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나와 돈암시장에 있는 돈암순대에 들러 저녁 겸 김밥과 순대 그리고 같이 내주는 우거지국을 먹고 된장을 끓일 요량으로 두부 한 모를 샀다. 빨리 걸을 수도 없을 뿐더러 시장의 좁은 골목이었기에 천천히 걸으며 이리저리 둘러본 시장 곳곳은 생의 활기 - 차이는 있겠지만 - 로 가득했다.
어제도 그랬는데 오늘도 바람이 몹시 불어댄다. 벌써 가을의 문턱을 두드리기라도 하듯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있지만 어쩐지 마음과 기분은 여름보다는 가을에 더 가깝다.
집에 들어와 코타로 오시오의 앨범을 틀어놓고선, 돈암시장에서 사온 두부를 냉장고에 넣으려고 비닐봉지를 옮기는데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돈암순대에서 밥을 안 먹고 왔더라면 조금이라도 잘라 먹었을 텐데, 배가 불렀다.
그런데 물에 담궈 냉장고에 넣으려고 아직 따뜻한 두부를 만지는 순간 정릉에 살던 때 생각이 났다. 정릉에 있는 집에 가려면 돈암역에 내려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했는데, 저녁 무렵 정릉 버스정류장에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 꼭 그 자리에 두부를 파는 분이 계셨다. 그곳에서 한 번도 두부를 산 적이 없었는데 지금 불현듯 떠오른 기억은 어느 늦은 날, 그날도 두부장수는 있었고, 그 옆에 자전거를 타고 딸을 마중나온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를 가벼운 바람으로 밀치듯 스쳐간 교복 입은 여학생은 아버지에게 미소를 보이며 자전거 뒷좌석에 살며시 앉았다. 그 모습을 므흣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버지는 “출발한다, 꽉 잡아.”라는 말과 함께 힘차게 발을 차며 자전거를 출발시켰다. 행복해 보이던 부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 학생이었음에도 처음으로 딸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되풀이하는 기억들이란 대체로 이런 식으로 떠올려지고, 금세 사라져 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고정된 사물, 인상적인 맛, 포근했던 장면, 유독 푸르렀던 어느 여름날… 이를 상징적으로, 마치 기호처럼 풀어낸 작가가 프루스트가 아닐까. 그의 아름다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마들렌 조각이 든 홍차를 입에 가져간 순간 콩브레에서의 추억을 시작으로 온갖 개인의 역사를 떠올렸던 것처럼 나 또한 시장에서 산 따스한 두부 한 모에 손을 댄 순간, 정릉에서의 살 적 기억이 거대한 파도처럼 달려들어 뒷걸음치게 했다. 반가워라, 나의 옛 시절.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