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4일 저녁
분만실에서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들었던 음악은 빌 에반스 트리오의 <Waltz for Debby>였다.
그리고 오늘, 씨디를 샀는데, 나중에 아이가 크면, 그래서 혼자서도 음악을 즐기며 들을 나이가 되면, 선물해 주고 싶다.
그날 지속된 이 그룹의 상상력의 열매는 이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게끔 만들었으며, 감상자의 정신적, 정서적 지구력을 계속 환기시켜 주었다. 각각의 작품들은 마술 세계의 결정체를 확보하고 있었다. 1970년대 에반스 트리오에서 잠깐 드럼을 연주했던 빌 굿윈이 말했듯이. "빌, 스콧 그리고 폴 모티안이 함께 하면 그들은 무얼 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는 듯했으며, 즉석에서 만들어진 사운드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즉각적인 신뢰감이었다." 이 유산은 빌 에반스 최고의 시절로 불리고 있으며,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풍성한 녹음 속으로 빠져들 때 우리는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정점과 에반스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성과에 대한 하나의 매개체를 목격하게 된다. 느낌의 깊이, 그룹 내부의 친밀감, 그리고 부드러운 촉감의 미적인 개념에 있어서 이 녹음들은 견줄 수 없는 영원함을 지닐 것이다.
열흘 뒤 늦은 밤, 스콧 라파로는 뉴욕 주 북부에 위치해 있는 그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 제네바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20번 국도에서 동쪽으로 향한 한 시골길에서 그는 나무와 충돌했고,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반스와 모티안은 모두 그 소식에 넋을 잃었다. 이는 라파로라는 한 개인의 상실일 뿐만 아니라 베이스 주자를 분신으로 여겼던 에반스의 이상적인 삼두체제의 종말이었다. 그 충격으로 에반스 그룹의 창의성이 일으켰던 불꽃은 무참히 꺼졌으며, 이 베이스 주자의 죽음은 에반스 자신 속에서도 그 무언가를 살해했다.
"사람들이 재즈를 지적인 이론으로 분석하려고 할 때 난 당혹스럽다. 그건 아니다. 재즈는 느낌이다."
"원칙과 자유는 섬세하고 창조적으로 섞여야 하며 정말로 훌륭한 결과를 낳아야 한다. 난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감상주의에 빠지면 낭만성은 방해받게 된다. 반면에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낭만성은 가장 아름다운 미적 대상이다. 이러한 조화가 이 특별한 트리오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난 생각한다."
피터 페팅거,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p.201-202, p.204, 황덕호 옮김, 을유문화사
못 말리는 습성대로, 빌 에반스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