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 되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면서 날씨는 영하에서 영상으로 돌아선다. 그래서 춘분이 되면 겨우내 움츠렸던 풀과 벌레들이 기지개를 켠다. 우수, 경칩에서부터 벌레들은 깨어나 춘분이 되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또한 풀과 겨울을 견뎌낸 곡식과 작물들은 춘분을 기점으로 확연히 기운을 차린다. 밀, 보리의 새순이 돋고 땅속에 숨어 있던 마늘도 일제히 팡파르 불 듯이 땅속에서 새순이 고개를 쳐든다. 기죽어 있던 양파도 빳빳하게 줄기에 힘을 준다.
봄꽃들도 춘분이 지나야 일제히 만개한다. 개나리부터 목련과 진달래, 생강나무, 산수유가 꽃을 피워낸다. 따뜻한 남쪽에선 춘분 앞서 개나리가 핀다.
이런 춘분을 새해 첫날로 삼은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고대 중동 지역이다. 이 지역은 유목이 중요한 사회였기에 춘분에 힘을 받아 올라오는 목초에 의지해 살아야 했으므로 무엇보다 춘분이 중요했을 것이다.
우리도 춘분이 지나면 무엇이든 파종할 수가 있었으니 농경 사회에서도 춘분은 매우 중요한 절기다. 그런데 춘분 지나면 꼭 꽃샘추위가 찾아오므로 되도록 늦게 발아하는 씨앗들을 파종하는 게 좋다. 빨리 발아하는 것은 꽃샘추위가 지난 청명 즈음에 심는 게 좋다. 빨리 발아해서 꽃샘추위를 만나면 냉해를 입기 때문이다.
안철환, <24절기와 농부의 달력> 94-95쪽, 소나무, 2011
하지만 요즘은 그야말로 봄의 불청객 미세먼지 때문에 밖으로의 산책도, 안에서의 환기도 자유롭지 못하다. 안타까운 일. 그래도 몸이 반응하는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