

나는 왜 내 삶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보려고 하는 걸까. 

숙고 끝에 하는 결정을 이제는 잘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다. 

"왜 안 해요?"

이 질문에 답을 못해서 한다는 게 글로써 우스워 보이지만, 사실이다.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렇다면 내 안에, 그 무엇인가, 지금쯤의 삶에서, 어떤 갈증이 있었던 것일까. 

언론인 손석희가 진행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는 주말 아침, 손석희의 미국 경험담을 듣다가 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더 정확히는 "새로운 걸 추구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고 하는 손석희의 말 때문에.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닥친 게 아닐까 싶은 공감에. 

2023/10/15

며칠 단상

10/6 금
  • 학교에서 두 번째 캠핑. 하지만 하루로 바뀐. 부족한 숯을 고구마용 장작으로 보태가며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 학교를 나오며 창룡문에서 개막한 미디어아트를 지나가며 구경하려고 방향을 틀었다가 차를 세워놓고 놀다가 집으로 갔다. 

10/7 토
  • 학교 캠핑이 당일로 바뀌면서 비게 된 하루. 오후에 대나무 파빌리온 프로그램 지원 요청을 받고 오후 내내 장안공원에 머무르다. 

10/8 일
  • 실패한 용접을 다시 하고, 지하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 
  • 골목 아주머니의 제안으로 옆 공터 쓰레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화분 몇 개를 모퉁이에 배치했다. 두고볼 일. 
  • 북지터에 하림밴드가 온다고 해서 저녁 먹고 부리나케 나갔는데, 두 곡밖에 못 들었다. 성곽 중턱에 온이랑 둘이 앉아 보는 공연은 짧았지만 좋았지. 우리집 머리도 보이고. 

10/9 월
  • 처음 참여한 어린이집 체육대회. 잠시 내린 비 때문에 한 시간 늦게 시작했지만, 원활한 진행으로 밀도 있게, 즐겁게 놀았다. 상품이 어른들 위주라 애들이 실망을 했지만. 
  • 집으로 가는 길에 정비가 끝난(시장+주차장) 화서시장에 들러 손님용 고기와 과일을 사고 분식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다. 
  • 능행차 교통통제로 집 가는 데 한참 걸리다. 
  • 오후 3시30분쯤 집을 나서 능행차를 보러 갔으나, 한 시간이나 지나야 메인 행렬이 장안문을 지나온다고 해서 성곽에서 놀다가 농협과 한옥기술전시관 근처에서 구경을 하다. 시시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품어야 할까. 늘 생각한다. 
  • 여섯 시 넘어, 예정된 손님들 도착. 다음 주면 사라질 동네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장안공원 파빌리온에 같이 가다. 
  • 지하에서 화로에 불을 붙이고 날리는 잿속에 담소를 나누다 불이 잦아들고서야 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셨다. 한 병, 두 병, 세 병. 입가심 맥주까지. 실내로 자릴 옮겨가며. 
  • 긍정적이고 맑은 기운을 가진 젊은이들과의 시간이 즐겁다. 

2020/06/03

더위에 장사 없다. 물론 이 말을 하기에 아직 한여름 더위는 아니지만 더위는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그리고 둘째 담이 머릴 단발로 했으면 좋겠단 내 바람은 더위 앞에 자취를 감췄다. 이발하러 가자고, 손으로 가위질 시늉을 하며 담이한테 얘기할 때만 해도 담이는, 싫다는 '의미'의 의성어를 냈다. 하지만 막상 미용실에 데려가 뽀로로가 나오는 화면 앞에 앉으니 그렇게 순한 양이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담이 직전 아이가 얼마나 울부짖었던가. 오랜만에 간 마트에서 에스컬레이터 타기에 자신감이 충만해서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담이는 아주 짧게 커트를 했고 그것은 보는 사람마저 시원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곧장 중얼거렸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며 애플뮤직을 열어 '입영열차 안에서'를 재생했고 스테이션을 생성해놓았더니 그 시절 노래들이 줄줄 이어졌다. '내 마음 속의 너', '비처럼 음악처럼', '달의 몰락'... 줄곧 입이 바쁘게 흥얼거리며 저녁 준비를 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온이가 밤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안 될 거 없지. 작년 이 맘 때 우린 매일 저녁 산책을 했으니까.
밖으로 나오니 아이 둘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집 앞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동네 이웃을 만났고 자연스레 산책을 같이 하며 그 분의 작업실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분이 내준 민트티를 마시며 나는, 아 나는 그만 저 아늑한 곳으로 빠져버렸다.

어떤 여행에서였다. 다들 마시는, 얼핏 보기에도 향긋해 보이는 초록 잎이 글라스 바닥에 깔린 그 뜨거운 차. 민트티였다. 거의 매일, 수시로, 여행하는 내내 마셨던 그 차. 그 향기. 그것이었다.
그런데 헷갈렸다. 모로코였나, 이스탄불이었나. 아이들이 과자를 얻어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중에도 내 손은 글라스를 잡고 있었고 머리는 떠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어디였나, 어디였지, 대체.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 여행의 궤적을 좇고 있었고 하나 하나 떠올려보려 했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기억이 아닌 기록에 의존해야 했다. 2010년과 2013년 사이가 문제였다.

2005년 인도&네팔, 미국
2006년 인도
2007년 쿠바
2009년 프라하
2010년 라오스
2011년 모로코
2012년 카슈가르, 홋카이도
2013년 베를린&암스테르담
2014년 히말라야
2015년 웨노섬
2016년 오키나와
2017년 이탈리아&파리, 더블린&로테르담

모로코였다.

페스에서의 산책을 또 다시 포기하고 카페 노리아에서 민트티를 마시고 다시 천천히 숙소로 돌아왔다. 환전은 여전히 못 하고 있었고 남은 50디람으로 저녁과 혹시 있을지 모를 배고픔에 대비해야 했다. 다행히 정원에서 숙소로 오는 길에 길게 시장이 늘어서 있었고 눈에 띄는 대로 바나나와 복숭아, 빵과 숙소 앞 가게에서 물과 비스킷을 샀다. 푸짐했다, 나름. (2011년 8월 29일 새벽의 기록) 

페스, 모로코, 2011

하지만 프루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내 추억 여행은 추억의 깊이를 탐구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그 추억을 줄줄이 소환해내는 것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의 열망으로 피어올랐다. 여행을 마치 의무처럼 대했던 시절도 있었고 그것 없이는 어떤 의미가 결여된 것처럼 여기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마도 아이가 생긴 이후겠지만, 그 감각이 현실과 상호작용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와버렸다. 

여행을 언제 했더라. 

여행을 하고 싶다. 아무 의심 없이 떠나는 것과 낯선 어느 곳에 덩그러니 놓여진 그 느낌이 문득 그립다. 

2019/09/09

6월에, 매일 저녁이면 우리 가족을 산책길로 안내하던 그 좋았던 날씨가 긴 더위를 끝내고 다시 돌아오나 싶었더니 습하고 수시로 비가 떨어지는 날씨가 반복된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틈 나는 대로 산책을 하고 있고 동네 골목의 변화를 살핀다.

어제 저녁에는 동네 요가하우스 선생님께서 집에 오셔서 동네에 관한 얘기를 하시며 설문을 요청해서 그것에 응하며 한 시간 가량 대화를 했다. 이사온 지 6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설문지에 이웃에 관한 사항에 빈약한 답을 하며 같은 식탁에 마주하고 있는 이웃이 반갑게 여겨진 건 아내도 마찬가지였으리.
아파트는 이웃과의 관계적 측면에서 삭막하고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단정에 동의하지 않지만, 단독주택, 더 나아가 동네에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여유가 깃든 삶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겠지만, 그럴 여유가 있는 이들이 삶의 질에 대해, 더 나아가 동네에 대해 고민하고 관여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는 나를 기쁘게 하는 요소도 많고 나를 화나게 하는 요소도 그에 못지 않게 많다. 그런데 그런 요소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건 우선 그 자체로 즐겁고 반가운 일이다. 주차 문제, 쓰레기 문제, 보행 문제 등 어느 하나 우리 삶과 따로 떼놓고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많은 화두를 던졌지만 마음과 달리 정작 내 생활은 동네 일에 한 발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으니 사실은 좀 부끄럽다.
어떤 통로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지하 공간을 보여드리며 공간의 활용에 대해서도 가벼운 제안을 했는데 앞으로 동네 일에 어떤 식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둘째 담이 얼굴이 일주일째 말이 아니다. 소아과에서 처방해준 약으로 해결이 더딘 것 같아 오늘 피부과에도 다녀왔는데 아이가 어려서인지, 아님 현 증상에 대한 뚜렷한 처방을 하기가 아직은 곤란한지, 현재로서는 뭐가 됐든 리도맥스라는 얘길 듣고 병원을 나서는 길은 우울했다. 괜한 우울은 시 환경요원들이 집 앞에 잔뜩 쌓아둔 쓰레기 더미를 보고 그들에게 화를 내게 만들고 비가 내려 잠시 집 주차장에서 회의를 하던 전기 공사 사람들에게 퉁명스러운 말을 던지게 한다. 더 우울하다.

습관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우울한 생각이 들 때 영화 shortbus에 나오는 인물들의 우울한 표정을 무심코 보기도 하는데 오늘은 shortbus soundtrack을 들으며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9/09/05

비와 관찰

가을 장마라니.
비를 싫어하진 않지만, 비든 뭐든 다 때가 있는 거니까. 기분상 비를 좋아하는 건 감성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작물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비의 소중함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마냥 감성적으로만 비를 대하진 않는다.
태양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절기는 우리네 풍습과도 깊은 관련이 있지만 농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비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에 살 때는 비가 내려도 무심했다. 그게 사실이다. 때로 삽자루를 챙겨 논으로 나서거나 우사의 지붕을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직접 비와 맞서야 하는 것과 간접적으로 그것을 떠올리는 건 아무래도 차이가 크다.

비가 많이 내린다. 오전에는 하늘이 어찌나 쾌청한지, 비가 올 거라는 예보는 공기의 습도로 충분히 감지가 됐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무심히 집안으로 들어오기 미안할 정도의 날씨였다. 한 시간 남짓. 점심 시간이 지난 지금, 둘째 아이가 두 시간째 곤히 잠들어 있는 지금, 응접실의 라디오를 켜고 커피를 내려 오자마자 규칙적인 소음을 만난다.

똑, 똑, 똑.

아뿔사, 현관이 잔뜩 젖어 있고 도어클로저 쪽에서 물방울이 생기는 족족 현관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밖은 벼락 같은 비, 그리고 집안엔 누수.
누수가 처음은 아니지만 집에 비가 샌다는 게 기분 좋을 리 없다. 1층 사무실 분들과 한참을 관찰하다 집안에 들어왔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아 2층 발코니의 배수를 살피고 밖으로 나가 집 주위를 체크한다. 2층 발코니를 비롯해 가장 많은 물이 빠질 배수구가 한치의 틈도 없이 꽉 찬 채 물을 토해내고 있다.
노출된 외부 천장의 물은 늘 아슬아슬하다. 보수한 현관 하부의 물은 어느 정도 잡혔는지 낌새가 없지만 도로에 면한 쪽의 지하 외부 천장은 바닥에서 튄 물이라고는 의심스러울 정도의 물방울이 잔뜩 맺혀 있다.

물. 내려오고, 어딘가에 부딪치고 튀고 고이고 그 다음에는 어느 틈이든 더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 물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급한 대로 현관 도어클로저에는 마른 걸레를 대 물의 낙하를 지연시켰다. 임시방편.
담이가 잠든 동안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김금희의 소설이나 읽고자 했던 마음이 엉켜버렸다.
이런 오후의 마음이란.

2019/09/03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하여

강박관념 같은 것이었다. 뭐든 해야 한다고. 주 40시간을 일하고도 주말이 되면 밀린 책을 읽어야 한다고, 어딘가에 가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따위의 강박에 시달려왔다. 그랬다.
1년간 일을 쉬기로 하고서도 그랬다. 제빵을 배워야지. 카프카와 프루스트를 읽어야지. 지하에서 뭔가를 도모해야지. 뭐 이런 생각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40. 꼬박 한 달을 쉬고 든 생각은 10년 뒤에 한 번 더 일을 쉬어야지. 그리고 쉬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지.
그동안 어떤 강박이 나를 사로잡아 왔던 걸까. 그냥 쉰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은걸. 집이 어지러져 있어도 일단 그냥 둔다. 라디오 들으며 김정선의 에세이를 읽는 게 더 좋으니까. 그렇다고 꼭 해야 할 집안일을 방기하진 않는다. 끼니는 챙겨야 하니 식기세척기는 일찌감치 돌려놓았다.
쉬니까, 많은 생각들이 내려앉는 걸 느낀다. 뒤뜰에 잔디의 속살도 더 보이고, 선큰의 계수나무가 말라가는 것도 더 잘 보인다. 평생 이 집에서 함께 할 나무가 금방 자라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지금 이 곳에 집을 짓고자 했을 때 내가 우리 집에 바랐던 건 풍경이었다. 그냥 우리 집이 동네에 있는 하나의 풍경이고 싶었다. 우리가 심은 나무도 그렇게 우리 집과 어우러져 동네 풍경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집에서 나도 쉬면서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다.
그런데 사실, 집에 있는다고 해서 쉬는 게 쉬는 것만은 아니다. 휴직을 했다고 어린이집에서 쫓겨난 둘째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하고, 끼니와 간식을 챙겨줘야 한다. 서로 답답하니 틈나는 대로 동네를 산책하고 수국과 계수나무에 물을 줘야 한다. 뒤뜰에 매일 동네 개가 저지르고 간 똥을 치워야 하고, 비라도 내리면 집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치워야 할 건 없는지 살핀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_김훈, <연필로 쓰기> 74쪽, 문학동네, 2019

지난 금요일에는 양재동에 가서 오디오를 하나 장만했다. 좋은 소리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좀 더 나은 소리를 가진 오디오에 관심이 컸고 현재 내 수준에 맞는 오디오를 지금 집에 들이고 싶었다. 한 가지 실수가 있었다면, 청음할 때 지금의 오디오보다 열 배는 비싼 오디오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
새로 산 오디오는 시디 소리가 정말 좋은데 요즘 나는 거의 라디오를 듣는다. 아직 새 오디오의 라디오 수신이 썩 내키지는 않는데 좀 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지금 오디오 자리에 있던 라디오는 아내가 주말 밤에 후다닥 정리한 응접실로 옮겨졌는데, 그곳에 라디오를 엷게 틀어두면 외출했다가 들어올 때 기분이 색다르다. 주파수는 93.1. 클래식을 잘 몰라도 상관 없다.

2019/08/26

오후 세 시의 풍경

주말부터 이어진 두통 때문에 오전 내 느슨해져 있다가 점심을 챙겨 먹고 소파에 앉아 차가운 티를 마시며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는다. 오후 세 시가 되기 전까지의 오늘 하루 풍경. 어쨌든 이발을 해야겠어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20~30미터 정도 되는 곳에 미용실이 하나 있었다. 안을 슬몃 엿보고는 지나쳤다. 남성 한 명이 커트를 하고 있었고 동네 어르신 두 분이 소파에 앉아 계셨다. 시간이 걸릴 듯했다. 지나쳐 몇 걸음 가지 않아 생각을 바꿨다. 다녀봐야 헛걸음일 테고 아이들 데리러 갈 시간에 저촉이 되지 않는다면 손에 들고 있는 김정선의 <오후 네 시의 풍경>을 읽으며 기다리면 될 터였다. 돌아와 미용실을 문을 열고 "커트 많이 기다려야 해요?"라고 물으니 "금방 돼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행운미용실.
살면서 단골이라는 개념은 늘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하지만 머릴 다듬는 행위만큼은 단골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친 적이 없다. 늘 미용실 가는 걸 불편해 했고 귀찮아 했으며 그러다 보니 집에서 가까운 기준으로 사는 곳에 따라 다닌 미용실이 바뀌었다.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오기 전에 삼선교 근처에서 다니던 미용실과 용인에서 광교로 다니던 미용실은 그나마 단골스러움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남한테 내 머리 다듬는 걸 맡기는 건 늘 어색해 했으면서도 박하향이 가득한 샴푸로 머릴 감는 건 개운해서 좋아했다. 그래서 한 때는 에쿠니 가오리 소설의 주인공처럼 샴푸만 하러 갈 수 있는 단골 미용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미용실 소파에 앉아 할머니 두 분과 티비에서 나오는 근대를 무치는 요리 방송을 보며 할머니들의 요리 간섭에 귀 기울이다 보니 금세 내 차례였다. 오후 세 시. 간단하게 내 요구를 전달하고 미용실 아주머니 표정만큼이나 편한 기분으로 앉아 있는데 오한 때문에 입은 긴팔 탓인지, 그냥 더위 탓인지 땀이 나기 시작했다. 가위로 삭삭 머릴 다듬던 미용사 아주머니가 한쪽으로 가시더니 선풍기를 가져와 내 몸에 씌워진 보자기의 다리 부분을 휙 젖히더니 다리 방향으로 선풍기를 틀어주신다. 시원하다. 인도에서나 보았던 벽과 일체로 된 누렇게 바랜 에어컨은 필요 없었다. 처서도 지나지 않았나. 가벼운 웃음이 났다. 머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 와중에도 소파에 앉은 할머니 두 분 중 한 분은 요리 방송에 말을 보태셨다. 다리로 들어온 바람이 상체 쪽으로도 이어지는지 온몸이 시원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발이 끝났다. 미용사 아주머니는 머릴 다듬는 동안 두 번 질문을 했다. 앞머리 괜찮아요? 구레나룻 괜찮아요? 아무래도 좋았기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안경을 안 써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앞서 커트를 한 남성의 경우 이발이 끝나자마자 지폐로 요금을 지불하고 바로 나갔었는데, 내 이발이 끝나니 의문이 들었다. 아 이 곳은 샴푸 서비스는 없는 걸까? 집이 코앞이니 아무렴 어때 하는 마음으로 묻지는 않고 눈치를 잠깐 살폈다. 경우가 다를 수도 있는 거니까. 마침 미용사 아주머니께서 샴푸실 쪽으로 가는 것 같아 괜히 머릴 만지는 척하며 주뼛거리고 있는데 빗자루를 가져와 내 잘린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시작하시길래, 아 이곳은 샴푸 서비스가 없는 게 확실하구나 생각하며 요금을 지불하고 미용실을 빠져나왔다. 
기분 좋은 이발이었다. 

2018/12/15

더블하트의 추억


동네에 있는 작은 펍에서 그가 건넨 명함을 받고 거기에 그려진 두 개의 하트를 보고는 성인용품을 상징하는 줄 알았다. 뭐야 이 사람. 

그를 처음 만난 건 서울을 떠나 용인으로 이사를 오던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노란 파카를 입고 자신의 집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전화기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집의 이삿날은 같았다. 그의 집은 우리 집 바로 앞이었다. 
관심 없는 낯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바로 앞 집에 살아 안면이 있는 그를 동네 작은 펍에서 만나야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주차 문제로 내가 들이받았기 때문. 사연은 이렇다. 

이사를 한 동네는 신도시의 단독주택 밀집지였는데 여느 택지지구와는 달리 이곳의 단독주택지는 클러스터 개념을 도입해 대략 열 가구 정도가 둘러싼 클러스터 안에 가구당 한 면의 주차구역이 의무 배정이 되어 있다. 집도 모여 있고 주차장도 모여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집들이 보통 크고 두 가구가 사는 집도 많아 자동차가 적어도 두 대 많게는 세 대도 된다는 점. 듀플렉스에 주인 세대와 같이 사는 우리 같은 경우는 세입자임에도 우리가 클러스터에 배정된 주차 면을 쓰기로 했는데 주인 세대는 알아서 한다더니 두 대나 되는 자동차를 집 옆 도로변에 항시 불법 주차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아무튼. 
그런 주차 환경을 가진 동네였는데, 이사 온 첫날, 우리 클러스터는 10개의 주택지 중 4곳에만 주택이 지어졌고 그렇기 때문에 주차 클러스터 10면 중 아무데나 주차해도 되겠거니 하고 아무데나 주차를 했는데 글쎄 앞집에서 차를 빼달라는 게 아닌가. 주차면 2개을 가리키며 황당하게도 둘 다 자기네 주차면이라며. 그래 '세입자'인 우리로서는 이사 온 첫날이기도 하고 앞집 주인이 자기 거라는데 다른 할 말도 딱히 떠오르지 않아 일단 차를 우리 집 근방의 주차면으로 옮겼다. 속으론 투덜투덜하면서. 아마도 그와의 공식적인 첫 대면이 이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동네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거의 일관되게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클러스터 주차면에 (옆집과 사이 좋게 나란히) 주차를 한 반면 앞집 두 대의 자동차 중 한 대는 자기네 소유라는 두 면에 대각선으로 주차를 하고 다른 한 대는 우리 집 앞이자 그의 집 옆인 도로에 주차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구조가 가능한 건 열 개의 주택지가 모인 클러스터에서 구석에 자리 위치한 우리 집 대지가 완전히 앞집에 가리지 않고 일부가 앞집에서 삐져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자기네가 두 면을 이미 클러스터에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나란히 사이 좋게 두 대를 대면 될 것을 왜 하필 (본인 집 옆이기도 하지만) 남의 집 앞에 대느냔 말이다.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말이다. 
이런 날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는데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앞집을 디스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둥 왜 저러냐는 둥 앞집 사모님이 운전이 서툴다는 둥 따위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시골에서 부모님이 오시고 서울에서 누나네도 내려와서 소위 집들이 비슷한 행사를 했는데, 주말이면 동네 뒷 편에 있는 성당에 사람들이 몰려 동네 빈 공간이 자동차로 꽉 차곤 해서 누나네 차를 마침 비어 있던 우리 집 앞이자 앞집 옆에 주차했다. 그러고선 집에서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 하면서 있는데 매형한테 전화가 걸려와서는 차를 좀 빼달라는 게 아닌가. 
물론 앞집의 그였고 가뜩이나 그간 감정이 별로 안 좋았는데 엄밀히 도로에 주차된 차를 마치 자기 구역이라도 되는 듯 빼달라고 하니 완전히 화가 나서 순순히(?) 차를 빼러 나간 매형을 따라 나가 그의 면상을 보니 더 화가 솟구쳐 대뜸 고함을 쳤다. 
여기가 당신 땅이냐고. 
그럴리가 있나. 용인시에서 포장한 도로구역인데. 
그런데 일단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내가 다짜고짜 그렇게 쏘아붙이니 그도 화가 났는지 무슨 어린 놈이 어쩌구저쩌구 하길래 나도 내 나름대로 막말을 쏟아내니 그야말로 분위기가 개판이 되어서 가족들이 나와서 다 말리고 작은 난리가 났다. 같은 화를 지니고 있던 아내도 몇몇 말을 쏟았지만 일단 나의 거친 입과 행동이 우람한 체형의 매형에게 손쉽게 제압당하자 나는 거의 순식간에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된지 정확히 모르기도 하거니와 기억도 안 난다. 
그랬다. 나와 그의 인연은. 

다음 날, 듀플렉스라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주인한테 전화가 와서는 사과를 할 거냐 묻기에 내가 왜 하냐고 답하면서도 맥락과 잘잘못을 떠나 내 막말이 마음에 걸렸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며칠 뒤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만나서 풀자고. 동네 펍에서. 
그렇게 해서 만난 펍에서 그가 건넨 명함에 그려져 있던 두 개의 하트, 즉 더블하트. 첫째 출산을 앞둔 내가 그 하트를 알아보지 못하자 사뭇 당황한 듯한 그가 조금은 의아(한 건지 자존심이 상한 건지는 모르겠으나)한 표정으로 아기 용품 만드는 회사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게다가 그는 대표이사로 돼 있었다. 그렇구나.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그의 사연도 듣게 되었다. 사연인즉, 클러스터 주차면 두 개가 자기네 소유인 건 클러스터에 있는 또 하나의 주택지가 장모의 것이어서 그렇다는 것이고 아내가 운전이 서툴러 가뜩이나 어려운 주차를 두 면에 편하게 하고 자기 자동차는 집에 따로 만든 주차구역에 할 예정이었는데 뒷집(우리 집이다)에서 데크를 높게 설치하는 바람에 주차구역과 너무 붙어 있어 불가피하게 그 옆에(그러니까 우리 집 앞이자 그의 집 옆이자 도로) 주차를 하게 되었다는 것.
그렇구나.
그렇게 우린(?) 화해(?)를 했고 나름의 오해(?)를 풀었고 그는 그 이후에도 그 자리에 계속 주차를 했다(?). 
더블하트의 명성(?)은 그 이후 주변의 육아하는 사람들을 통해 거듭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 아내는 만삭이었고 곧 첫째를 출산했는데 모유가 풍부했고 또 아이가 유축한 모유를 안 먹으려고 해서 젖병을 쓸 일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자다 깬 둘째 아이에게 '실패가 없다는 국민' 더블하트 젖병으로 200미리를 먹이고 다시 재우고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그야말로 더블하트의 추억이다. 

2017/03/11

존 버거의 스케치북








빈 컬렉션에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돌아 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온그라운드갤러리에서 존 버거의 전시를 보았다. 고요하고, 은은한, 한 편의 산문 같은 전시. 4월 7일까지. 아마도 빈 컬렉션에 한 번 더 갈 듯한데, 전시를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전시 소개: 존 버거의 스케치북

2016/11/05

몸의 반응에 순응하며 사는 것, 서른 중반을 지나 그것을 실감하며 그럴 때마다 나의 의지 없음을 탓하는 통시에 다니엘 페낙의 훌륭한 소설 <몸의 일기>(조현실 옮김, 문학과지성사)를 생각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진솔하게, 내가 내 몸을 느끼듯 쓸 수 있다면. 쓰기의 진실이란 사실 거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온몸이 반응하는 그대로 써내려 가는 그것, 말이다.

몸이 역사다. 역사는 흘러온 것이 아니다. 문제제기 될 뿐이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침략에서 돌아올 때 사랑하는 조제핀에게 편지를 보낸다. "곧 도착할 테니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 냄새를 제칠 만큼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래 후각은 근대에 와서 가장 억압당한 감각이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목욕, 위생, 소독이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정희진의 어떤 메모, 한겨레신문

내일은 오랜만에 '광장'에 가야겠다.

2016/10/07

Waltz for Debby


2016년 6월 14일 저녁
분만실에서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들었던 음악은 빌 에반스 트리오의 <Waltz for Debby>였다.
그리고 오늘, 씨디를 샀는데, 나중에 아이가 크면, 그래서 혼자서도 음악을 즐기며 들을 나이가 되면, 선물해 주고 싶다.

그날 지속된 이 그룹의 상상력의 열매는 이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게끔 만들었으며, 감상자의 정신적, 정서적 지구력을 계속 환기시켜 주었다. 각각의 작품들은 마술 세계의 결정체를 확보하고 있었다. 1970년대 에반스 트리오에서 잠깐 드럼을 연주했던 빌 굿윈이 말했듯이. "빌, 스콧 그리고 폴 모티안이 함께 하면 그들은 무얼 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는 듯했으며, 즉석에서 만들어진 사운드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즉각적인 신뢰감이었다." 이 유산은 빌 에반스 최고의 시절로 불리고 있으며,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풍성한 녹음 속으로 빠져들 때 우리는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정점과 에반스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성과에 대한 하나의 매개체를 목격하게 된다. 느낌의 깊이, 그룹 내부의 친밀감, 그리고 부드러운 촉감의 미적인 개념에 있어서 이 녹음들은 견줄 수 없는 영원함을 지닐 것이다. 
열흘 뒤 늦은 밤, 스콧 라파로는 뉴욕 주 북부에 위치해 있는 그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 제네바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20번 국도에서 동쪽으로 향한 한 시골길에서 그는 나무와 충돌했고,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반스와 모티안은 모두 그 소식에 넋을 잃었다. 이는 라파로라는 한 개인의 상실일 뿐만 아니라 베이스 주자를 분신으로 여겼던 에반스의 이상적인 삼두체제의 종말이었다. 그 충격으로 에반스 그룹의 창의성이 일으켰던 불꽃은 무참히 꺼졌으며, 이 베이스 주자의 죽음은 에반스 자신 속에서도 그 무언가를 살해했다.
"사람들이 재즈를 지적인 이론으로 분석하려고 할 때 난 당혹스럽다. 그건 아니다. 재즈는 느낌이다."
"원칙과 자유는 섬세하고 창조적으로 섞여야 하며 정말로 훌륭한 결과를 낳아야 한다. 난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감상주의에 빠지면 낭만성은 방해받게 된다. 반면에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낭만성은 가장 아름다운 미적 대상이다. 이러한 조화가 이 특별한 트리오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난 생각한다."

피터 페팅거,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p.201-202, p.204, 황덕호 옮김, 을유문화사   
 
못 말리는 습성대로, 빌 에반스를 '읽는다.'

2016/09/03

언니네 이발관이 새 앨범 녹음에 들어갔다.
5집 '가장 보통의 존재'이후 얼마 만인지. 그 동안 이석원은 세 권의 책을 냈다.
이석원이 매번 마지막 앨범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신보를 접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새 앨범을 기다린다.



이날, 제주 중산간에서 울려 퍼지던 소리는 어찌나 맑고 선선했던지.  

2016/08/03

박경리 선생님을 생전에 처음 만나 뵀을 때 하신 말씀이 생생합니다. 대뜸 "환경이라는 말 참 안 좋아." 그러시는 겁니다. "환경이라는 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환경부가 어디 가서 뭐 재기나 하고, 인간은 쏙 빼놓고 바깥에 둘러싼 것만 가지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래서 환경이 아니라 생태라는 개념을 가지고 가야 해. 환경부가 아니라 생태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태학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그 말씀이 너무 정확하게 와 닿았어요. 2002년 한국 생태학회가 세계생태학대회를 유치했어요. 운영위원장을 맡아 해외 석학들을 섭외하는 역할을 맡았거든요. 박경리 선생님을 가장 중요한 기조연설자로 모셨어요. 그날 먼저 하신 말씀도 환경과 생태의 차이점이었어요. 또 생물이 중심에 있어야 하고, 생물과 환경이 관계 맺음 하는 게 진짜고, 주변만 보는 것은 의미 없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세계적 생태학자들이 다 일어서 박수치더라고요. 소설가 입에서 명확한 이야기가 나오니 감탄한 거죠. "자연이라는 원금을 까먹지 말아야 한다. 이자만 가지고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후손들에게 우리가 누린 자연을 그대로 선물해줘야 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239호, 최재천, 특집 대담 '생태 취미, 자연에 들어서는 징검다리' 중에서 


어제 저녁, 퇴근하고 현관 앞에 놓인 이번 호를 가져다가 거실에 대충 앉아 이리저리 살피는데 반가운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국립수목원에서 일하시는 박사님의 인터뷰 기사. 그리고 기억에 남은 이 대목.

대학원생들과 이른 봄 광덕산에 꽃을 보러 갔다가 너무 이른 봄에는 산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밟고 다니는 땅에서 식물들이 올라오고 있거든요. 식물은 번식을 위해서 꽃을 피우는 거예요. 요즘엔 여러 요인으로 나비나 벌 같은 수분자를 만나기 어려워요. 




자연, 푸르른 숲 가까이 집을 짓고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며 살고 싶다.

2016/07/12

길 떠나는 이에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 그 무한한 긴장, 기대와 걱정. 배낭의 무게는 거기에서 결정된다. 나는 無用의 결혼식에 부친 詩에 이렇게 썼다. 


   벗이여, 
   이제 우리 긴 여행을 떠나자
   겨우내 얼었던 땅과 나무
   대지를 풍요롭게 하네
   살아있음을 실감케 하는 
   햇살, 바람의 손짓 따라
   떠나자, 여행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따르는 믿음과 사랑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마음과 손과
   발이 대신하리
   우리는 기꺼이 연대하리
   짐을 꾸리자, 벗이여
   우리 앞에 놓여진 그윽한 길
   발을 내딛는 순간, 삶은
   여행이 되리  


그렇다. 얼마든지 삶은 여행에 비유될 수 있다. 같은 장소를 가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여행이듯 삶도 얼마든지 그렇다.
어제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K였던 J가 오후 느즈막이 집에 들렀다. 집에서 가장 시원한, 식탁에 자릴 잡고 앉아 냉장고에 든 맥주를 모두 비우며, 앞으로의 시간과 누군가의 경험에 대해 논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지?)
주제넘게도, 내가 한두 마디 거들 수 있었던 건 고작 서너 해 더 먹은 세월의 겹일 뿐인데도, 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말은 거만하다.
집과 아이와, 어떤 느슨한 결속에 대해. 그리고 '때時'에 대해.
조금은,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방향으로 삶의 머리를 틀고 싶다는 누워있는 생각.
맥주를 다 비우고 동네 산책을 하고, 오후에 내려둔 커피를 나눠 마시고, J는 떠났다.

2016/06/29

이숲생활

이하hija는 에스파뇰로 딸이란 뜻이다.

우리가 결혼을 앞두고 여행을 남미로 가면 어떨까 하고, 무작정 합정동에 있는 '가장자리'에서 에스파뇰을 배울 때였다. 한 권의 책을 같이 보며, 게으르게 수업에 참여했었는데, 어느날 수업시간에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이하hija와 이호hijo였다. 딸과 아들. 그때 이하의 태명은 정해졌다. (나중에 이하가 알면 서운해 하겠지만, 사실 성별을 알기 전까지는 이호라 칭했었다.)
출산에 너무 임박하지 않게 이사를 하기 위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고 3월에 이사하기까지, 처음엔 나름 고향 다음으로 오래 살았던 서울을 떠나는 게 어쩐지 서운했었는데 막상 이삿날이 되자 어서 빨리 지긋지긋한 이삿짐 정리를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사를 하게 된 동네는, 거의 의도적이었지만 처형네 집과 아주 가깝고, 기적적으로 자연 공원이 가까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맛이 있었다. 그리고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새로 이사하게 될 집에 이름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숲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와 이하를 낳고 자라는 모습을 보게 될 터이니 '이'를 붙이고 싶었고, 숲이 가까우니 이숲. 간단하고 부르기 쉽고 무엇보다 어감이 맘에 들었다. 비록 빌려 사용하는 집이지만, 우리만의 이름을 짓고 칭하며 사니 금세 친구처럼 친숙해진다.

그리고 이사를 온 지 석 달 후에 이하가 태어났다. 이제 날이 밝으면 조리원에서 퇴실하고, 본격적인 이숲생활이 시작된다. 이하와 함께.

2016/06/25



이하는 잘 먹고 잘 싼다.

대참사의 날.


이 작은 발로,
어디 가려니 이하야.

2016/06/17

조리원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갑갑하지만,
신생아실이 소독하는 시간 - 18:30~20:30 - 에
우리 방에 와 있는 이하를 돌보는 동안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선잠이 들었다 짜증 섞인 투로 울며 깨며를 반복하다
신생아실로 돌아갔다.

2016년 6월 14일 저녁 8시 48분
이하hija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