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마.루. 세 글자가 저 웅장한 건물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은 육체가 그 안으로 스며들어가자마자 일순 사라진다. 왜 수류산방 심실장님이 꿈마루에 안 가보았냐고 물었는지, 몸이 먼저 알겠다는 듯 반응한다.
분식점에서 사 간 점심을 먹기 위해 우측 경사로를 따라 피크닉가든으로 갔다. 지붕을 걷어내 기둥과 수평으로 뻗은 보만 남은 가든에는 색 바랜 바닥의 나무가 친근하게 발길을 유도하고 있었고 듬성듬성 기둥과 보 사이에 삐죽 고개를 내민 나무 몇 그루가 웰컴 투 '가든'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반쯤 볕이 드는 위치로 테이블을 옮겨 온이도 아내와 나도 식사를 했다. 먹으면서도 시선은 주위를 둘러보느라 분주했다. 세월은 속일 수 없다는, 풍부하게 골조에 남은 풍화의 흔적은 수십 년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달려들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식사를 다 끝내기도 전에 아주 느리게 가든을 서성인다.
가든 안쪽으로는 집 속의 집이라 불리는 화장실과 사무실이 보였는데, 적색 조적으로 단정하게 처리된 집들은 풍화에 젖은 가든의 골조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반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꼭 필요한 설비를 제외하고 남은 천장의 공간에는 원래의 골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칭얼대는 온이를 재울 겸 건물을 관통해 바깥으로 나가 건물 뒤편으로 갔다. 경사진 지형 탓에 건물 뒤편에 서니 시선 안에 건물 전체를 끝어당겨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보다는 육중해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 떨구자 방금 점심을 먹은 피크닉가든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자리에 다소 외롭게 서 있는 산수유나무엔 노란꽃이 피어 있었다.
왼쪽 입구에 서면 캔틸레버가 되어 뻗어나온 골조가 건물이 만들어질 당시 위용을 뽐내는 듯 보이지만, 이미 그곳은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다. 원래 실내 공간임을 암시하는 듯한 철골조가 콘크리트골조와 조화를 이루고 쾌적하게 뚫려 있는 정면으로 밀려드는 도시의 원경은 쏟아지는 햇빛 탓에 전진을 방해받는다. 게다가 지긋지긋한 미세먼지라니!
유연한 계단의 반복된 흐름을 따라 어느새 3층에 도착하니 상대적으로 낮은 층고가 마치 공간을 납작 업드리게 한 듯하고, 한켠에 놓인 피아노에서는 젋은 연인이 앉아 알 수 없는 연주를 이어가다 시선을 서로에게 고정시킨다. 하지만 공간의 연주가 이어진다. 아래로 뻥뚫린, 여전히 당당한 보 사이로 주말의 한가로운 행렬의 발길이 드문드문 꿈마루를 찾는다.
나는 건물 끝에, 어느새 서 있다. 시간은 잊은 지 오래, 소음은 귀에 미처 와닿지 못하고 귓등을 스쳐 지난다.
잠시 곁을 떠난 아내와의 재회는, 여전히 이곳이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였다면 우아하게 커피라도 마시며 서서 라운드를 바라봄직할, 건물의 상징처럼 보이는 길게 뻗은 장소에서 이뤄진다. 감동을 주체할 수 없기에, 잠시 쉬기로 한다. 따순 볕을 받으며 나는 유기농아이스크림을, 산수유가 만발한 계절에 니트에 코트 차림인 아내는 뜨거운 라떼를 마신다.
중부지역을 휩쓴 미세먼지는 잊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아니, 나를 잃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꿈마루를 서성인 시간은 어느새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또 한 가지 더한 건 내부와 외부의 구분을 느슨하게 했다고 할까요. 꿈마루에선 모퉁이를 돌아 들 때마다 바깥이 계속 따라 들어옵니다. 바람도 안으로 들어오고, 눈이 오는 날, 비 오는 날... 꿈마루를 거쳐서 공원의 다른 공간으로 나가는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지만 여러 가지를 감각할 수 있게요. 그건 곧 이 도시 안에서, 우리가 일상 생활하면서 별 신경 쓰진 않지만 늘 느끼게 되는 것이기도 하죠. 꿈마루를 들어가서 점점 안으로 공간이 진행되면서, 계속 바뀜이 일어납니다. 끊임없이 바뀌면서, 하여튼 조금 기분이 좋아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그런 공간. 어떻게 보면 꿈마루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긴 빛도 있어요. 요즘 법규에 맞추느라고 엘리베이터를 하나 놓으면서 그 위 지붕을 뜯었어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통을 타고 빛이 천장부터 아래층까지 들어옵니다. 사실 꿈마루 안이 어둑어둑해요. 유지관리 비용을 낮추려고 조명기구도 최소로 줄였고 일체 시설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바깥같죠. 여기저기서 빛이 들어와 난반사하고 바람도 통하거든요. 음, 기분이 아주 나브지 않은 다리 밑 같다고 할까요. 우리가 그 어두운 다리 밑 같은 커다란 공간을 통과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스케일이 바뀌고, 조금씩 조금씩 다른 농담의 빛이 섞여 들고, 환한 피크닉가든을 거쳐 더 밝은 북카페가 저기 위에 보입니다. 오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오히려 애들은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거 같아요. 들락날락 계속 위로 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빛의 바뀜에 대한 어린이 나름의 느낌이 있는 거 같아요.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한 거니까요. 구조물을 만들지 말고, 움직임이 일어나게 만들자, 그저 그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흐름들을 따라서 잘 갈 수 있도록 제공만 하자, 어느 정도 들어맞은 것 같아요.
조성룡, <기품 있게 늙어감에 대하여, 꿈마루>, 웹진 民硏, 2015년 10월 통권 054
꿈마루에서 나와 공원을 빠져나가려 꿈마루를 등지고 걷는 동안 수차례 뒤돌아 보았다. 나였을까, 자꾸만 할 말이 있는 듯, 그래서 한 번 더 보고 싶어했던 건. 꿈마루에 쌓인 거대한 시간의 층위를 불과 두 시간여 만에 온몸으로 실캄케 해 준 조선생님의 안목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