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꿈마루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꿈마루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03/19

(1703 능동 꿈마루) 시간의 흔적 그리고 지금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공원 정문. 그곳을 통해 공원으로 들어서면 저기, 높다란 곳에 한눈에 보아도 웅장한 모습의 꿈마루가 늠름하게 뻗어 있다. 세월을 가늠케 하는 커다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원경을 보며 걸음을 재촉하면 그만큼 더 거대해진 꿈마루 앞에 어느새 서 있게 된다. 



꿈.마.루. 세 글자가 저 웅장한 건물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은 육체가 그 안으로 스며들어가자마자 일순 사라진다. 왜 수류산방 심실장님이 꿈마루에 안 가보았냐고 물었는지, 몸이 먼저 알겠다는 듯 반응한다. 
분식점에서 사 간 점심을 먹기 위해 우측 경사로를 따라 피크닉가든으로 갔다. 지붕을 걷어내 기둥과 수평으로 뻗은 보만 남은 가든에는 색 바랜 바닥의 나무가 친근하게 발길을 유도하고 있었고 듬성듬성 기둥과 보 사이에 삐죽 고개를 내민 나무 몇 그루가 웰컴 투 '가든'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반쯤 볕이 드는 위치로 테이블을 옮겨 온이도 아내와 나도 식사를 했다. 먹으면서도 시선은 주위를 둘러보느라 분주했다. 세월은 속일 수 없다는, 풍부하게 골조에 남은 풍화의 흔적은 수십 년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달려들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식사를 다 끝내기도 전에 아주 느리게 가든을 서성인다. 







가든 안쪽으로는 집 속의 집이라 불리는 화장실과 사무실이 보였는데, 적색 조적으로 단정하게 처리된 집들은 풍화에 젖은 가든의 골조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반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꼭 필요한 설비를 제외하고 남은 천장의 공간에는 원래의 골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칭얼대는 온이를 재울 겸 건물을 관통해 바깥으로 나가 건물 뒤편으로 갔다. 경사진 지형 탓에 건물 뒤편에 서니 시선 안에 건물 전체를 끝어당겨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보다는 육중해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 떨구자 방금 점심을 먹은 피크닉가든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자리에 다소 외롭게 서 있는 산수유나무엔 노란꽃이 피어 있었다. 





왼쪽 입구에 서면 캔틸레버가 되어 뻗어나온 골조가 건물이 만들어질 당시 위용을 뽐내는 듯 보이지만, 이미 그곳은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다. 원래 실내 공간임을 암시하는 듯한 철골조가 콘크리트골조와 조화를 이루고 쾌적하게 뚫려 있는 정면으로 밀려드는 도시의 원경은 쏟아지는 햇빛 탓에 전진을 방해받는다. 게다가 지긋지긋한 미세먼지라니!







유연한 계단의 반복된 흐름을 따라 어느새 3층에 도착하니 상대적으로 낮은 층고가 마치 공간을 납작 업드리게 한 듯하고, 한켠에 놓인 피아노에서는 젋은 연인이 앉아 알 수 없는 연주를 이어가다 시선을 서로에게 고정시킨다. 하지만 공간의 연주가 이어진다. 아래로 뻥뚫린, 여전히 당당한 보 사이로 주말의 한가로운 행렬의 발길이 드문드문 꿈마루를 찾는다. 













나는 건물 끝에, 어느새 서 있다. 시간은 잊은 지 오래, 소음은 귀에 미처 와닿지 못하고 귓등을 스쳐 지난다. 
잠시 곁을 떠난 아내와의 재회는, 여전히 이곳이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였다면 우아하게 커피라도 마시며 서서 라운드를 바라봄직할, 건물의 상징처럼 보이는 길게 뻗은 장소에서 이뤄진다. 감동을 주체할 수 없기에, 잠시 쉬기로 한다. 따순 볕을 받으며 나는 유기농아이스크림을, 산수유가 만발한 계절에 니트에 코트 차림인 아내는 뜨거운 라떼를 마신다. 











중부지역을 휩쓴 미세먼지는 잊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아니, 나를 잃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꿈마루를 서성인 시간은 어느새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또 한 가지 더한 건 내부와 외부의 구분을 느슨하게 했다고 할까요. 꿈마루에선 모퉁이를 돌아 들 때마다 바깥이 계속 따라 들어옵니다. 바람도 안으로 들어오고, 눈이 오는 날, 비 오는 날... 꿈마루를 거쳐서 공원의 다른 공간으로 나가는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지만 여러 가지를 감각할 수 있게요. 그건 곧 이 도시 안에서, 우리가 일상 생활하면서 별 신경 쓰진 않지만 늘 느끼게 되는 것이기도 하죠. 꿈마루를 들어가서 점점 안으로 공간이 진행되면서, 계속 바뀜이 일어납니다. 끊임없이 바뀌면서, 하여튼 조금 기분이 좋아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그런 공간. 어떻게 보면 꿈마루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긴 빛도 있어요. 요즘 법규에 맞추느라고 엘리베이터를 하나 놓으면서 그 위 지붕을 뜯었어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통을 타고 빛이 천장부터 아래층까지 들어옵니다. 사실 꿈마루 안이 어둑어둑해요. 유지관리 비용을 낮추려고 조명기구도 최소로 줄였고 일체 시설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바깥같죠. 여기저기서 빛이 들어와 난반사하고 바람도 통하거든요. 음, 기분이 아주 나브지 않은 다리 밑 같다고 할까요. 우리가 그 어두운 다리 밑 같은 커다란 공간을 통과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스케일이 바뀌고, 조금씩 조금씩 다른 농담의 빛이 섞여 들고, 환한 피크닉가든을 거쳐 더 밝은 북카페가 저기 위에 보입니다. 오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오히려 애들은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거 같아요. 들락날락 계속 위로 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빛의 바뀜에 대한 어린이 나름의 느낌이 있는 거 같아요.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한 거니까요. 구조물을 만들지 말고, 움직임이 일어나게 만들자, 그저 그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흐름들을 따라서 잘 갈 수 있도록 제공만 하자, 어느 정도 들어맞은 것 같아요. 
조성룡, <기품 있게 늙어감에 대하여, 꿈마루>, 웹진 民硏, 2015년 10월 통권 054

꿈마루에서 나와 공원을 빠져나가려 꿈마루를 등지고 걷는 동안 수차례 뒤돌아 보았다. 나였을까, 자꾸만 할 말이 있는 듯, 그래서 한 번 더 보고 싶어했던 건. 꿈마루에 쌓인 거대한 시간의 층위를 불과 두 시간여 만에 온몸으로 실캄케 해 준 조선생님의 안목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1703 능동 꿈마루) 도시에서 공간을 기억하는 방법

세월이 쌓이면 어떤 건물이든 가치를 갖게 된다. 공간을 완성시키는 것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곧 건물과 관계 맺어온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시간이 스며든 공간을 지우고 헐기에 바빴다. 꿈마루의 부활은 그런 점에서 복원 과정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새로 짓는 것만이 건축이 아니라 되살리는 건축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 길 돌아와 우리 앞에 선 꿈마루 앞에선 이제 아이들이 뛰논다. 이 건물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알 리 없는 저 아이들의 웃음소리야말로 이 건물을 진정으로 완성시킨 마지막 마감재일 것이다. 
구본준, <마음을 품은 집> 76-77쪽, 서해문집, 2013 



나는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 즉 기본계획만 하기로 하고 시작했어요. 서울시에 새로운 설계를 위한 예산이 없으니 정상적 설계를 할 수 없었죠. 우선, 공공 건물은 행정 상황이나 재정 조건이 부합이 되지 않으면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 지으려고 했던 작은 건물의 예산에서 더 이상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큰 건물을 고쳐 쓰도록 맞출 방법을 내야 했습니다. 실은 처음 최광빈 국장에게 남기자고 제안을 했을 순간 아이디어는 이미 떠올라 있었습니다. 관리소에서 요구한 시설은, 사무실, 회의실, 통신실, 화장실 등 해서 기존 공간의 삼분지 일쯤 되었습니다. 교양관 전체 면적이 오천 평방미터쯤 되는데 필요한 것은 천사백 평방미터 정도, 예산도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나간 건, 지어진 다음 유지관리도 그 삼분지 일의 면적을 유지할 돈으로 할 수 있게 맞추려고 했습니다. 유지 부분이 더 중요할 수도 있고요. 공원 안의 시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역 고가 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쓸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둥이나 지붕은 있지만 바깥으로 바꿔 버린다는 것인데요. 건축이라는 것이 쓸모가 끝났을 때, 또는 기능이나 조건이 바뀌었을 때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새로 쓸 수 있는 부분만 살리고, 이것을 풍화되는 과정 속에 두자는 거죠. 
조성룡, <기품 있게 늙어감에 대하여, 꿈마루>, 웹진 民硏, 2015년 10월 통권 054호


올해 세 번째 답사 장소, 능동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우리가 도시에서 살며 어떤 공간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그 다양한 방법 중 건축이 담당하는 역할도 있을 터인데, 꿈마루는 그 역할을 아마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