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작가님의 생각은 우리가 노력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쪽인가요, 아니면 노력하더라도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노력하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쪽인가요?
후자에 가깝죠. 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요.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된다"고 썼더니 사랑하면 희생하고 인내하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말하는 노력은 'try'에 가깝거든요. 가망이 없는데 한 번 더 물어나보는 행위죠.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결과로 얻게 되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김혜리 인터뷰집 '진심의 탐닉' 김연수 편에서)
영화 이야기를 주로 하는 김혜리 기자를 좋아한다. 예전 라디오에서 영화 인물 얘기하는 걸 특히 좋아했는데 일종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게 무척 따뜻했다. 그건 시선일 수도, 마음일 수도, 진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거듭 느끼지만 김혜리 기자의 진가는 인터뷰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의 모든 글이 좋지만 특히) 인터뷰를 읽거나 들을 때면 그가 얼마나 인터뷰 준비를 성실히하는지, 인터뷰이의 답보다 먼저 그의 질문의 섬세함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좋은 질문은 인터뷰의 질을 갑절 이상으로 높인다.
십 년도 넘은 언젠가, 홍대 근처의 (기억이 맞다면) 스페인 음식점에서 J, Y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해'와 '인정'에 대해 길게 대화가 오갔던 기억이 났다. 막 트위터에 물어(?)보기도 하고.
이해, 라고 한다면 '그때'와 생각이 비슷하지만 김혜리의 질문처럼 '불가능'하지만 노력을 해보기도 하고, '인정'할 부분은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런데 방금 지하 카펫에 엎드려 김연수의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자에 없다고 생각했던 대학원에 입학해 한 달간 밀도 높은 스트레스를 꾸준히 이어오다가 며칠 전에 아무리 공부가 급해도 한 달에 책 한 권은 무조건 읽자, 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이 드니 이제는 지하에 있으면 자꾸 서가를 기웃거리며 책을 뒤적인다. 어제는 책등 아래로 가름끈이 삐져나온 책(자기 앞의 생)을 집어들고 뒤편에 실린 조경란 소설가의 글을 읽었다(작가들의 추억을 더듬는 글엔 어김없이 헌책방이 등장한다).
일 월을 보내며 한 번쯤 울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는데 어제 '자기 앞의 생'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고, 오늘 베트남에서 별세한 이해찬 전 총리의 뉴스 영상을 보면서도 약간 울컥했고, 저 인터뷰를 읽기 전까지 2층에서 읽고 있던 칼 세이건의 딸 샤사 세이건의 책을 보면서도 눈물이 맺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