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니 몸이 무거웠다. 가슴이 쑤시는 게 거동은 불편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딱히 지난 밤보다 더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예정대로 제주로 여름 휴가를 떠나는 누나 가족과 동행을 해서 김포공항까지 간 다음 차를 몰고 수원으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오전에 근무를 하다 보니 확실히 행동반경이 제약적이었다. 몸이 통증을 호소하며 조금이라도 상체에 힘이 들어가는 행동을 거부하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점심을 먹고 근처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원장이 둘 있는 병원은 북적북적했다. 로비에 있는 티비에서는 류현진 선발경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느낌상으로,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내 이름이 차트를 든 간호사에 의해 호명되고, 원장실로 들어간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욕실에 들아가다가 미끄덩, 넘어졌는데 오른쪽 가슴 부위에 먼저 충격이 가해졌고 이후 숨이 막히는 듯하고 힘이 들어갈 때마다 통증을 느낍니다.
라고.
그랬더니, 원장은 혹시 ‘뚝’하는 소리를 듣진 못했냐고 물었으나 그런 소리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들은 것 같지도 않았으며 가슴 부위의 충격 때문에 숨이 턱 막혔던 당시의 고통만 생각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엑스레이를 일단 찍어봅시다, 는 원장의 말이 끝나자 다시 밖으로 나왔더니 이번엔 금방 내 이름이 호명되어 엑스레이를 찍었다. 앞으로 한 번, 뒤로 세 번 정도.
다시 원장실에 들어가서 같이 엑스레이를 보는데, 원장은 입으로 웅얼거리듯 수를 헤아리더니, 한 곳을 가리키며, 여기, 7번 갈비가 골절됐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아직 금은 갔지만 엑스레이로 드러나지 않은 갈비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일주일은 특히 조심히 지내고 나흘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보호대와 주사, 5일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우울했다. 나는 엑스레이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의사의 말에만 신경을 썼다. 그의 말에서 지나치게 많은, 그러니까 골절된 갈비뼈가 온전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인지가 내겐 중요했다. 엑스레이는 봐도 내 눈엔 다 같아 보였다. 내가 인지하거나 느낄 수 있는 건 상체에 힘이 가해질 때마다 전해지는 피하고 싶은 통증이었다.
주사를 맞고, 가슴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병원을 나서자마자 있는 약국에 들어가 처방전을 내고 약을 받고서는 사무실로 다시 오르는 길이 버겁기만 했다. 화창한 하늘과 햇살이 왠지 나에겐 야속하게 생각되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팀장, 과장에게 상태를 얘기하고 조퇴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50킬로미터나 되는 통근거리는 확실히 끔찍했다. 과천-의왕고속도로를 타고 한적하게 달리던 길은 양재 부근에 이르니 조금씩 정체되기 시작했다. 경부고속도로에 올라 느리게 달리다가 양재와 서초를 지나니 길이 풀렸다. 그리고 한남대교에 들어섰는데, 정면으로 마주한 남산과 왼편 일대의 연립주택이 빽빽하게 들어붙어 있는 한남동 일대가 옅은 빛깔의 하늘과 가득한 구름들과 어우러져 놀라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문득 곁을 스치는 한남대교 전망카페에 앉아 있는 이들이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러웠다. 하지만 차를 세울 수는 없었다. 단지, 감탄만 하는데도 가슴이 욱신거리고 있었다.