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건물 앉히기에 가장 곤란한 곳이 바로 평평하고 네모난 땅이다. 신도시에서 분양하는 택지들이 대개 그렇다. 아무리 둘러봐도 다 똑같이 생긴 땅이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물이라면 맹물이고 종이라면 백지다. 자연이 만든 우아한 경사지를 기필코 쑹덩쑹덩 잘라 야만적 옹벽을 앞뒤로 세우고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한국 택지 개발의 정의인 듯도 하다. 이런 땅 위에 건물을 얹어야 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 좋은 답은 훌륭한 질문에서 나오는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소크라테스인 건 그 절묘한 질문 때문이다. 그런데 평평하고 네모난 땅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필사적으로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다. 초면의 과묵한 상대는 얼마나 불편한 존재겠는가. 그에 비해 이렇게 경사 급하고 이상한 땅은 수다스럽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중이다. 이런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서현,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짓기> 25쪽, 효형출판
건축 의뢰에서부터 대지를 보고 한 채의 건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은 서현의 세모난 책. 인상적인 집이지만, 결과물보다 그럴 듯한 과정이 더욱 흥미롭다. 건축가야말로, 그럴 듯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땅의 질문에 대한 답이 건축물이 되기에 너무도 척박한 우리의 도시는 오늘도 숨이 막힌다. 그렇지만 도시는 그렇게 지탱된다. 그리고 우리는 도시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